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토쿄의 국립박물관을 찾는다. 일본 도착 첫날 바로 이곳 도쿄 박물관에서 본관의 일본 문화재를 관람한 후, 이틀째 박물관을 찾아, 이 곳의 한국의 문화재를 보기 위해 박물관의 동양관인 효케이관으로 향한다.

[도쿄 박물관 동양관]
별관인 이 건물의 5층에 우리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이 곳의 우리나라 전시물들은 오구라 컬렉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구라가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대구 등지에서 전기회사(남선전기)를 운영하며 부를 축적하고, 고적 조사라는 공적 발굴을 틈타거나, 전문 도굴꾼들을 매수하는등하여 가야 고분, 낙랑 유적, 조선 왕실 유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한 것이다. 이 약탈 문화제들이 1958년 세워진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를 거쳐, 그의 아들이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최종 기증하였다고 한다.

[ 문인상과 양]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강원도의 여느 집안 무덤을 지키던 문인상과 양상이 지금은 주인을 떠나 이 곳의 잔듸밭에 전시되고 있다. 건물을 들어서 바로 5층 전시장으로 올라간다.

[5층 전시장 전경]
5층의 한국의 문화재 전시품을 둘러본다. 왠지 낯익은 것들을 대하니 이곳이 일본이라는 것도 잊게 된다.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5층의 조선반도실(한국실)에 전시된 핵심 유물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우르며, 이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반출한 ‘오구라 컬렉션’에 속한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는 소반 중 일부와 왕실 가구들은 명성황후가 참변을 당한 경복궁 내 건청궁(옥호루)에서 일본 외교관과 헌병들이 직접 실어 날라 오구라에게 넘긴 것들이라 한다. 그럼 약탈 문화재 아닌가?

이 곳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 구분 되어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청동기 시대가 먼저 그리고 철기 시대로 넘어간 대륙과 달리, 한반도로부터 벼농사 기술과 함께 금속기(청동기와 철기)가 한꺼번에 유입되어, 청동기는 구하기 힘들어 주로 제사 도구나 장식품 등 의례용으로 사용되고, 철기는 무기나 농기구, 공구류의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경]
낙랑 시대의 거울부터 삼국시대, 특히 고려시대에 제작된 화려한 청동거울까지 수십 점에 이르는 다양한 한국의 동경을 수집하여 기증 하였다고 한다. 고려 청동 거울에는 거울 뒷면에 세밀한 파도, 용, 신선, 서수(상서로운 동물), 글귀(명문) 등이 정교하게 조각된 유물들이 다수 있고,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한반도 고대 유적(평양 낙랑 고분 및 영남 지역 고분 등)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있다고 한다.

[ 여러시대의 불상들]

[금동 반가사유상]
전시된 불상 중에 끼어 있는 이 반가사유상은 충남 공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16.3cm 크기의 소형 금동 반가사유상으로, 머리에 삼산관(세 개의 산 모양 관)을 쓰고 있으며, 뺨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한국의 반가사유상의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에 의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묘덴사 반가사유상]
한쪽 벽면에 자리한 사진 촬영이 금지 된 반가사유상은 일본 교토 묘덴지(妙傳寺·묘덴사)의 반가사유상으로, 2017년 정밀 감정을 통해 6~7세기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밝혀진 청동 불상이라 한다. 높이 약 50㎝의 이 청동 불상은 일본 에도시대(17~19세기)에 만들어진 모방품으로 추정되어 오다가, 오사카대학과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공동 조사 결과, 불상의 상반신 장식에 새겨진 용 문양과 이목구비의 표현 방식이 삼국시대 양식을 띠고 있음이 확인되고, 과학적 성분 분석 결과 바탕 금속의 주석과 납 함유량 배합 비율이 당시 한반도에서 제작되던 금동 불상과 일치한 것으로 조사되어, 한반도 유래된 것으로 밝혀진다. 어떤 연유로 묘덴사로 에 전해지는 지 알수 없는 사유상을 한국관에서 모습을 보니 뿌듯 하며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림도 몇점 전시되고 있다.

[ 시정의 탁발승]
우리의 풍속화가 전시되어 있다. 시정(저잣거리·시장)이라는 세속적인 공간 속에서 묵묵히 탁발(시주를 구함)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오원 장승업에 그림을 배운 조선 후기의 심전 안중식의 작품이라 한다. 심전은 3.1 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에 체포되어 함께 참여한 동료 제자들을 밝히라고 고문을 받아 1919년 11월 2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병사하였다고 한다.


[연적들]
각종 다양한 연적들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귀히게 여겨질 것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슴에 여러 생각이 든다.




