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열두번째 - 상주

세종해피뉴스 2023. 5. 22. 17:20

오늘도 비는 이어진다. 이런 날은 박물관 나들이다. 태안의 즐거움에 고취되어 오늘은 전시회 "인쇄 출판 역사와 지혜의 숲을 만들다 " 기획전시회가 있는 상주 박물관을 찾아 간다. 경천대 국민 관광지와 인접하지만, 비로 인해 경천대 방문을 접고  지나치며  박물관으로 향한다. 

 

[상주 박물관 전경]

 왠지 비오는 날 우산 쓰며 박물관을 찾는 것이 지식인 흉내를 내는 듯 하다는 생각이다. 날이 좋으면 바깥의 유물을 보면 되고,  비오는 날은 박물관을 찾는 것이 왠지 좋은 결정이라 생각하며 기획 전시실로 발길을 옮긴다.  오늘의 기획전은 "인쇄 출판 역사와 지혜의 숲을 만들다" 마침 쉽게 접할 수 없는 보물급 도서도 볼 수 있게 되어 기쁨이 배가 된다. 입구에는 여러 목판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해박한 지식이 없어 그저 눈으로 익혀 본다.

 

[전시물]

 특별기획전의 테마를 알아본다. 몇권의 보물이 눈에 든다. 

1부 우리나라 목판인쇄의 시작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일체여래심비밀 전신사리 보협인다라니

2부 1장 목판인쇄에 담은 염원, 고려대장경 : 유가사지론, 유식이십론, 감지금니 대광불화엄경, 대승신론소 권하

2부 2장 세계속에 빛나는 금속활자 인쇄 : 남면천화상송증도가, 직지,중도가자

3부 1장 역사를 담은 서적출판으로 이어진 금속활자 인쇄 : 십칠사찬고금통요, 효경, 가례요략, 대승신론소(보물)

3부 2장 : 지혜를 담은 족보, 문집으로 확산 된 목판및 목활자 인쇄 : 삼강행실도-효자편( 보물), 법화현론(보물), 선종영가집 언해, 향약집성방, 두률분운, 금릉집

4부 상주에서 만드는 역사와 지헤의 숲  

 

"인쇄 출판 역사와 지혜의 숲을 만들다 " 기획전 답게 우리의 책을 만드는 인쇄술의 변화를 자료와 연대별로 정리해 놓았다. 시대별 인쇄술의 발전을 살펴 본다.

  

[년도별 도서 출판]

이곳 전시장 안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서양의 인쇄술에 관한 자료와 도구 등도 전시하고 있다. 도서 중에 관심이 가는 보물 서적 들을 알아본다.

 

진열된 도서 중에 보물만 발췌 하여 소개하여 본다.

 

[보물  법화현론 권 3-4, 2022년 지정 ,김병구 소장과 보물 제 1717호 삼강행실도 -효자편] 15세기 조창현 소장]

보물이라는 병기가 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었을 서적이다. 물론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법화현론』은 『묘법연화경』을 해석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중심 사상과 개념, 문장 등을 해설하여 총10권으로 편집한 불경이라 한다. 고려 숙종 7년(1102)에 대흥왕사(大興王寺)에서 간행한 원간본을 조선 세조 7년(1461)에 간경도감에서 중수한 번각본이다.  ‘법화현론 권3∼4’는 완질이 아닌 낙질 본으로  조선 초기의 각 필과 묵서, 점, 부호 등의 표기 방식과 더욱이 법화사상 연구에 가치가 있다는 점이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라고 한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세종대왕의 지시로 편찬된 책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실천을 중요한 윤리도덕으로 삼는 조선에서 국민윤리 교과서적 성격을 갖는 교본인 동시에, 뒤이어 편찬한 행실도류(行實圖類) 도서의 전범(典範)이 되는 책이다. ‘삼강행실도’는 진주에 거주하는 김화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자, 사회풍속을 바로 잡고자 세종의 명으로  편찬한 것으로, 일부는 누락이 있지만 원간본으로 서문과 목록 등이 온전히 남아있고,  성종 때 간행된 판본 이전의 효자도의 모습을 알 수 있어 지정 되었다고 알려진다.

