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서른 세번째 - 남양주

세종해피뉴스 2023. 10. 4. 12:27

- 수종사

의정부 방문을 끝내고 귀가 길에 구리를 지나며 운길산의 수종사를 떠올린다. 오늘의 날씨는 매우 화창하기에, 예전의 방문시 안개로 보지 못하던 수종사에서 보는 양수리의 전경이 생각나서 이기도 하다. 또한 그 곳에 자리한 보물로 지정 된 탑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방문한다. 방문하려 한 수종사는 봉선사의 말사로, 세조 5(1459)년 창건됐다고 전해 내려온다.  수종사는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 머물다, 새벽의 종소리에 잠을 깨어 종소리를 따라 산으로 오르니, 그 소리는 바위동굴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며, 동굴 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는 사찰의 중창을 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찰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산길에 만들어져 있는 시멘트 길을 타고 사찰의 입구까지 오를 수 있다. 겸재 . 정선을 비롯해 조선 초기부터 수많은 문인·화가들이 방문하여  풍광을 기록으로 남기고,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은 ‘동방의 사찰 가운데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했다.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조선 후기 승려 초의선사는 이곳의 물맛을 ‘천하일품’이라 평했다고 한다. 

 

[일주문]

굽이굽이 숲길을 마주하는 차를 피하며, 나무가 울창한 숲사이를 지나며 오르면,  산위에 탁트인  이 곳 주차장 까지 차로 오를수 있는데, 예전에는 비포장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어 있어 다소 경사진 산비탈이지만 편히 오를 수 있다. 

 

[불이문]

‘불이’는 진리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기도 하다. 벽면에 사천왕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수종사는 운길산 중턱 해발 400m에 자리하며, 경의 중앙선 운길산역에서 차로는 10여분 거리이며. 오르막  경사로 도보로는,  등산하는 것과 같이 걸어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나의 걸음으로는 한시간이 되지 않를까 ? 발빠른 사람도 30분은 넘어 걸릴듯 하다.  오르는 중간에 미륵불이 자리하며 천천히 오르다 보면 불이문을 마주한다. 이곳 부터는 돌계단으로 사찰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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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문]

 불이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해탈문이 보인다. 해탈을 위해 위만 쳐다보며 힘겹게 올라 본다.

 

 

해탈문을 지나면 사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주 보이는 건물은 무료로 차를 마시며 두물 머리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이다. 쉬어서 차라도 한잔 생각이 있으나,  이내 보물 들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았다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이다.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이며, 삼정헌(三鼎軒) 다실을 통해 차 문화를 계승하여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도 이름이 있다고 본다.

 

 

새로이 조성된 약사여래불이 사찰의 품위를 높이고 있다. 

 

[보물 제 1808 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2013년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석탑으로,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대웅전 옆에 옮겨져 있다.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방식이나, 크기가 작고 변모한 조선초기 석탑의 형태이며, 1957년 해체수리 시,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발원  조성하고, 성종의 후궁 들이  납입한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있었다고 한다. 숭정원년 조각승 성인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으로 본다.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있고,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을 표현하였다.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16엽의 연화문이 , 연판에는 꽃머리 장식이,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조각되었다.  탑신의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정상부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의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라고 한다.

탑의 특성을 살피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또 다른 보물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 2013  호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2019년  보물로 지정된 사리탑으로, 1939년 사리탑을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보물로 지정되어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높이 2.3m로, 형태는  8각을 기본으로  2단을 이루는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옥개석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지대석으로부터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옥개석과 상륜부를 완전히 구비하고 있으며, 조선초기 양식으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각 부에 새겨진 문양의 우수성과 승탑의 형식으로 정혜옹주를 추모한 특이성으로 보아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신앙과 그 조형의 새로운 경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고 한다.

 

[수종사  석탑]

지정되지 않은 이 석탑은 두 보물 사이에 자리하여 함께 돋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은 모습은 기단부가 유난히 높게 자리하고 보발의 크기가 맞지 않아 이들이 한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대웅보전] 정면

앞면 3칸 옆면 두칸의 다포식 건물이다. 대웅전 앞 양쪽에는 특이하게 바나나 나무라 짐작되는 파초가 바람에 날리고,  대웅전의 앞은 여타 건축물이 없어 정면을 훤히 볼 수 있다.

 

[대웅전의 옆면과 탑]

탑과 사리탑이 대웅전 옆에 자리하는 것은 경사진 면에 세워진 절이라 마당이 넓게 나오지 않나서 생긴 구조 인듯하다.

 

[대웅전의 내부]

대웅전 앞에 마치 전망대식으로 만들어진 발코니에 오르면, 산아래 두물머리를 조망할 수 있다. 부처님의 눈 높이에서는 두물머리가 보일것 같다. 맑은 날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말없이 합류하여 하나의 강을 이루는 모습을 아득히 바라본다.

 

 

지금과 같은 건물이나 다리가 없었을 당시 옛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 본 경치는  어떠 했을까 상상해본다.

 

[정선 「경교명승첩」상첩 <독백탄(獨柏灘)> 견본채색 20.2 x 31.3cm, 간송미술관]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수종사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9호로 지정했다. 

 

 
수종사는 예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긴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라 한다. 가을과 겨울의 모습을 볼 기회를 맞이 할 수 있을까. 온통 은백색을 띄고 있을 겨울이 궁금해 진다

 

[은행나무]

이곳에 자리한 보호수인 은행나무의 그늘에 앉아 아래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잠시 먼 강가 경치와 시원한 강바람을 맞는 호강을 해본다. 

 

돌아오는 길은 은행나무 아래 길로 스님 다니시는 길로 주차장으로 사찰을 들르지 않고 내려온다. 가파른 길을 차로 다시금 조심 조심 내려가 이전에 보지 못한 두물머리를 본 기쁨과 함께 보물 2개를 가지게 된 수종사를 기억하며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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