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서른 다섯번째 - 동경

세종해피뉴스 2026. 5. 28. 22:42

오늘은 일본 토쿄의 국립박물관을 찾는다. 일본 도착 첫날 바로 이곳 도쿄 박물관에서 본관의 일본 문화재를 관람한 후,  이틀째 박물관을 찾아, 이 곳의 한국의 문화재를 보기 위해 박물관의 동양관인 효케이관으로 향한다.

 

 [도쿄 박물관 동양관]

 

별관인 이 건물의 5층에 우리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이 곳의 우리나라 전시물들은 오구라 컬렉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구라가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대구 등지에서 전기회사(남선전기)를 운영하며 부를 축적하고, 고적 조사라는 공적 발굴을 틈타거나, 전문 도굴꾼들을 매수하는등하여 가야 고분, 낙랑 유적, 조선 왕실 유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한 것이다.  이 약탈 문화제들이 1958년 세워진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를 거쳐, 그의 아들이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최종 기증하였다고 한다.

  

 [ 문인상과 양]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강원도의 여느 집안 무덤을 지키던 문인상과 양상이 지금은 주인을 떠나 이 곳의 잔듸밭에 전시되고 있다. 건물을 들어서 바로 5층 전시장으로 올라간다.

 

 [5층 전시장 전경] 

 

5층의 한국의 문화재 전시품을 둘러본다. 왠지 낯익은 것들을 대하니 이곳이 일본이라는 것도 잊게 된다.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5층의 조선반도실(한국실)에 전시된 핵심 유물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우르며, 이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반출한 ‘오구라 컬렉션’에 속한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는  소반 중 일부와 왕실 가구들은 명성황후가 참변을 당한 경복궁 내 건청궁(옥호루)에서 일본 외교관과 헌병들이 직접 실어 날라 오구라에게 넘긴 것들이라 한다. 그럼 약탈 문화재 아닌가?  

   

 

이 곳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 구분 되어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청동기 시대가 먼저 그리고 철기 시대로 넘어간 대륙과 달리, 한반도로부터 벼농사 기술과 함께 금속기(청동기와 철기)가 한꺼번에 유입되어, 청동기는 구하기 힘들어 주로 제사 도구나 장식품 등 의례용으로 사용되고, 철기는 무기나 농기구, 공구류의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경]

 

낙랑 시대의 거울부터 삼국시대, 특히 고려시대에 제작된 화려한 청동거울까지 수십 점에 이르는 다양한 한국의 동경을 수집하여 기증 하였다고 한다. 고려 청동 거울에는 거울 뒷면에 세밀한 파도, 용, 신선, 서수(상서로운 동물), 글귀(명문) 등이 정교하게 조각된 유물들이 다수 있고,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한반도 고대 유적(평양 낙랑 고분 및 영남 지역 고분 등)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있다고 한다.

  

[ 여러시대의 불상들]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오구라 컬렉션 중 불교 조각(불상) 유물은 총 49건(약 1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불상들은 삼국시대(백제·신라)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는 한국 고대 금속공예와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며, 다수의 유물이 일본의 중요문화재 및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대표 유물은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부여 금강사지 출토 금동약사여래입상, 그리고 금동비로자나불입상 (통일신라, 8세기)이며, 약탈 유물의  출토지를 알 수 없는 것과 달리, 오구라 기증 불상 중에는 공주, 부여, 강원도 등 출토 지역과 사찰이 명확히 기록된 유물들이 많아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이 불상들은  지속해서 반환을 요구해 온 핵심 유물들이나, 국가 간의 약탈이 아닌 개인(오구라 재단)의 기증품이라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반환을 거부하여 여전히 도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금동 반가사유상]

 

전시된 불상 중에 끼어 있는 이 반가사유상은 충남 공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16.3cm 크기의 소형 금동 반가사유상으로, 머리에 삼산관(세 개의 산 모양 관)을 쓰고 있으며, 뺨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한국의 반가사유상의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에 의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묘덴사 반가사유상]

 

한쪽 벽면에 자리한 사진 촬영이 금지 된 반가사유상은 일본 교토 묘덴지(妙傳寺·묘덴사)의 반가사유상으로,  2017년 정밀 감정을 통해 6~7세기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밝혀진 청동 불상이라 한다. 높이 약 50㎝의  이 청동 불상은 일본 에도시대(17~19세기)에 만들어진 모방품으로 추정되어 오다가, 오사카대학과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공동 조사 결과, 불상의 상반신 장식에 새겨진 용 문양과 이목구비의 표현 방식이 삼국시대 양식을 띠고 있음이 확인되고, 과학적 성분 분석 결과 바탕 금속의 주석과 납 함유량 배합 비율이 당시 한반도에서 제작되던 금동 불상과 일치한 것으로 조사되어, 한반도 유래된 것으로 밝혀진다. 어떤 연유로 묘덴사로 에 전해지는 지 알수 없는 사유상을 한국관에서 모습을 보니 뿌듯 하며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림도 몇점 전시되고 있다.

