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여덟번째 - 남양주

세종해피뉴스 2023. 5. 9. 00:22

- 흥국사

서울의 근교인 남양주의 보물을 찾아본다. 먼저 흥국사로 찾아간다. 수락산의 흥국사는 원광국사가 당나라 유학 후 돌아와 수락사를 창건하고, 조선 최초의 적통이 아닌 국왕인 선조가 부친인 덕흥대원군의 원찰을 이 곳에 지으면서 흥덕사(興德寺)로, 1626년 중건하면서 흥국사로 되었다 한다. 이 사찰은 근처에 덕흥 대원군의 묘를 쓰며, 왕실의 관리가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사찰로 지정되어, 대웅전과 법당 등을 중건 했고, 1878년 소실된 것을 용암이 중건, 1829년 영산전 불화들 봉안한다. 선조는 부친 덕흥대원군의 묘를 왕이 아니어도 덕릉(德陵)으로, 흥국사를  덕절로 불리운 게 하여, 아버지를 ‘덕종’으로 추존이 국법상 불가하니 아버지 무덤이라도 능으로 부르고 싶어했던 것이라 전한다.

 

[ 흥국사 대방 ]

대방이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소실 된 만세루 터에 1878년경 지은 H 자형 건물이며, 지금은 많이 없는 선방의 역활을 하던 건물이다. 정토 염불사상이 성행시 염불 수행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염불 수행공간 외  누, 승방, 부엌등의 부속 공간이 함께 한, 일반 전각과는 다른 구조를 지니는 복합 법당이다.  지금도 스님 들의 수행처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방은 그 연혁이 잘 나타나 있고,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근대적 건축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글씨인 흥국사 편액이 가운데 자리한다. 능을 관리하는 능침사찰로 역활을 하다, 나중에는 상궁이나 파견관리들이, 머무는 거처로 활용되었다 한다.

 

사찰은 대방의 뒤에 영산전, 대웅보전, 지장전이 일렬로 자리하고, 한단 위에 만월보전이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범종각과 새로이 지은 나한전이 있다.

 

[대웅보전]

곧 다가올 초파일에 불 밝힐 연등으로 인하여 정면은 눈으로 만 익히게 된다. 대웅보전을 한단 위에 자리한 만월 보전에서 보면 지붕 처마엔 잡상이 존재한다. 궁궐 터에서나 있어야 할 잡상이 대웅보전에도, 만월보전에도 설치되어 있다. 여러 번의 화재 이 후 1821년에 다시 세우고, 1888년에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기다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원형의 주춧돌과 둥근 기둥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동 사이엔 수평재인 창방과 평방의 위에도 공포가 놓인 대포계 형식이다. 지붕 네 귀퉁이 가는 기둥인 활주가 있으며, 옆면과 뒷면은 흙으로 벽을 치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 건물 지붕의 궁궐 건물에 보이는 용두와 토수, 잡상, 건물 합각에 부(富) 자, 돌계단의 3태극 문양 등이 대웅전에도 보여 왕실의 인연과 지원이 있었음을 과시한다. 

건물 안팎으로 단청이 화려하고 건물 모서리 기둥의 공포에 용조각을 추가한 모습은 조선후기 불전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지붕 위에 올린 기와로 된 조각상(잡상)은 궁궐에서도 특히 중요한 건물에만 올리던 특수기와의 한 종류로 이곳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왕실의 후원으로 나라의 안녕을 기도하던 장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웅보전 옆면]

법당 안에서는 천도재가 있어 다른 전각을 둘러 보고 나니 끝이나 들어서 본다.

 

[유형문화재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나의 눈에 보물일 것으로 생각 되는 불단이 보인다. 삼존불과 광배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후불탱화 대신 화려한 금박장식의  목조 광배(光背)아래 자리한다.  나무 광배는 각각 3, 4장의 판목을 덧 대어 못으로 고정시켜 틀에 끼운 것이라 한다. 안쪽에는 연꽃을,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둘렀다. 광배의 꼭대기에는 따로 조각하여 끼운 화불과 석가불 광배에는 화불 3구를 새겼지만, 문수보살의 광배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상을, 보현보살의 광배에는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상이 각각 새겨져 있다. 이 삼존불을 만든 시기는 8세기 중반으로 보고 있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민 구부정한 자세, 사각형의 얼굴과 신체 구성, 정수리와 머리 중앙에 뚜렷이 드러난 원통형과 반원 모양의 상투 매듭 구슬(髻珠), 폭이 넓고 단순한 옷주름 표현 등은 조선 시대 후기 불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시왕전의 지장보살과 시황상]

대웅보전 옆에는 문이 서쪽의 대웅보전을 바라보고 있는 시왕전이 있다. 다른 사찰로는 명부전, 지장전이라 불리는 곳이다. 정조가 백일기도로  왕자를 얻어 보은으로  시왕전을 지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지장전에는 모두 21구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는데, 시왕상 복장물에 따르면 이 상들은 1792년에 모두 42명의 조각 스님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흥국사 지장전 정면에는 갸름한 얼굴의 지장보살이 가운데,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보좌하며, 자신의 업을 비추어 볼수 있는 업경대도 있다. 그 좌우로 시왕상이 함께 모셔져 있으며, 문 입구 양 옆에는  금강역사상이 이들을 지키고 있다. 

 

[만월보전]

대웅보전과 시왕전 사이의 한단을 오르면,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육각형 건물로 지붕에 용두, 잡상, 토수 및 주련을 가진 만월보전이 보인다. 주련은 마지막 대원군이 흥선 대원군이 쓴 것이라 한다. 

