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아홉번째 - 남양주(2)

세종해피뉴스 2023. 5. 11. 22:04

- 봉선사, 불암사

흥국사를 나와 보물로 지정 되어 있는 범종을 찾아 나선다.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 숲 속에 있는 봉선사에는 보물인 범종이 있다.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년)에 승려 탄문이 창건한 운악사가 전신이라는 고찰이라 전해지며, 조선 예종(1469년)때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며 광릉이라 하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고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현대에 복원한 건물 들이 남아 있다.

 

[범종각]

사찰 입구의 거대한 일주문을 지나면 산책 데크로 꾸며진 너른 연못이 있으며, 이를 지나 사찰로 들어서는 오른쪽에 범종루가 자리한다. 보물 제 397호 봉선사 범종이 2층 누각으로 지어진 범종루에 자리하여 발길을 옮긴다.

 

[보물 제397 호 남양주 봉선사 동종]

남양주 봉선사 동종은 예종 원년(1469년) 왕실의 발원으로 제조 된 범종으로 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라고 한다, 융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활을 하고 있는 조선시대 종의 모습이다. 종의 중간에 줄을 넣어 부분부분을 구분하고 있으며,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연곽과 보살입상을 교대로 배치하고, 가로 줄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 쓴 장문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든 연유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 국가적인 감독으로 만들어진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종의 입구에 넓은 띠에 파도치는 모양이 표현되어 있고, 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은 형태,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보살입상의 새로운 요소가 조선시대 종의 조선시대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 한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3층석탑, 큰법당]

대웅전에는 큰 법당이라는 한글로 된 현판이 걸려 있고, 큰법당 아래는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절의 마당에는 연등이 설치되어 있어 다가올 행사에 대한 준비가 한창으로 오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큰법당]

큰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며,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봉선사의 큰 법당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겉 모습은 팔작지붕에 다포 형식의 목조 법당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콘크리트로 다포까지 만들어 전통사찰처럼 단청을 입혀서 영락없는 전통 목조 건물처럼 보인다.  불교 경전 한글화 사업에 평생을 바친 운허 스님 덕분이라 한다.

관심을 가져 갈 만한 것을 찾아본다. 이 사찰에 보유한 또 다른 보물은 괘불도 이다. 쉽게 볼 수 없는 문화재 임을 알기에 찾아보는 것은 포기하고 자료를 인터넷을 통하여 구해본다.

 

[보물 제 1792호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문화재청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비로자나삼신불과 권속을 그린 괘불도로, 상부의 중앙에 법신 비로자나불, 우측에 보신 노사나불, 좌측에 화신(化身) 석가불, 하단 좌우에 6구의 보살과 범천 및 제석천, 10대 제자, 하단 중앙에는 주악천인과 용왕, 용녀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봉선사 괘불도에서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은 여래형으로, 노사나불은 보관을 쓴 장엄형으로 묘사되어, 학림사 괘불도와 동일한데 이는  봉선사 괘불도에 도화원 칠혜가 노원구의 학림사 괘불도를 조성하였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 괘불도는 1735년 상궁 이성애(李性愛)가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1669~1735년)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는 왕실발원 불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사찰을 나와 주차장으로 돌아 가는 길, 올라 올때 지난친 정원 처럼 꾸며 놓은 연못 주변을 걸어본다. 이 곳에는 여러 불상을 모시고 있다.

 

[사면 불상]

발길을 잡는 사면 불상이 연못가에 조성되어 있다. 하나의 돌에 사면을 돌아가며 모신 부처님 들의 모습과 표정이 다양하다. 근래에 조성된 불상인 듯 한데 표면을 거칠게 마감하여서 인지, 시대가 오래전 만들어진 불상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근래 조성된 불상의 매끈한 마감에서 오는 섬세함 보다 이 불상은 정이 간다.

 

[지증 국사 현모탑]

 발길을 잡는 탑이 있어 찾아본다. 이는 부처님 오신날 봉축 행사에 남양주 시청앞에서 중생을 위해 불을 밝히던 탑이라 힌다. 휴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이곳 광릉의 사찰은 많은 것이 현대적인 시설과 환경을 갖추고, 모든 것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봉선사를 뒤로하고 봉선사의 말사이기도 한 불암사로 향한다.  불암사는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 동쪽 기슭에 자리하는 사찰로, 불암산은 필암산 또는 천보산 이라고도 한다. 불암사는 서울 근교 사대명찰 중의 하나로서, 세조 때 사방에 왕실의 원찰을 하나씩 정할 때 동불암으로 꼽혔던 곳이라고 한다.  824년(헌덕왕 16)에 지증대사가 창건하였고, 도선이 중창하고, 무학이 삼창하였다 한다. 이 후 성종 때 중건하고, 1782년(정조 6) 서악이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제월루를 이건, 1991년 관음전의 소실로 1992년에 중건하였고, 1994년 일주문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당우로는 금당(金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제월루·관음전·칠성각·경판고·일주문·요사 등이 있다. 