[도자기]


[정강이 가리개, 철갑, 철모]
정강이 가리개(경갑)와 철갑·철모(판갑과 투구) 세트는 고대 한반도 삼국시대(특히 가야와 신라)의 압도적인 철기 주조 기술과 전사들의 무장 상태를 증명하는 최상급 고고학 유물들이라 한다.
정강이가리개는 정강이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앞부분을 감싸 보호하는 방어구로, 단순한 철판이 아니라 금동(청동에 금도금)으로 제작되어 있다. 구멍을 촘촘히 뚫고 그 위에 둥근 보석 모양의 장식(보요)을 매달아, 한반도 고대 고분 중에서도 최고 권력자(지휘관)의 무덤에서만 제한적으로 출토되는 극히 희귀한 유물로 전사가 움직일 때마다 빛이 나도록 고안된 매우 화려한 의례용 장비라고 한다.

[조익형관식]

[창녕 금동 투조 관모와 (전) 창녕금관]
창녕투조관모는 높이 41.8㎝로 일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마름모꼴무늬가 투조된 금동판을 결합해서 만든 것으로,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모양을 이루며, 측면에도 날개 모양으로 튀어나온 투조판이 붙어 있고, 관모의 윗부분에도 좁고 긴 새날개 형태의 장식을 비스듬히 세웠다. 투조판과 입식의 전면에는 둥근 날개장식들을 금실로 매달았으며, 형태로 보아 금동관의 내관이 아닌 관모 자체로서 단독 사용되었던 것으로 본다. 창녕(고대 비사벌 지역) 출토로 전해지며, 6세기 전반(삼국시대 신라·가야 권역)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전) 창녕 금관은 신라 금관의 상징인 나뭇가지(出)나 사슴뿔 모양 대신, 중앙에 연꽃 봉오리(또는 인동초) 모양의 장식을 세우고 양쪽에 길쭉한 풀잎(초두문) 모양의 세움 장식 2개를 달고 있다. 경주 교동 금관이나 고령 출토 가야 금관(국보)과 디자인 계통이 매우 유사하여, 5세기 전후 비화가야(창녕) 혹은 대가야 최고위급 지배자의 왕관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오구라가 그 출토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 일단 학계에서는 오구라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도굴된 유물을 주로 수집했기에 이 금관 또한 창녕 주변에서 도굴한 것으로 추정하여 ‘전(傳) 창녕 금관’으로 부르고 있다. 혹 창녕 지역이 아니더라도 일단 영남 지역 일대에서 도굴된 것임은 확실하다고 한다.


시종 밝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동양관의 한국관을 둘러보고 아래로 향하여 지하 까지 전시 된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둘러보며 안목을 넓혀 본다. 중국, 인도 간다라, 서역 오아시스, 서아시아 , 이집트등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통해 작게 나마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보며, 한국관도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잘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아본다.

[ 왕인 박사 기념비]
박물관 옆의 우에노 공원을 둘러 나오며 뜻밖에 왕인박사의 비를 만난다. 이곳에는 총 두 개의 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왕인박사의 공적을 기리는 박사왕인비(기념비)로 "왕인 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황실의 스승이 되어 충신효제의 도를 가르쳤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하며, 하나는 건립 경위비(부속비)로 이 비석이 세워지게 된 배경을 기록한 작은 비석이라 한다. 왕인 박사는 4세기 말~5세기 초 백제 시대의 대학자로 일본 오진 천황(응신 천황)의 초청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학문을 가르쳤으며, 이 지식 전파는 일본 고대 문화인 '아스카 문화(飛鳥文化)'를 꽃피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 연유로 일본인들에게는 '학문의 신' 또는 문화의 은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고대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서 1940~1941년 무렵 일본 황실 일족과 한일 양국 명사들의 협조 및 기부금으로 우에노 공원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관람시간을 보낸 날이지만, 기왕 돌려 받지 못하면 잘 보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위로 하며 숙소로 발을 돌려 걸어본다.
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이백 서른 다섯번째 - 동경 > 뉴스 | 세종해피뉴스
如一同行 이백 서른 다섯번째 - 동경
오늘은 일본 토쿄의 국립박물관을 찾는다. 일본 도착 첫날 바로 이곳 도쿄 박물관에서 본관의 일본 문화재를 관람한 후, 이틀째 박물관을 찾아, 이 곳의 한국의 문화재를 보기 위해 박물관의 동
www.xn--vg1b03zi5a71m9wruja.com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如一同行 이백 서른 네번째 - 충주 (0) | 2026.05.21 |
|---|---|
| 如一同行 이백 서른 세번째 - 부여 (1) | 2026.05.13 |
| 如一同行 이백 서른 두번째 - 논산 (1) | 2026.05.03 |
| 如一同行 이백서른 한번째 -예산 (0) | 2026.04.29 |
| 如一同行 이백 서른번째 - 세종 (0) | 202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