 

[ 시정의 탁발승]

 

우리의 풍속화가 전시되어 있다. 시정(저잣거리·시장)이라는 세속적인 공간 속에서 묵묵히 탁발(시주를 구함)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오원 장승업에 그림을 배운 조선 후기의 심전 안중식의 작품이라 한다. 심전은 3.1 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에 체포되어 함께 참여한 동료 제자들을 밝히라고 고문을 받아 1919년 11월 2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병사하였다고 한다.

 

[미인도]
 
미인도는 신윤복 이후인 1825년경(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한국 회화로, 풍성한 칠흑 같은 가체머리에 품이 꽉 조이는 노랑 삼회장저고리를 입은 기녀의 전신상이라한다.
여러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다. 

[연적들]

 

각종 다양한 연적들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귀히게 여겨질 것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슴에 여러 생각이 든다.

 

 

 

 

[도자기]

 
기증된  도자기 유물들은 고대 토기부터 고려청자, 조선 분청사기 및 백자에 이르기 까지  한반도 전역의 주요 가마터와 고분에서 도굴 및 수집 된 것으로 본다. 이 곳에는 삼국 및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와 도기로 , 녹유 물결무늬 긴 목 병(백제시대), 도장무늬 뼈항아리 (통일신라시대인화문 골호4)가 있고, 고려청자인 청자 맞새김 넝쿨무늬 상자, 청자 연꽃 넝쿨무늬 병이 있으며,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 및 백자로는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병 ( 충남 공주 학봉리 계룡산 가마터 출토) 철화 분청사기, 조선 후기의 백자 연적과 용이 그려진 청화백자 항아리(용준) 등 생활과 의례에 쓰이던 명품 도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견갑형 동기]
 
출토지는 확실치 않으나 경주지방 출토품으로 전한다. 왼쪽 에는 타래무늬와 호랑이 한마리가, 오른쪽 에는 타래무늬와 긴 뿔이 달린 사슴 두 마리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아래쪽 사슴의 등에는 기다란 창이 꽂힌 채로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네 귀퉁이 쪽에 한 개씩 반원형 손잡이가 붙어 있어 착장이 가능토록 되어 있다. 크기는 길이 23.8㎝, 최대너비 17.8㎝이다.  이 청동기는 서기전 3세기를 전후, 출토지로 전해지는 경주지역보다는 오히려 충청도 쪽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정강이 가리개, 철갑, 철모]

 

정강이 가리개(경갑)와 철갑·철모(판갑과 투구) 세트는 고대 한반도 삼국시대(특히 가야와 신라)의 압도적인 철기 주조 기술과 전사들의 무장 상태를 증명하는 최상급 고고학 유물들이라 한다. 

정강이가리개는 정강이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앞부분을 감싸 보호하는 방어구로, 단순한 철판이 아니라 금동(청동에 금도금)으로 제작되어 있다. 구멍을 촘촘히 뚫고 그 위에 둥근 보석 모양의 장식(보요)을 매달아, 한반도 고대 고분 중에서도 최고 권력자(지휘관)의 무덤에서만 제한적으로 출토되는 극히 희귀한 유물로 전사가 움직일 때마다 빛이 나도록 고안된 매우 화려한 의례용 장비라고 한다. 

  
 철갑 (판갑)은 철판을 두드려 사람의 상체 곡선에 맞춘 뒤 리벳(못)으로 고정하거나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통짜형 몸통 갑옷입니다. 흔히 '종장판갑(縱長板甲)' 또는 삼각판갑 등으로 불립니다. 가야와 신라 지역(주로 낙동강 유역 및 경북·부산 고분군)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형태로  형태와 제작 방식은 고대 일본(고분 시대)으로 그대로 건너가 일본 초기 갑옷인 '단갑(短甲)'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철제 차양 투구(차양부주)는 모자의 챙처럼 눈앞을 가려주는 '채양(차양)'이 달린 이 투구로 고대 가야·신라 전사의 실전용 철제 투구라고 한다.  전장이나 훈련 중에 햇빛을 가려 시야를 확보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적의 칼날로부터 눈과 얼굴 윗부분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고도의 기능적 구조를 가지며, 오구라가 경상도 지역을 집중 수습할 당시, 부산 연산동 고분군 또는 창녕 지역 고분에서 도굴하여 반출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조익형관식]

