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열 한번째 - 태안

세종해피뉴스 2023. 5. 17. 22:12

- 동문리 마애삼존불상입상,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주말 3일 간의 휴무기간에 단비가 쏟아진다. 저수지의 물이 마르는 시점에 삼일간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보며, 반가운 마음과 함께 오늘의 여행지를 정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 이런날 여행지로는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출귀물이라는 특별전을 기획한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으로 향한다. 빗길을 달려 가는 길,  먼저 태안하면  찾아 보아야 할 귀중한 국보인  태안 삼존불을 먼저 만너러 태을암으로 향한다.

 

[국보 307호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 입상]

보물 제 48호 에서 국보로 2004년 승격한 마애불상은 국보 제84호인 서산 마애삼존불상과 함께 백제시대 때 만들어진 마애불상을 대표 하며,  시대가 더 앞선 점이 인정 돼 국보로 승격하게 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앙에 큰 불상, 좌우로 작은 보살상이 위치하는데, 마애삼존불입상은 특이하게  중앙에 작은 관세음보살을, 좌측에 석가여래, 우측에 약사여래불의 구조로 석가여래가 아닌 관음보살이 중앙에 자리한 독특한 모습이다. 

 

[마애불의 여러 모습]

커다란 돌 덩어리의 한편에 새겨진 불상의 앞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이 지어져 있어, 건물 밖으로 바위의 뒷면이 돌출되어 있다.  비오는 날이라 흐려서 인지, 적막감 삭막감 속에 오랜 세월 자리한 모습을 맘껏 느껴본다. 지난번 상주에서 본 신항리 마애불과는 다르게  중심 불상이 적고 협시불이 크게 묘사 되어 있다. 마애불을 조성시 바위를 그대로 활용하여서 인지, 비를 피하기 위해 감실 처럼 안으로 파거나 기울게 하여 부처님을 조성하는 듯 하는데,  이 불상들도 바위면이 기울고 안으로 파들어간 모습이다.

 

 

마애불로 가는 길 목에 자리한 바위에 새겨진 태을 동천의 글이 새겨진 것이 궁금하여 진다.  오래전 동북아의 태일신(太一神)의 숭배와 관련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28 곳에 태일의 용례를 볼 수 있는데, 그 중 태일초례를 거행한 기록만도 20회에 이르러, 태일신 신앙이 국가적 의례로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고려 때는 궁궐 안에 태일전이 따로 있었으나, 조선 태조 때에 이르러 태일전을 파하여 소격전에 합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에 1434년부터 매년 정월 15일에 왕이 하사한 향으로 초제(醮祭)를 지냈는데, 경북 의성에 있는  태일전을 이곳 태안의 고성사 있는 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현재 고성사는 없고. 중종 13년(1518년) 태일전이 폐지된다. 

 

감막대(感幕臺)라는 명문이 새겨진 바위와 일소계(一笑溪)라는 글이 새겨진 작은 연못이 보인다. 이곳은 조선시대 불교탄압의 현장으로 유생들이 이곳 감막대에 앉아 부처님께 돌을 던져 맞히는 놀이를 하고,  한 문중의 족보 보관 장소로 일소계 일대를 사용했다 한다. 
 

[태을암의 대웅전]

백화산 태을암이라는 이름은 단군영정을 모셨던 '태일전(太一殿)'에서 따왔다고 설명되고 있다.  중종 13년(1518년) 태일전이 폐지되면서, 태일전의 잔해가 옛 고성사 자리에 증축되면서 태을(太乙)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태을암이 된 것이라는 추정한다고 한다.

 

천수만이 보이는 백화산을 내려가는 길에 비로 인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태안의 해양유물 전시관으로 향한다. 바닷 길을 지나지만 폭우로 인하여 운무에 가리워져 있다. 해양박물관은 쾌적한 분위기에 창밖에 안흥항이 보이고 방파제 안에는 몇몇 배들이 발이 묶여 있다. 내부는 책을 열람하는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고, 어린이날 기념 작은 행사들이 진행 되고 있다. 이날은 가족과 함께 하는 많은 방문객을 볼 수 있다. 

