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서른 아홉번째 - 울주

세종해피뉴스 2023. 11. 5. 20:09

울산으로 길을 잡고 간다.  오늘은  사지와 박물관에 자리한 보물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각석과 암각화로 잘 알려진 울산의 또 다른 보물을 찾아 보려 함이다. 신불산 군립공원내 호텔과 콘도 들 사이에 옛 간월사지 터가 보전되어 있다.  신라 진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임진왜란에 소실되나 이후 복원되어 19세기까지 존재 하다가 사라진 사찰이라 한다.

 

[간월사지]

 

간월사터는 폐사된 이후 주위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 학술발굴조사 후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금당, 축대, 주초석(柱礎石), 장대석(長大石), 2기의 삼층석탑이 확인되었고, 금당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금당지에서 청동여래입상 등의 불상과 각종 기와, 토기 및 자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금당지 앞 남북으로 위치한 삼층석탑이 자리하는데, 지형상이라선지 다른 사찰과 비교하여 금당과 탑 사이의 거리가 좁고, 남북으로 위치한 쌍탑의 거리가 멀다. 또한 금당의 지대석 보다 탑의 지대석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370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2기의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것으로,  석조여래좌상은 전각 안에 모셔놨다. 

 

[보물제 370 호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 좌상]

 

약간의 파손을 안고 전각안에 모셔져 있는 좌상은, 광배는 없어졌으며,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자리하며,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에서 온화함을 느낀다.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은 얇고, U자형의 옷주름을 가지고 있다. 얼굴과 신체의 풍만함과 좁아진 어깨 등에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한다. 3단으로 된 대좌는 원래보습이 아닌 다른 유물과 결합구성 된 것이라 한다.

 

[ 석불과 부조]

 

 전각앞의 양쪽에 석조여래 좌상 두기가 있는데, 얼굴 부분이 원래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모습인데, 설명이 없어 전언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 한 켠에는 알 수 없는 승탑도 자리하고 있다. 전각 뒤편으로 자리를 옮기면 낮은 언덕에 금당지와 두탑이 자리하고 있다. 

 

[북탑]

 

[북탑]

 

[남탑]

 

탑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으로 1층의 탑신부에는 금강역사상과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옥개석 끝에는 풍탁을 달았던 구명이 남아있다. 두탑은 거의 비슷하지만, 1층 탑신 문 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긴 점과 사리구명(공)이 북탑 보다 2배 큰 것이 특징이라 한다. 주목 되는 것은 초층 탑신에 새겨진 부조상으로, 두 탑 모두 중앙에 커다란 문비를 두고 좌우에 문을 지키는 수호신인 권법형 금강역사를 새겨 넣은 것이라 한다.  무너진 것에 새 부재를 넣어 복원한 것으로,  초층 탑신에 문비와 금강역사를 새긴 것은 탑신 내부에 사리장엄을 봉안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 주는 것이라 한다.

간월사지가 잘 정돈 되었지만, 무언가 허전한 분위기를 느끼며 석남사로 향한다.

 

[석남사 일주문]

 

큰 사찰을 찾아드는 길은 각종 오래 된 나무로 된 길이라, 걷는 동안 마음의 평온을 느끼게 된다.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에 도의 국사가 건립한 사찰로 보물 제 369호 인 승탑과 삼층석탑, 돌수조의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계곡의 풍경을 즐기며 옆길로 찾아든다.

 

[대웅전 과 석탑]

 

대웅전 앞 석탑은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하기 위에 1973년에 지은 것이다라 한다.

 

[대웅전]

 

[삼층석탑]

 

석남사 삼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높이는 2.5m이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체감미가 우수하고,  정상에는 노반석, 앙화, 보개 등을 갖추고 있으며, 노반석 이상의 부재는 후대에 보수한 것이다. 

 

[석남사 수조]

 

석남사 내에 남아 있는 수조로, 스님들이 사용하는 물을 담아 두는 곳이다. 이는 고려말 ~조선초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본다. 재료는 화강암이며 크기는 길이 2.7m,  너비 1m, 높이 0.9m, 두께 14cm 이다. 직사각형이지만 양옆을 안과 밖이 둥글게 변화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지금도 물을 담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보물을 찾아 사찰의 뒤편으로 오른다.

 

 

사찰 뒷편으로 담장 따라 발길을 오르면 커다란 승탑이 보인다.

 

[보물 제 369호 울주 석남사 승탑]

 

높이가 3.53m의 팔각원당 형태의 승탑으로 도의 선사의 사리탑으로 전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가 없다고 한다. 1962년 해체 보수시 기단 중대석 윗면 중앙에서 직사각형의 사리공이 확인되었으나 사리장치는 없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을 취하고 있으며, 8각의 바닥돌 위에 기단부와 탑신을 놓은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 받침돌엔 8각으로 사자와 구름이,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받침돌에는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을 새기고 그 안으로 꽃모양의 띠를 둘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탑신을 받치고,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앞·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지고, 문의 양 옆으로 신장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표현되고,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지만 통일신라말기 승탑 양식을 갖추었다고 본다.

 

[석남사 부도탑]

 

[산신도와 독성도]

 

 

 석남사를 둘러보며 사진과 함께 소개 되어 있는 안내판을 보았는데 다른 곳에 보관되었는지 눈으로 보지 못한 두가지 작품이다. 

산신도는 19세기 불화승 해인사의 경운당 성규에의 작품, 독성도는 1889년에 봉규에 의한 것으로 화기에 전한다고 한다. 아쉽지만 울주의 다른 보물들을 먼길 온 김에 둘러 보려 하여 지나친다.

 

발길을 울산 박물관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백 서른 아홉번째 - 울주 > 뉴스 | 세종해피뉴스 (xn--vg1b03zi5a71m9wruj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