문화

如一同行 백 서른 여섯번째 - 함안

세종해피뉴스 2023. 10. 18. 20:16

무진정을 찾아가다 길 건너로 접어 들어 마을 입구에 자리한 보물을 찾아 본다. 아담하게 자리한 전각 안에 불상이 보이는 이곳은 함주지의 기록을 통해 북사( 北寺)가 있던 곳으로 추정한다. 발굴로 확인된 절터는 동지산 남쪽의 작은 골짜기 남향으로 자리하는데, 남북국시대의 평지사찰의 입지로, 이곳 대사리 마을 전체를 절터로 추정한다. 남북국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지속적 수리와 증축이 있다가, 조선 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 71호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

대사(大寺)골로 불리는 마을 입구에 3구의 불상이  전각안에 석불군을 이루고 있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물 제 71호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

좌우 측면의 불상은 다른 불상의 협시 보살로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2구의 보살 입상은 손모양이 다를 뿐 조각수법이 비슷하여 보인다. 머리에는 높은 관을 쓰고, 길쭉한 얼굴에 평판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같은 옷을 입고, 양 무릎에서 시작된 타원형의 옷주름이, 고려시대 지방화 된 불상양식에서 보여지는 석조 보살상 들의 특징이라 한다. 두 보살 입상 사이의 중간에 놓인 머리가 없는 좌불상은 온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불상 이라고 한다. 

 

[좌측 불상]
[우측 불상]

대좌는 상대·하대로 나누어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석조불을 보면 요즘의 불상은 뒷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표현 하여 놓았으나, 예전의  불상들에서는 뒷면은 별도의 장식이나 표현이 없이 밋밋하게 가공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의 나름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만 해본다. 

다시 길을 건너 무진정을 지나 치며, 함성 중학교를 향해 간다. 이 곳 학교 한 편에 자리한 주리사지 사자석탑을 찾아가는 길이다.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유형문화재 지정 된, 사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탑으로, 원래는 함안 여향면  주리사지터에 있었고, 일제 강점기때 면사무소로 이전 하였다가 해방후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당시 없어진 바닥돌과 모돌, 머리 장식부 등은  새로 만들었고, 남아 있는 탑의 재질과 형태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학교 안에 자리한 문화재 탑이나 불상을 종종 보는 경우가  있다. 보전은 나름 잘 될 것으로 보이나 의외로  접근은 쉽지 않다.

 

 

이 탑의 특징은 바닥돌과 몸돌사이에 앞발을 모으고 서로 등을 댄채 탑의 모서리에 자리한 네마리 사자상이다. 사사자 조각된 탑은 구례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회양금장암지 사사자 삼층석탑, 제천 빈신사지 사사자 석탑등 단 4기라는 설명이 있다. 예전의 모습을 촬영한 모습이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길을 돌아 나와 큰 길가의 무진정에 도착한다. 무진정을 오르는 길에 자리한 괴산재를 알아 본다. 

 

[괴산재]

생육신 정절공 조려선생의 손자인 무진정 조삼을 기리는 종중의 재실로, 원래 산중턱에 있던 것을 옛 것은 그자리에 보전하고 현재 위치에 1992년 새로이 낙성식을 하였다 한다. 

 

[무진정]

유형 문화재로, 조삼선생이 후진 양성과 남은 여생을  위해 지은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한 곳이다. 무진선생은 1473년에 태어나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 창원 · 대구 · 성주 · 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고 한다.

 

[무진정 뒷면]

앞면 3칸 ·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진정  옆면]

정자는 출임문인 동정문과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와 툇마루에는 들문 이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이다.  현재건물은 1929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의 창시자 주세봉이 무진장의 기문을 지었으며 정자 앞에는 함안 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무진정]
[무진정 앞 연못]

 연못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나무와 정자가 자리하는데 뿌리를 들어낸 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무진정 주변 풍경]

함안이 자랑하는 곳인 무진정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 온 함안 낙화놀이라는 전통 불꽃놀이가 유명한데, 곱게 간 참나무 숯가루를 한지에 싸서 이를 꼬아 만든 낙화봉 3000여개를 연못 위에 설치된 줄에 매달아 놓고, 횃불로 낙화봉에 불을 붙여, 타는 모습이 불꽃 비가 내리는 듯한 함안지역 고유의 불꽃놀이가 있는데, 이 행사가 있을 때는  함안 사람만큼 많은 관광객으로 행사장 진입도 어렵다고 하는  놀이라 한다. 함안의 곳곳에 자리한 여러 문화재를 보고 나니 해가 저물어 무진정의 멋진 풍광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귀가 길을 택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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