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스물 두번째 - 진도

세종해피뉴스 2023. 8. 2. 19:04

장마비가 내리는데 예정된 여행 길을 떠나 본다. 변산과 진도에서 각 1박 씩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 길이다. 가는 내내 빗줄기가 앞 유리창을 때리는 밤길에 변산 소노벨이란 숙소에 도착한다. 다음 날 잠을 깬 새벽에  폭우로 인한 재난 사고를 당한다. 폭우로 머무는 숙소의 베란다 배수구가 막혀  빗물이 마루와 방으로 들어와 물에 잠기는 참변을 당한다. 유명 숙소인데도 폭우에는 대책이 없었나 보다.  나의 전화기와 타블렛 그리고 가방이 물에 잠기는 참변을 겪게 된다. 새벽부터 많은 수의 직원이 물을 치우느라 애쓰는 가운데 오전을 다 보내고, 우리는 관광과 휴식은 고사하고 어수선한 아침을 보낸다. 전화기와 타블렛의 침수를 직원에 알리니 보험회사에서 해결해 드린다는 말에 조용히 숙소를 물러났지만,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냥 믿고 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변산의 여행엔 장마비와 난리로 숙소에서 허탈감 말고는 무엇을 해볼 수 없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진도 찍을 수 없다는 생각과 아침의 어수선함으로 변산에서의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진도로 향한다. 가는 길 여러 곳에서 산 사태로 무너져 내려 전날의 폭우의 참사를 보여주고 있다. 진도 대교를 지나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는 진도의  바닷 풍경을 접한다.

세방낙조를 찾아 어둑한 흐린 날씨로 노을을 보기는 어렵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로 향한다.

 

[세방낙조의 전경]

노을은 아니지만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눈앞의 풍경에 그간의 어수선함을 달래본다.

 

전망대를 장식한 솟대가 저마다 고개 방향을 달리하며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변길을 따라 돌다 석성을 지난다. 옛성곽을 보니 흥분 되어 차를 멈춘다. 여일 동행의 첫 여행지가 진도이었는데, 이글을 처음 시작시 진도의 두 보물을(쌍계사 삼존 불상과 금골산 오층석탑) 소개한 바 있어 보물이 아닌 문화제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석성을 지나 좀더 자세히 알아본다. 문득 10년 전 이곳의 친구와 대학동기들과 왔던 기억속에 그때가 더  고풍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찾아 올려 본다.

 

[이전 방문의 모습]

진도 석성은 몽골에 저항한 삼별초가 쌓은 성으로 전해지며, 고려 원종 몽골과 항쟁을 벌일때 해안지방의 방어를 위해 만들고,  제주도로 이전도 이곳에서 출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 시대에 진도에 3개의 마을이 있는데 그 중심지가 이곳이고,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 사람이 생활하여  성은 이미 이때도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며,  13세기 왜구의 노략질로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왔다고 하며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설치되던  만호부라는 군사조직이 설치되고, 왜구를 막기위한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다.

 

[진도 남동리 단운교]

 진도 남도석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개울인 세운천을 건너는 2개의 무지개중 하나이다. 사진의 오른쪽에 다소 있는  다리가 단운교 이다.
단운교가  1870년 이후 세워진 것으로 보며, 무지개 모양에 다리 위는 흙을 돋우고 잔디를 심었다. 길이 4.5m, 너비 3.6m, 냇가 바닥에서 다리 중앙부위까지의 높이 2.7m라고 하는 작은 다리이다. 이 지방의 돌을 다듬지 않고 사용 하고, 다리의  윗부분은  편마암질의 판석을 사용하고, 아랫부분에는 윗부분에 사용된 돌보다 약간 큰 강돌을 사용하였다. 다듬지 않은 납작한 모양의 돌을 세로로 세워서 불규칙하게 아치형태로 돌려 쌓았다.