 

[보물  대승기론소 권하 2022년 10월 지정]

 중국 당나라 법장이 마명(馬鳴)이 지었다는『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해 주석한 교장의 일종으로 조선시대 1457년에 금속활자(초주갑인자)로 간인한 불서 3권 1책이다. 이『기신론』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종분(正宗分)은 그 아래에 인연분(因綠分), 입의분(立義分), 해석분(解釋分), 수행선심분(修行善心分),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 책은 본래 원효의 주석서인『기신론소』에 영향을 받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법장의 「소」에 종밀이 주해를 가한 주석서로서 조선 세종 연간에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교학 불서이다. 일본에서는 수차례 간행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이 책이 유일한 원간본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약간의 상권의 일부가 결실되어 유감스러우나, 국내 유일의 원간본이라는 점에서 불교학 및 조선 초기 고활자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문화유산 포탈 참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업경 권 6]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22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으로 세존이 도솔천궁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검푸른 색의 종이(紺紙)에 금가루(金泥)로 정성스럽게 옮겨 쓴 고려시대 사경(寫經)이다. 앞부분에는 변상도(變相圖)가 있고, 본문의 내용도 금가루로 정성껏 쓰여져 있다. 10개의 연화문으로 이루어진 표지화는 매우 드물고, 정확한 기록이 없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종이의 질이나 그림과 글씨의 솜씨 등으로 미루어 14세기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표지화의 독특함, 금가루만으로 이루어진 점, 14세기 고려시대 사경이라는 점 등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큰 자료이다. (문하재청자료)

이 외 다수의 서적이 전시되어 있으나, 사실 이곳에 전문 해설사가 궁금한 점을 알려 주었으면 하는 이쉬움이 있다. 해설사가 있는데 활용을 못하였다면 나의 불찰이지만 상설 전시관으로 향한다. 이곳 상주는 사벌국과 관련이 있어 이를 소개하는 글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소개하면 원삼국시대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사벌국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사벌국의 오래된 성에 대한 기록과 신라가 사벌국을 점령하였다는 기록으로 사벌국의 존재를 엿 볼 수 있다.  

 

 

사벌국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위치하였던 삼한 소국으로  일명 사량벌국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나라는 본래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점해왕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고, 그 뒤는 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 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어 사벌국이라 칭하고 11년간 이 지역을 통치하다가. 그 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아 929년 패망하였다고한다.

 

상주 박물관에는 이시대의 청동기 문화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사벌국에 대한 많은 설명을 통하여 지역 문화의 보전과 알림에 애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벌국의 말갖춤과 무기]

상주지역의 고분에서 다량의 말갖춤 유물이 출토 되어  삼국시대 당시의 말갖춤 문화의 수용 과정을 파악 하는 자료로 쓰이고 , 무덤에서는 화살톡, 큰칼, 쇠창, 도끼 등 당시의 무기도 함께 출토 되는데 신분에 따라 부장량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보물 제 118호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 입상 (복제품), 보물 제 669호 정기룡 유물, 사서 전식 초상화]

석조여래 입상의 복제품은 상주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1.9m 석불 입상이다.  마멸은 심하고 불상의 머리는 민머리 처럼 보이고, 상투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의상은 간결하며 광배도 마모가 심한 통일 신라 후기 석불입상으로 여겨 지며, 이전 증총리 용화사 방문시 또 다른 보물인 석조여래 좌상과 같은 공간의 바닥에  모셔진 것을 본 일 이 있다. 

 

보물인 정기룡 유물(鄭起龍 遺物)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매헌 정기룡(1562∼1622) 장군이 남긴 유물 들이다.  정기룡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이름은 무수이며, 1586년 무과 급제 후  왕의 뜻으로 이름을 기룡으로 고쳤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의 벼슬로 거창싸움에서 왜적 500여명을 격파하고, 곤양의 성을 지키는 장이 되어서는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시는 토왜대장이 되어 고령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적장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죽은 후에는 상주의 충렬사에 모셔졌고, 시호는 ‘충의’이다. 보물로 지정된 것은 옥대 1개, 신패 1폭, 유서 1매, 교서 2축, 교지 1매 등이다. 이외에도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매헌실기』의 판목 58점과 그의 가족에게 내린 교지 9점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 661호 상주 석조천인상]

보고 싶고 궁금했던 보물인 석조천인상은 1980년 보물로 지정된  화강암 판석 2매에 각각 부조되어 있는 공양상과 주악상으로, 원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에 있던 것인데, 1982년 남산공원으로 옮긴 후, 2007년에 상주박물관에 옮겨왔다고 한다. 화강암의 넓은 돌에 높이 1.27m의 주악상과 1.23m의 공양상을 새긴 것으로 주악상은 왼쪽을 향해 비파를 타는 형상으로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유연한 자세이며, 어깨에 걸친 옷을 바람에 흩날리듯 너울 거림이 율동 적인 느낌을 준다. 공양상은  오른손에 연꽃 봉우리를 받쳐 들고 오른 쪽을 향한 모습이며 구석상이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으나 옷차림은 당시 복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연대는 8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축대나 탑에 이용되기는 다소 큰 몸집으로 용도가 궁금하다. 