2007년 태안의 대섬에서 산란기 쭈꾸미가 조개 속으로 들어가며 뚜겅으로 덮기 위해 접시를 움켜지고 낚시에 잡힌 것이 처음 태안의 유물을 발견하게 된 동기라 한다. 애석하게도 이 쭈꾸미는 포상금도 못 받고 그대로 공판장으로 이슬로 사라졌다 한다. 이 를 계기로 견져 올려진 것과 여러번 그물에 걸려 올라 온 접시로 인해 인양한  마도 1, 2 ,3호 등의 유물이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2018년 이 지역 해양문화 유산 조사. 보전, 연구, 활용을 위해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을 개관하게 된다.

 

 특별전으로 전시된 보물들을 보게 된다. 3부로 4가지 유형의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  

ㅇ제1부 <바다에서 나온 두꺼비> 

 

[보물 제1782 호  청자 퇴화문 두거비 모양 벼루] 2012년지정

 특별히 전시된 이 곳에서 처음 나를 맞이하는 보물은 그 모습이 동화에 나올 듯한 두꺼비 모양의 벼루이다. 아마도 글 공부에 관심이 없는 어린 아동에게 호감을 주려 특별 제작한 듯 앙증 맞고, 요즘의 장난감이나 에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은 모양이다.  태안 대섬 해저에서 대접, 접시, 완, 발우, 주자, 향로, 도기, 목간과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목간에서 ‘탐진현재경대정인수호부사기일과'라는 묵서가 적혀 있는데, ‘탐진(현재의 강진)에서 개경에 있는 대정 인수 집에 도자기 한 꾸러미를 보낸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간의 내용으로 보아 강진에서 제작된 후 운반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것은 출토지와 제작 시기가 비교적 정확한 편으로, 보기 드물게 철화와 퇴화 기법으로 두꺼비의 전면을 장식하고, 연당의 가장자리에 알과 같은 중첩된 반원 문양은 연당에 먹을 갈기 편리하게 해 놓은 것으로도 추정된다.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자세에 눈과 발가락 표현 등이 섬세함을 갖춘 작품이다. 

도자기의 모습이 보인다

 

ㅇ제2부 <바다 빛을 머금은 푸른 매병>

 

[보물 제 1783 호 청자 상감 국화 모란유로죽문 매병 ]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과 죽찰은 태안군 마도에서 마도 2호선이라 명명된 고려시대 선박에서 인양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 경의 도자기 이다. 모습은 과형(瓜形)처럼 몸체를 6개의 면으로 음각 분할하고, 상하 종속문으로 뇌문과 연판문을 상감하고, 주제문으로 몸체 가운데 흑백 상감으로 된 능화형 창 안에 다양한 문양 조합을 표현한다. 문양은 세 종류로 버드나무와 수금, 새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형식, 대나무나 갈대와 수금의 형식과 닥꽃이나 모란, 혹은 국화에 수금과 나방을 결합하는 형식이다. 유색은 유약이 골고루 녹지 않아 부분적으로 선명하지 않고, 유약의 핀 홀 현상과 뭉침 현상이 보인다.
죽찰에는 ‘준(樽)’이라는 고려시대 매병의 표기와 참기름을 담았던 매병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죽찰의 홈은 죽찰을 매병에 매달기 위해 판 것이고, 앞면과 뒷면 모두 글자가 있으며, 앞면은 8자, 뒷면은 6자 총 14자다. 앞면에는 “중방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가 적혀 있는데 수취인을 적은 것이다. 뒷면에는 “택상진성준봉(宅上眞盛樽封)”이라고 쓰여 있어 준(樽)에 참기름을 담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보물 제 1784 호 청자음각연화 절지문 매병]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과 죽찰도 태안군 마도2호선에서 출토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반 경 제작으로 추정된다. 11-12세기 제작의  청자 음각연화문 매병과 연화의 가지와 꽃잎, 꽃봉우리 등의 표현방식이 매우 유사하며,  세부 잎맥은 가늘고 얕은 음각기법으로, 연줄기 밑둥은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점을 찍는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연꽃줄기의 표현방식은 고려시대 매병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중국 정요 매병에서 일부 보이는 기법이라 한다. 
죽찰에는 ‘준(樽)’이라는 기명의 명칭과  꿀을 담았던 매병의 당시 용도를 알 수 있게 하여 시대성과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앞면과 뒷면 모두 글자가 있고, 앞면 8자 뒷면 7자 총 15자다. 앞면에는 “중방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가 적혀 있는데 수취인을 적은 것이다. 뒷면에는 “택상정밀성준봉(宅上精蜜盛樽封)”이라고 적혀 있어서 준(樽)에 꿀을 담아 올린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매병이 참기름이나 꿀등을 담는데 사용 됨을 알려 준 귀중한 유물이다

특별전에 같이 진영된 사자형 향로 2점을 보게 된다. 