 

[불암사 일주문]

 1994년 세워진 사찰의 일주문은 다듬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보산 불암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받침돌이 적어 보이고, 커다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면 오래전에 세운 것처럼 운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의 인가로 인해 다소 산만한 느낌으로 통과한다. 

 

[대웅전 과 석탑]

 꾸며 놓은 연뭇을 지나고 사천왕상이 그려진 제월루를 지나서, 사찰로 들어서면 대웅전과 탑 그리고 멀리 마애불상이 보인다. 반가운 웃음으로 반겨주는 천진동자불상으로 인해 여행의 피로를 덜어본다. 

보물을 찾아 여러 전각을 방문한다.

 

[보물 제 2003호 남양주 불암사 목조 관음 보살좌상]

이 보살좌상은 17세기 전반의 조각승 무염을 비롯하여 성수, 심인, 상림, 경성 등 모두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1649년(인조 27)에 완성한 불상이다.  조성발원문과 중수발원문이 남아 있어, 원래는 대둔산 묘련암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1907년 양주 천보산 불암사에 봉안하기 위해 개금 중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높이 67cm의 규모에 머리에는 연꽃과 불꽃문양의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가사는 이중착의법에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다.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후기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무염이 수(首)조각승을 맡아 제작한 작품으로, 정확한 제작시기와 봉안처를 알 수 있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하여 17세기 중엽 불교조각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라 한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대웅전  삼존불]
[칠성각, 제월루,지장전의 법당안]
[마애 삼존불]

마애 삼존불 뒤에는 1989년에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각각 3과와 4과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세운 진신사리보탑이 자리한다.

 

[지장전]

지장전 옆의 안내판을 통해 이곳에서 보물 제 591호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이 새겨 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보물은 보존을 위해 불교중앙박물관 소장에 소장 되어 있다고 한다.

 

[보물 제 591호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

불암사판 <석씨원류응화사적>은 인조9년(1631) 명에 파견된 사신 정두경(정두원)이  들여온 책을 유점사 승려 지십이 현종14년(1673) 양주 불암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외에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들여온 책을 인조26년(1648) 고창 선운사에서 판각한 선운사판 <석씨원류응화사적>이 있으며,  조선후기에는 선운사본보다는 불암사본이 널리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총 212판으로 구성된 책판은 4권 400항목의 분량에 해당한다. 1,2권에는 석가모니의 일생과 행적을 서술하고, 3,4권에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사연과 고승들에 얽힌 고사가 열거 되어 있다 한다. 신라의 의상과 자장, 고려의 의통에 관련된 설화도 실려 있어 한국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이다.  여러 경전의 내용을 취합하여 석가여래의 일대기와 고승들의 행적을 통한 불교사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여 대중적인 교화를 위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암사판 <석씨원류응화사적>은 석가여래의 행적을 그림으로 나타낸 판화로서 조선후기 팔상도의 도상적인 연원이 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불교중앙박물관 자료참조)

책 첫머리에는 중국 명나라 헌종 22년(1486)에 헌종이 직접 쓴 서문이 있고, 다음에 당나라 왕발의 석가여래성도기(釋迦如來成道記)가 있다. 책 끝에는 화가와 인쇄조각자 18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누가 이 책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칠성각, 산령각, 신통전]

산령각은 산신각을 신통전은 독성각을 말하는 듯, 요즘의 통합한 이미지의 삼성각인데 이곳은 각각을 구분하여 놓았다.

 

[제월루 내부]

보물을 찾아 사진을 비교하며 이곳저곳  전각을 방문하였으나 발견 못하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린다. 오늘의 여행지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소재지는 문화재청 자료에도 불암사로 되어 있지만 실제 이 불상은 보호 차원에서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은 이곳 불암사에서 새긴 목판이지만 불교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오늘의 여행에서 범종을 보게 된 것과 서울 주변의 사찰의 화려함과 많은 방문을 보는 것으로 마치게 된다. 서울 근교에 자리한 예전 궁궐의 지원을 받던 사찰의 특이성을 기억에 담으며, 만나지 못해 아쉬운 보물을 떠울리면서 귀가 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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