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열번째 - 영동

세종해피뉴스 2023. 5. 15. 23:02

- 세천재 신항리 석조여래 삼존입상

맑은 하늘 아래 볕을 받으며 길을 나서 최근에 보물로 승격한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 충북 영동으로 향한다. 2022년 11월 보물로 지정된 세천재는 재실 겸 학당 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라 한다. 영동의 매곡면에 이름도 낯설고, 용처도 모르는 이 건물이 어찌하여 보물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여 오늘의 여행지로 정해 본다.

   

[세천재]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유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사겸 학당으로, 한적한 이곳 세천재에 도착하니 문은 잠겨 있다. 이곳은 문화 재청 사묘 재실 문화재 등 10건을 보물로 지정시, 이 곳 세천재와 남한산성 숭렬전, 영월 창절사, 김제 내아 등 10건의 문화재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 곳이다. 세천재에 대한 정보를 안내판을 통해 알아본다.   

 

[보물 영동 세천재]

영동 세천재는 충주박씨 황간파 박세필이 1691년에 처음 지은 재실로, 그의 부친인 박지찬과 아들인 박수조까지 3대를 제향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을 위한 공간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했던 만취(晩翠) 성하식(1881∼1958)이, 이곳에서 훈장을 지내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기도 하였던 곳이고,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은 일제 강점기때 이곳에서 시국 강연회를 연곳 이다.

영동 세천재는 충청지역의 재실 건축의 전형성과 지역성을 보존하고 있으며, 영동지역의 유교문화 연구와 조선 중기의 향촌사회의 변동, 건축형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사료이다. 중간에 대청 마루가 있고 양옆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지붕아래는 추위를 막는 나무판인 고미반자 ( 고미받이에 고미 서까래를 걸고 반자틀을 짜 만들거나 다락장선 위에 외를 엮고 흙칠을 한 반자)를 가지고 있다.

 

[옆면]

 이곳은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에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마당에 자리한 배롱나무가 잎을 뿜어내고 있다 여름에 배롱 나무가 붉게 꽃피우는 때가  되면 이곳에 다시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뒷면]

양옆의 온동방은 건물 뒷편에서 불을 지피게 되어 있고 굴뚝은 낮게 만들어져 있다.

 

[부속건물]

세천재를 관리하는 관리동으로 생각되는 곳이 함께 존재한다. 이곳에서 재실로 들어가는 쪽문이 따로 있다.

아픈기억을 전해주는 노근리 다리 아래로 통과한다.

 

[노근리 다리]

이곳을 지날때 마다 다리에 생겨난 탄흔에 섬틋함과 안타가움을 느끼는 노근리 다리를 지난다. 다시는 전쟁이 이 땅에서고, 어디고 없었으면 하는 맘으로 이곳 현장을 보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1934년 건립 된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사건’ 현장이다. 한국전쟁 발발 한 달 뒤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남아있는  총탄 흔적에 ○, △ 표시로 그날의 현장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발길 닿은 곳은 옛 석은사지의 삼존불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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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 사지 ]

옆으로 길게 난 도로에서 신항리로 내려서면 초입에  신항리  석조여래 삼존입상이 보인다. 원래 석은사지 터에 있는 것을 이곳으로 옯겨 온 것이라 한다. 신항리 마을 입구 언덕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석은사지가 어디인지 궁금하지만 이곳에 마련된 누각을 찾아 오른다

 

[보물 984호  영동 신항리 석조여래삼존입상]

직사각형의 네모난 평평한 돌에 새겨진 이 불상은 통일 신라시대 불상으로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이 배치된 삼존불 형식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은 둥근 얼굴에 오똑한 코에 입술윤곽이 또렸하다. 삼도는 없으며, 윗부분이 둥근 2겹의 광배 안쪽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바깥쪽에는  구슬  꿴 무늬가 있다. 

 민머리 위에 육계가 있고, 의상은 양 어깨를 감싼 옷이 가슴에 U자형을, 사이에 띠매듭을 하고 있으며. 옷주름선은  3가닥 음각선으로 나타내고 있다. 양쪽의 보살상은 삼산보관과 보주를 감싸거나 합장한 수인, 날씬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7세기 석불상을 계승한 것으로 어깨가 반듯하고 체구가 중후한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의 작품으로 여긴다. 뒷면은 판판하고 다른 손댄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밑이 두텁고 위가 얇게 만들어져 무게 중심을 맞추려 함인지, 부처님이 내려보는 형상을 위해서 인지 앞으로 약간 숙인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옥류봉을 지나쳐 간다. 많은 상춘객 속에 묻혀 경관을 즐겨본다.

 

  

징검다리를 통하여 강을 건너도 본다. 물결이 만들어 내는 윤슬을 보며, 징검다리를 지나며 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여행의 즐거움을 맛본다.  새로이 지정된 보물을 하나 더 본 것에 대한 뿌듯 함을 느끼며 이렇듯 좋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고마워하게 된다. 관리를 위해서라도 보다 많은 주변의 문화재가 유형 문화재나 보물로 지정 보전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우리 주변의 어지간한 문화재는 다 알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접게된다. 소위 말하는 매장 문화재와 집안에 고이 간직한 것 등 이제 많은 문화재들이 발굴 되어 지속적으로  우리 들에게 알려 진다고 생각된다. 보물이나 유형 문화재 등이 아니더라도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르는 남겨진 유산들을 모든 이가 보고 느낄 수 있게 잘 보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눈에 담은 문화재를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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