 

[만월보전내 약사여래 좌상]

약사여래불은 하얗고 둥근형의 얼굴과 몸, 빨간 입술로 자리한다. 서울  봉국사에 모시던 불상이라는 데 이곳에 온 전설이 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출가한 딸이 부친을 위해 약사여래를 조성하여 정릉 봉국사에 모시고 기도를 드리니 그 효험으로 병이 나았다 한다. 이 소문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되고, 스님들이 모심에 점점 진심을 다하지 않자, 홀연히 약사여래가 행방을 감추게 된다. 약사불을 발견해 옮기려 해도 요지부동이어서. 유명한 절 이름을 대던 중 “흥국사로 가시겠습니까?” 하니 꿈쩍 않던 부처님이 번쩍 들렸다고 하고, 그 약사여래불이 만월보전에 모셔져 있다. 부처님 모심에 진심을 다하는 말인가 보다.

 

[만월보전의 지붕위 잡상]

 보물인 삼존불이 존재했던 영산전을 찾는다.

 

[영산전]

1982년 새로이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포집 구조 이다.  공포의 4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가 있으며 이전에는 보물인 석가삼존불좌상과 16나한상이 모셔져 있었다. 영산전’은 여러 부처와 보살을 모시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불전 중 하나로 ‘팔상전(八相殿)’이라고도 한다. 옆면과 뒷면은 나무판과 흙으로 벽을 치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영산전 측면]

공포의 모양과 색상 그리고 벽화로 장식된 전각이다. 이 건물은 공포를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설치하면서도 용과 연꽃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영산전 외벽벽화]

영산전 외부벽화에는 호랑이로 화재가 된 벽화가 있다고 하여 살펴본다. 이곳의 호랑이는 무서운 이미지 보다는 무슨 연유이지, 스님을 등에 태우고 달리는 모습이나, 금강역사에게 발목을 잡혀 들려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찰 벽화엔 호랑이를 애완 동물처럼 묘사하거나, 호된 벌을 내리는 벽화를 통해 중생의 고된 삶을 깨우치게 한다. 벌 받는 호랑이 표정을 통해 불법의 위대함을 보이는 것 같다. 이는 민간신앙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를 동화시켜 대중과 함게 하려는 뜻일 것이다.

 

[영산전 천장]

내부는 마루를 깔고 불단을 뒤쪽 벽에 붙여 설치하였다. 불상 위에 설치한 닷집은 지붕이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 지붕에는 ‘적멸궁(寂滅宮)’이라 이름을 써서 걸었고, 위쪽에는 ‘내원궁(內院宮)’이라고 걸었다. 내원궁은 궁궐의 대비와 왕비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이 곳이 왕실의 복을 빌기 위한 장소 임을 보여 주고 있다.

내부에도 불단 앞쪽에 마주보고 용 장식을 두면서 천장에 학과 연꽃, 쌍희 희자(囍, 큰 기쁨과 경사를 상징하는 글자)를 그려 넣어 한껏 장식하였다. 이런 화려한 장식은 조선후기 불전의 특징과 왕실의 복을 기도하는 곳이라는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산전 삼존불]

 이곳은 팔상전 처럼 꾸며지려 하는 듯 하다.  보물의 삼존상 대신 새로이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과  흰천으로 가려진 부분에 팔상도가 자리하는 듯 하다. 영산전의 삼존불과 나한상은 새로 지은 나한전으로 이운 한것으로 짐작된다

 

[영산전 천장 장식]
[나한전]

사찰의 오른쪽에 새로이 지어진 나한전은 이곳으로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나한상 일괄을 이운하여 옮기는 곳인 듯 하다. 굳게 닫힌 문이 당겨보아도 열리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어 새로이 전각을 마련하고 불사를 이룬 듯 하나 눈에 직접 담지 못하여 아쉬움이 더한다. 

 

[보물 제 1798  호 남양주 흥국사 소조 석가여래삼존불상 및 16 나한상 일괄] 문화재청 자료

이 보물은 나한상과 함께 새로이 모셔진 모습을 찾아보고 담아 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흥국사 성임당탑]

흥국사 경내에서 동북쪽 능선에 보이는 탑이다. 기단부와 옥개석은 팔각, 탑신석과 상륜부는 원형이다. 신라시대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탑신석이 원구형인 원구형 부도에 속한다. 기단부의 연화문과 안상, 높은 옥개석, 연주문이 표현된 상륜부로 건립시기를 조선 후기로 추정한다. 탑신석 상부에는‘ 성임당축존지탑(聖任堂竺尊之塔)’이라는 명문이 있어, 주인공 당호가 성임당이며, 법명이 축존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흥국사는 국왕의 지원으로 여러 번의 중수가 있던, 조선 후기 왕실과 관련이 있었던 사찰로, 부도의 양식과 치석수법 등으로 보아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범종각의 목어]

불 사물인 (운판, 목어, 범종 2개, 법고)이 있는 범종각의 편액은 오래되어 색이 바라고,  주련은 없다. 용과 잉어를 닮은 목어의 모양이 눈에 든다.

무작정인 방문에 보물을 친견 못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것은 부처님과의 업보 일지도,  새로이 불사를 확장하는 일로 이번의 흥국사의 보물은 놓히고 말았지만, 그래도 희귀한 잡상을 올린 지붕과 보살 그리고 화려한 광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아쉬움에 실패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남양주의 보물인 범종을 찾아 나선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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