 

[진도 남동리 쌍운교 ]

쌍운교는 주민들에 의해 1930년 즈음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다리가 규모는 작으나 단아한 멋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투박한 서민적인 느낌을 갖게한다. 
단운교와 약 40m 가량 떨어진 쌍운교는 개울의 너비가 단운교보다 넓어 쌍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단운교와 마찬가지로 편마암질의 다듬지 않은 돌과 강돌로 쌓아 만들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속속 들여다 보지 못하고 자리를 옮긴다.  오랜 이동으로 지친 몸을 눞힐 숙소로 찾아든다. 다음날 귀가를 위해 숙소를 나와 진도를 나서기 전 진도타워 전망대를 찾아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자리한 발아래 명량해협을 내려다 보며 정유재란 당시의 명량해전을 떠 올린다

  

이 해협은 길이  약 1.5km에,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고 한다. 밀물 때에는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빠져 나가 조류가 매우 빠르다. 정유재란 당시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이러한 조류를 이용하여 승리 하였다고 한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크고,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데, 유속은 약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임하도(林下島)에서 당시 항해로였던 좁은목을 막고 임하도의 지형과 물살을 이용해 배 13척으로 10배 이상의 적함 130여 척 이상을 크게 격파한 곳이다.

 

[진도대교]

1984년 완공된 명량을 가로지르는 길이 484m, 너비 11.7m로  진도와 해남군을 연결하고 있다. 2005년 12월 15일 제2진도대교가 개통되었고, 2008년부터, 빠른 조류를 이용한 조류발전소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를 찾으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중심한 이곳 명량 해전에 대한 설명과 당시 조선 병사, 전술에 대한 다양한 해설과 삼별초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오늘 날의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섬 진도에서 조상들이 왜세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향쟁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충무공 전술 비연]

연의 문양에 전술 적인 뜻이 있다고 하는데 그 모양을 설계한 문양의 디자인이 너무 멋지게 느겨졌다. 

돌아오는 길 식사를 위해 나주를 잠시 들린다. 

 

[ 나주 서성문]

나주의 막거리 곰탕을 위해 찾다보니 나주 서성문을 지난다. 이곳에는 보물인 나주 서성문안 석등이란 명칭의 보물이 있었던  곳이라 들려 본다.

 

[보물 제 364  호 나주 서성문안 석등 ]

이 석등은 본래 전라남도 나주읍 서문안에 있던 것을 1929년 경복궁으로 옮겨놓았고, 그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건되어 보관하다가 2017년 해체, 보존처리를 거쳐 현재 국립나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전한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는 3단을 이루는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네모난 모양의 널찍한 바닥돌, 아래받침돌은 8각에 연꽃문양이, 기둥은 각면마다 테를 두른  8면으로 안에 한 줄씩의 문장을 새겼다. 받침돌은 8각면에 연꽃무늬를, 화사석은 새로 만든 것이라 하는데 창이 4개다. 지붕돌은 매우 장식적으로 8개 면마다 처마 끝에 세로 줄무늬가 있고, 꽃장식이 두툼하게 달려 있다. 지붕돌 위로는  또 다른 지붕이 축소되어 있다.  맨 꼭대기에 연꽃봉오리모양의 돌은 석등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받침에 새겨져 있는 기록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1093)에 석등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머리부분이 육중하여 무거운 느낌을 주나 고려시대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 8각형 석등의 양식을 이어 받은 것이라 한다.

 

 

 새로이 단장하려는 서성벽공원에 사각연못위에 짓고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서성벽은 운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옮겨본다. 대성전이 보물인 나주 향교를 찾는다.

 보물 제 394호 나주 향교 대성전이 자리한  이곳은 문이 닿혀 있다 . 

 

 

굳게 닿힌 문으로 내부로의 이동이 불가하여 담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본다.

 

[나주 향교]

장마 비로 인해 무성한 잡초가 가득한 가운데 뒤에 대성전이라 생각되는 전각이 보인다. 보려 하던 대성전은 다음으로 연기하여야 한다. 내리는 비가 빨리 자리를 벗어나게 한다. 

친구와의 귀중한 여행 사이사이 찾아 본 문화재 들을 본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해본다. 날씨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이번에 절실히 느끼며, 이곳 나주에 산재한 보물을 위한 새로운 방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빗줄기 쏟아지는 길을 돌아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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