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예순일곱번째 - 괴산

세종해피뉴스 2022. 2. 24. 00:01

오늘 가는 곳은 괴산이다. 길을 나설 때 하늘은 회색빛으로 탁하다. 눈발도 예상되는 날이다. 괴산의 보물로는 주요 사찰인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상과 각연사 앞 산위를 올라야 볼 수 있는 보물 제1295호인 통일대사탑비와 보물 제1370호인 통일대사부도가 있으나 산행이 허락되는 계절에 방문 하여 함계 보려 계획하고, 오늘은 누정과 폭포가 함께한 수옥 폭포로 향한다. 수옥폭포와 누정인 수옥정이 함께 담긴 사진을 갖고 싶고, 부근인 보물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을 보려 한다. 폭포주변은 잘 정비되어 있고 산속 깊은 곳의 폭포와 달리 접근이 쉽다.

 

[수옥정과 수옥폭포]
폭포에서 얼음과 그 사이를 흘러 내리는 물줄기에 마음을 사로 잡혀 보고 있다가 폭포 옆길로 새로이 만들어진 데크길을 보게 된다. 폭포를 위에서 볼 수 있을까 생각하여 오르다 보니 이전에 보지 못한 폭포위의 풍광을 보게 된다.
 
[수옥폭포와 데크길]
[수옥폭포]
폭포가 시작되는 저수지로부터 폭포 상단에서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폭포와 바위를 깍고 흐르는 물의 흐름을 보게 된다. 뜻밖의 다른폭포를 보며 얻은 만족감으로 마냥 설랜다. 모습을 이곳 저곳 담아보려 하였으나 주변의 잡목으로 멋진 사진을 얻지 못하고, 저수지부터 폭포로 흐르는 물길을 동영상으로 남겨본다. 데크길이 만족스럽고  이런 길을 기획한 군에 감사드리지만,  가능하면 이 길이 산행길이라 헛갈리지 않게 폭포 위로 향하는 길이라 홍보 안내판이 필요하고, 폭포 윗 부분 중간에 폭포를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를 만들고 길을 돌아 내려 오는 데크길이 연장 되면 보다 그곳서 폭포위의 별도의 폭포와 물흐름을 을 잘 감상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폭포에서본 정자]
[폭포에서 보는 모습]
이곳의 폭포뒤에 난 굴에서 바라보는 누정의 모습이 궁금하여 폭포의 굴로 들어서 본다. 굳이 그 곳을 들어가야 되나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폭포위의 전경도 보았는데 하고  갈등하다가 폭포 뒤로 난 굴을 향하여 올라본다. 오르기 어렵지 않고 굴안은 충분한 너른 공간이 존재한다. 폭포물이 떨어지는 사이로 내다보이는 세상을 보는 것이 남다른 즐거움이지만 관광지를 훼손하는 행위는 아닌지하는 생각으로 바삐 자리를 피한다.

 

[수옥정과 수옥폭포]
누정과 폭포의 모습을 담고 자리를 벗어난다. 인근에 자리한 마애불을 찾아간다, 길옆의 바위산에 자리한, 아니 바위산 앞으로 길을 낸 곳 길 옆에,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있는 이불상이다. 이불상은 불상 두 개가 새겨진 것을 말하는데 보통 마애불은 하나 혹은 양쪽에 협시불을 동반한 삼불상이나, 이 마애불은 파주 용미리 이불 입상과 함께 두 불상이 병립한 특이한 마애 이불상이다. 보물 제 97호 이불상이 왜 이불상으로 모셔졌는지 그 내력을 잘 알 수는 없다. 두 불상을 나란히 조각한 예는 전(傳) 대전사지출토청동이불병좌상 등이 있는데, 이것은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多寶如來)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설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 97호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보물 제 97호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마애이불 병좌상은  높이가 12m나 되는 큰 암석을 우묵하게 파서 감실을 만들고,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마애불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예이다. 둥근 얼굴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한 입 등 얼굴 전반에 미소가 번지고 있어 완강하면서도 한결 자비로운 느낌을 준다. 반듯한 어깨, 평평한 가슴 등 신체의 표현은 몸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형식화되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배 부근까지 깊게 파인 U자형의 통견의(通肩衣)는 굵은 선각으로 평행하게 처리되었으며, 가슴에는 옷깃 모양(y형 또는 Y형)의 승각기(僧脚岐)가 표현되었다. 복부 아랫부분은 마멸이 심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두 손은 무릎 위에 포개놓았는데, 그 위로 옷자락이 덮여 흘러내렸다. 옷주름은 무딘 선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두 불상은 옷주름이 대칭으로 표현되는 등 동일한 형태를 보여주는데, 이불병좌상(二佛幷坐像)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에는 머리 주위에는 각 5구씩의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또한 불상의 군데군데에는 채색을 가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마애불이 조성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모습이 충청도의 불상과 마애불이 가진 둥그스름한 얼굴 모습이 특징이라 생각해보며 그래도 의상등을 화려한 채색을 한 모습이 부근에 이 마애불에 치성을 드릴 사찰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마애불을 조성시 색을 입혔다는 하나의 증거로 자주 활용되는 마애불로서 바위에 조성되어 오래간 색상을 유지 한것은 감실이 안으로 새겨져 있어 비바람과 햇빛을 막아주어서 이라는 설이 있다. 