 

ㅇ제3부 <바다를 울리는 사자의 포효>

 

[보믈 청자사자형 뚜껑 향료]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2건 4조 : 각각 뚜껑 1점과 향로 1점으로 구성) 지정 일자는 2022.04.26 이라 보물 몇 호인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다.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사자형상을 한 뚜껑과 네 굽이 달린 받침으로 구성된 고려시대 향로로, 이 유물들은 2007~2008년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발견된 ‘태안선’에서 출수 되었다. 태안선에서 인양된 ‘탐진(耽津)’, ‘최대경(崔大卿)’과 같은 목간을 통해 12세기 전반 강진에서 제작한 청자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중 침몰한 선박이라 한다. 약 25,000여점의 청자 및 유물 들이 출수된 일부이다. 
이 청자향로는 원형의 동체에 사자형 장식을 단 뚜껑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향로뚜껑 위사자는 세운 앞다리와 치켜세운 꼬리가 특징이다. 목에는 방울이 있고,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는 보주(寶珠)를 끼고 있다. 몸통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며 ,활짝 벌린 입, 이빨, 혓바닥 등이 세밀하게 표현 되었고, 뒷면은 갈기가 그려져 투박하지만 사자의 형상을 모두 갖추고 있다.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많지 않는 희귀한 상형청자 작품으로 해학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유물이다.  상설전시관을 둘러 본다.

 

[마도 1호선 재현 선]

전시실에는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한 발굴당시의 목선이 당시의 배의 크기와 형태를 알게 해 준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크지는 않지만, 당시로는 적은 크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전시실 한편에는 배에 화물을 실은 모양을 재현해 놓아 운반하는 양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의 뒷면]

아래층으로 내려와 본 배의 모습은 위에서 보다 웅장함을 보여준다. 높아 보이는 돛과 크게 후미를 장식한 키가 인상적이다. 

 

[ 인양당시의 모습을 재현]

인양당시 바닷속의 모습을 재현 한 모습에서 청자 접시를 꾸러미로 만들어 적재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곳엔 인양 장비도 함께 전시하고, 문화재 인양 화면과 실제 체험 장비도 있어 많은 방문자에게  알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양 유물 전시모습]
[인양유물 전시 모습]
[인양유물 접시류]
[전시된 유물]
[전시된 유물]

해양유물이 발견되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다는 것과 해양에 매장된 유물은 비교적 온전 한 모양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해양유물을 한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끽한다. 

 

[ 수홍루]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이 있는 신진도를 잇는 신진대교를 돌아 나오다 보면 안흥성이 모습을 보인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 하던 곳으로, 군사적 요충지이며 성의 둘레는 약 15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이다. 조선 효종 때 김석견의 상소를 시작으로 천연의  요새지에 인근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고 한다.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때 건물이 모두 소실되고, 성곽은 폐성된다. 동·서·남·북 4곳에 설치한 성문은, 동문은 수성루, 남문은 복파루, 서문은 수홍루, 북문은 감성루로,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다는데, 성안 동문 쪽에 영의정 김우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고 한다.

 

빗 속에 들려 본 태안 유물 전시관의 방문은 문화 탐방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매장 문화재와 사찰, 궁궐 문화재를 주로 접하던 그 간의 경험과는 다른 것이었다. 해양 유물의 발견을 통하여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당시 생활상이나 많은 규모의 문화재를 보며, 순간 임진 왜란의 거북선을 떠올린다. 이렇듯 발굴이 진행되면 머지 않아 거북선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원균의 칠천량 해전 당시 침몰한 3척의 거북선이 있었다고 하는 데, 머지 않아 거북선에 관련 된 유물이 발견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오늘은 내리는 비로 인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됨을 정리하며, 학창시절 추후 목표를 거북선 발견이라는 큰 야망을 가지신 어느 선배님을 잠시 떠올리며, 비를 앞유리창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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