  

[신해명 동종(복제품), 금동 보살 입상(복제품)]

동종은 성주 서곡동 폐사지에서 출토된 종으로 새겨진 명문을 통해 신해년(고종 38년) 1251년에  상주목에 있는 회포사 의 종을 위해 금속 45근을 들여 전전항대사인 현적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금동보살 입상은 공성면 효곡동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시대 작품으로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서원에 관한 해설과 당시 사용된 천자문등 각종 서적으로 상주지방의 상주 도남서원은 정몽주 등을 배향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서원으로 경북 상주시 도남동에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1606년) 정경세를 중심으로 지방유림들이 당시 상주목사였던 류성룡의 품의를 받아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도남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된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지만 지방유림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교육 중심의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옛 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되었다.

 

[보물 제 1003호 검난 조정의 임난일기]

임난일기는 조선 선조∼인조 때의 학자이며 관료인 조정(1555∼1636)이 임진왜란 당시에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손수 적은 일기이다. 조정은 김성일과 정구의 문인이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였고, 선조 29년(1596)에 도체찰사였던 이원익의 막하로 들어가 활약하였다. 선조 36년(1599)에는 사마시에, 2년 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 사헌부감찰, 대구판관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가 죽은 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이책은 선조 25년(1592)부터 선조 30년(1597)까지 약 6년간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임난일기는 6종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부목록은 『임진일기』 2책, 『남행록』 1책, 『진사록 』1책, 『일기 부 잡록』 1책, 『서행일기』 1책, 『문견록』 1책이다. 기술형식은 월일별로 행을 구분하여 기술하였으나 간혹 기사가 없는 날에는 날씨만 기록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러 사람이 손수 적은 수십 건이 있으나, 조정의 『임진일기』는 임진년 10일 정도의 기록이 빠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약 6년간의 기록이 다른 어떤 것보다 충실하고 상세하다. 이는 당시 사회상과 군대의 배치상황, 의병의 활동상 등을 살필 수 있는 임진왜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 1003호 남행록]

1592년 8월 25일 부터 9월 23일 까지 28일 간의 일기로써 검간  조정이 당시 거창에 주재한 순찰사 김성일에게 토적등에 관한 것을 논의 하기 위해 왕래하면서 기록한 일기이다.

이외 조정 종가 문적이 1989년, 1991년 보물로 지정되어 종가집에서 보전되고 있는듯 하다.

 

[수암선생 연보와 수암선생문집]

 본관은 풍산, 자는 계화 호는 수암으로 서애 류성룡의 5남3녀중 셋째아들로 1617년 광해군 9년 상주 가사리에 터를 잡고 수암종가의 입향조가 된다. 상주 중동에서 향악을 시행하고 김추임 및 상주고을 선비들과 의논하여 죽곡리에 향학당을 세웠다. 1672년 정묘효란때 상주 의병장이 되어 병영을 단속한다. 안동의 병산서원에 배향된다. 저서는 수암선생 문집, 위빈명 농기 임진록, 임자록 등의 저서가 있다. 

 많은 것과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내부 전시장을 나와 야외에 설치 된 전시장에는 여러 건축 부재와 상주에 산재했던 탑, 신장상을 모아 놓았다. 

 

[석각신장상, 손중돈, 권기 목사 선정비]

석각신장상 은 상주시 연원동 의 농경지에 위치했던 것으로, 부정형의 바위 한 면에 부조된 상으로 왼쪽팔은 가슴 부위에 두고 오른쪽 팔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듯 하나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지는 않다. 

하나의 비신에 목민관 2명의 치적을 기록한 선정지로 무양동에 있던 것을 이전하여 온다.  비신과 이수, 귀부를 갖추었으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비신의 우측에 손중돈, 좌측에는 권기 목사의 비문을 새겨 놓았다. 건립연도는 1945년이다. 손조우돈은 1506~1509, 권기는 1537년  상주 목사로 부임했다. 

 

박물관을 떠날때도 비가 내린다. 상주에 왔으니 사벌국에 대한 유적을 더 찾아보려 한다. 인근에 사벌국의 무덤과 보물 탑이 있다. 차를 달려 이 들을 접하려 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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