 

괴산의 볼거리인 산막이옛길을 찾는다

산막이옛길에서 '산막이'는 산이 막아선 마을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던 피난민들이 산에 막혀 더 가지 못하고 머무른 데서 유래되었다. 

 

이 전에 산막이길을 걷기는 힘들 것 같아 칠정저수지로 생긴 괴산호의 산막이길 맞은길을 따라 연하엽구름다리 까지  여러번 다니면서 보았던 정자를 보고 싶다. 길에서 멀리있던 정자,  친구가 산막이 마을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속의 정자이다. 사적은 아닌 2011년 군에서 건립한 환벽정 정자를 보기 위해, 아니 그 정자가 서있는 연천대라는 절벽 과 정자의 조화를 보기위해, 길가에서 보는 원경이 아닌 마을에서 보기위해 산막이옛길 걸어 보려 한다. 왕복 두시간의 길이기에 많이 망설였으나 혼자 길을 나선다. 빨리 다녀와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빠른걸음으로 마을로 향한다.

   

 

 

호수를 감산 절벽을 따라 난 데크길이 여름에는 녹색과 어울려 활기찰 것이라 생각하며 길을 걷는다. 

저수지를 따라 길게 만들어진 데크길이기에 돌부리와 나무부리를 딛고 걷는 산길 보다 한결 걷기가 쉽다. 얼음이 드리워진 물경치를 보며 산으로 드리워진 경사길을 길게난 산책길을 오르내리며 가노라니, 가는 길마다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바위들과 나무 지형마다 이름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소개하니 지루한 지 모른다.

 

음용이 가능한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고 오가는 사람과 정을 나눌 수 있는곳
[전망대] 

 

마을에서 보이는 환벽정은 강건너의 원경에 날이 흐려 만족한 전경을 보지 못하여 섭섭한감이 든다. 

 

[환벽정]
마을에 도착하여 건너편 절벽위에 자리한 정자를 보며, 지금은 2월 말 일까지 얼음으로 인해 배가 다니지 않는데, 선착장에서 정보를 얻어 다음은 배로 이곳의 경치를 동행인과 함께 보리라 마음 먹어본다. 걷는 것 못지 않게 배 여행도 즐거움과 볼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쉽게 이곳을 볼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산막이 길을 뒤돌아 오니  추운 날이지만 외투 안에는 땀이 흐른다.

 

산막이 길을 나서며 다리를 건너면 외사리의 당간지주가 있다. 지금은 마을의 밭 한가운데 자리한니 이 부근이 절터 이었을 것이다. 여행 다녀보면 많은 지역마다 당간지주가 있다, 크기나 모양 그리고 받침대의 형태 등이 각각 다른 모습이나 그 쓰임새나 형태는 같을 것이다. 당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지지대가 당간이며 이러한 당간을 고정 하는 것이 당간 지주라 한다. 당간은 나무당간이여서 현재는 볼 수가 없다. 쇠당간과 돌당간도 있다. 실제로 당간이 남아 있는 곳은 몇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당간과 당간지주가 함께한 것으로 청주 여행 시  본 용두사지 철 당간 (국보 제41호) 이 당간지주의 결합체이다. 이 외 공주 갑사 (보물 제256호), 안성 칠장사의 철당간(경기 유형문화재 39호)이 철당간이 남아있는 곳이고, 나주 동점문 밖의 돌당간 (보물 제 49호), 담양 객사리 석당간 (보물 505호)이 돌당간이고 비지정이 몇 개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당간은 큰 나무 기둥을 사용하여 오랫동안 보전되어 오지 않아서인지, 나무로 된 당간과 거기에 다는 깃발인 당이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지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사찰에는 당간지주가 보통은 하나가 존재한다, 대웅전앞에 두 개로 존재하는 지주는 행사 때 괘불을 거는 괘불대이다. 

사실 절터가 있던 사지나 사찰 앞에 당간지주 많이 덩그러니 존재하는 일이 많고 그중 많은 당간지주가 왜 보물로 지정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당간을 높이 세워 깃발을 달아 부처님이 주재하는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며, 당은 그 모양으로 사찰의 위상을 높이고 종파적 특성을 나타내고, 큰 행사가 있을 시 행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형상을 본일이 없다.  대구 박물관에 당간지주와 당간 그리고 당간용 두를 재현 한 것이 있다 한다. 

 

출발 시 흐린 날씨가 맘에 걸리더니 귀가 시 다소 눈발이 비친다.  당간지주를 보며 사지 마다 외로이 서있던 당간지주들을 생각해 본다.

현재 존재하는 사찰마다 당간지주나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에 나무로 된 당간을 걸고 그 위에 당간 용 머리꼭지를 재현하고 사찰이나 그 지방의 독특한 문양의 당을 만들어 달아, 국기 봉에 국기가 걸리듯 상징적인 당을 걸어 당간지주 만이 외로이 서 있는 것을 좀 더 활용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문화재의 보존과, 국민의 알 거리에 대한 문화재 알림 사이에서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생각을 문화재청이나 사찰 종단에 건의 해볼까 생각해 보며 귀가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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