 
금관식이 보인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새를 하늘(신의 세계)과 땅(인간 세상)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 샤머니즘적 권위로 지배층이나 제사장이 새의 날개나 깃털을 형상화한 장식을 머리에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영성적 권위와 정치적 신분을 증명하는데, 경남 창녕 고분군(옛 가야의 소국 비사벌 지역)에서 도굴된 6세기 전반의 유물로, 얇은 금동판을 오려 깃털 문양을 파내는 투조(맞새김) 기법으로 만들어지고, 가장자리에 수많은 원형 달개(보요)를 촘촘히 달고 있다. 이 유물은 고깔 모양의 금동 관모(모자) 좌우와 정수리 부분에 새 날개 모양의 식판을 고정하여 결합하는 독특하고 완벽한 세트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창녕 금동 투조 관모와 (전) 창녕금관]

 

창녕투조관모는 높이 41.8㎝로 일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마름모꼴무늬가 투조된 금동판을 결합해서 만든 것으로,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모양을 이루며,  측면에도 날개 모양으로 튀어나온 투조판이 붙어 있고, 관모의 윗부분에도 좁고 긴 새날개 형태의 장식을 비스듬히 세웠다. 투조판과 입식의 전면에는 둥근 날개장식들을 금실로 매달았으며, 형태로 보아 금동관의 내관이 아닌  관모 자체로서 단독 사용되었던 것으로 본다. 창녕(고대 비사벌 지역) 출토로 전해지며, 6세기 전반(삼국시대 신라·가야 권역)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전) 창녕 금관은  신라 금관의 상징인 나뭇가지(出)나 사슴뿔 모양 대신, 중앙에 연꽃 봉오리(또는 인동초) 모양의 장식을 세우고 양쪽에 길쭉한 풀잎(초두문) 모양의 세움 장식 2개를 달고 있다. 경주 교동 금관이나 고령 출토 가야 금관(국보)과 디자인 계통이 매우 유사하여, 5세기 전후 비화가야(창녕) 혹은 대가야 최고위급 지배자의 왕관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오구라가 그 출토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 일단 학계에서는 오구라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도굴된 유물을 주로 수집했기에 이 금관 또한 창녕 주변에서 도굴한 것으로 추정하여 ‘전(傳) 창녕 금관’으로 부르고 있다. 혹 창녕 지역이 아니더라도 일단 영남 지역 일대에서 도굴된 것임은 확실하다고 한다.

 

[귀걸이등 장식]
창녕에서의 함께 한 큰 금귀걸이등 장식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 봉황장식 청동향로]

 

 
고대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 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희귀한 고대 향로로 향로의 뚜껑 혹은 몸체 부분에 고대 신앙과 권력자를 상징하는 정교한 봉황 모양의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이는 한반도 남부 지역의 고대 유력 호족이나 지배층이 의례 및 제사 용도로 사용했던 위신재(권위를 나타내는 물건)로 여겨진다고 한다

 

시종 밝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동양관의 한국관을 둘러보고 아래로 향하여 지하 까지 전시 된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둘러보며 안목을 넓혀 본다. 중국, 인도 간다라, 서역 오아시스, 서아시아 , 이집트등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통해 작게 나마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보며, 한국관도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잘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아본다. 

 

[ 왕인 박사 기념비]

 

박물관 옆의 우에노 공원을 둘러 나오며 뜻밖에 왕인박사의 비를 만난다. 이곳에는  총 두 개의 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왕인박사의 공적을 기리는 박사왕인비(기념비)로 "왕인 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황실의 스승이 되어 충신효제의 도를 가르쳤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하며, 하나는 건립 경위비(부속비)로  이 비석이 세워지게 된 배경을 기록한 작은 비석이라 한다. 왕인 박사는 4세기 말~5세기 초 백제 시대의 대학자로  일본 오진 천황(응신 천황)의 초청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학문을 가르쳤으며, 이 지식 전파는 일본 고대 문화인 '아스카 문화(飛鳥文化)'를 꽃피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 연유로 일본인들에게는 '학문의 신' 또는 문화의 은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고대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서 1940~1941년 무렵 일본 황실 일족과 한일 양국 명사들의 협조 및 기부금으로 우에노 공원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관람시간을 보낸 날이지만, 기왕 돌려 받지 못하면 잘 보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위로 하며 숙소로 발을 돌려 걸어본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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