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로 목적지를 잡는다. 충주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으나, 이번 여행은 이곳에 자리한 여러 철불을 찾아보려 하게 때문이다. 충주를 들어서며 먼저 단호사를 찾는다.

[단호사 대웅전]
단호사는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대웅전 내의 삼존불]
대웅전을 찾으며 머리 속이 복잡하여 진다. 모셔진 불상이 이전에 보아 온 철불이 아닌 금동불로 교체되어 있어 처음에는 도금을 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기억속의 불상이 아니라 매우 당황하며, 절 주위를 맴돌아 본다. 의혹이 풀린다. 이전에 이 곳에 있었던 철불은 최근 소유권 이전으로 인해 충주 석종사에 모셔져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이방문을 통해 변화를 알게 된 것이, 모름과 알게 됨을 동시에 경험한, 허탈하면서도 뿌듯하기도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 보물제 512호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석종사 방문을 위한 방문을 뒤로 미루고 이전의 철불상의 모습을 찾아 비교하여 본다. 고려 중기 제조 철불좌상으로 추정되며, 철 생산의 중심지였던 충주 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 한다.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3m로 비교적 소형이지만, 철로 가득 차 있어 무게가 약 700kg에 달할 만큼 육중하다고 한다.

[ 보물제 512호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이 철불은 육계가 큼직하며, 머리 가운데에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고, 긴 타원형의 얼굴에 두 귀는 길게 표현되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두꺼운 편이고, 옷주름은 간략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슴의 띠매듭은 고려말 조선초부터 나타나는 수평적인 처리이며, 전체적으로 상체는 4각형의 각진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얹어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으로, 원래 이 불상은 충주 단호사 노천에 방치되었던 것을,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한 후 이안하여 봉안하였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바로 인근 대원사에 소장되어 있는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같은 작가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보이며, 지리적으로 인접한 원주지역에서 출토된 철불과도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다시금 철불을 이곳에서 볼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대원사로 찾아간다.

언덕길에 자리한 대원사는 이전에는 동네 담 벼락에 차를 대었으나 지금은 주차장 시설을 만들어 방문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대원사 전경]
1919년 우암 승현 대선사 김추월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국락전, 무량수전과 요사채가 자리한다.

[철불이 자리한 극락전]
이곳 극락전에 모셔진 철불상은 높이 98㎝로 충주공업고등학교 근처에 있던 것을 1922년 충주군청으로 이전, 1937년에 다시 마하사로 이전되어 보관되어 오다가, 1959년 현재 소장처인 대원사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이 불상은 광배와 대좌, 두 손이 결실되고 불신만 남았는데, 1982년에 새로 세운 전각에 봉안되면서 두 손은 나무로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보물 제 98호 충주 대원사 철조여래좌상]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기에 걸쳐 유행하던 철로 만들어진 불상 가운데 하나로, 높이 0.98m로, 육계는 머리와 구별이 불분명하며 높직하며, 나발들은 성기면서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길게 쭉 찢어지게 표현한 두 눈이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이며, 강인하면서도 무서운 인상이다. 신체와 옷자락 무늬의 엄격한 좌우대칭적 표현이 불상의 특징을 더욱 극명하게 나타내며, 목의 삼도는 목을 접합시킨 것처럼 처리되어 있다고 한다. 어깨는 널찍하고 둥근 어깨선 좌우로 팔이 대칭적으로 놓여 있으며, 다리는 넓게 벌려 결가부좌한 모양이다.
조금 떨어진 백운암의 철조좌상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전의 방문에 산속에 자리한 법당은, 어수룩 해질 무렵에 당도 하여 보았던 사찰의 분위기에서 환하고 갈끔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변하여 반겨준다

[ 충주 백운암]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이 불상은 인근 대규모 사찰이었던 억정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의 충주철불좌상(보물)과 단호사의 철불좌상(보물)과 함께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백운암 철조 여래 좌상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철불 임이 확인 된 것을 이전에는 없던 안내판이 설명하여 주고 있다.


[ 보물제 1527호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도금과 철불을 비교하여 본다. 많은 부처님이 도금되는 것을 보아 온 것에 대하여 재질 본연의 모습대로 보존되 철불을 접하는 것도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배운암을 인근에는 경종의 태실과 보물인 대지 국사 탑비가 자리한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조선후기 제20대 경종 태실.]


[보물 제 16호 억정사지 대지국사 탑비]
조선전기에 건립된, 비신 높이 267㎝, 너비 130㎝, 두께 24㎝. 화강암 석재로서 개석은 없고 비신의 상부를 좌우로 귀접이 하고,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쓰고 또 전액도 하였으며, 국사의 문인인 중윤이 1393년(태조 2)에 세우고 혜공이 각자하였다고 한다. 비문에 국사의 이름은 찬영, 자는 고저, 호는 목암, 속성은 한씨, 양주 사람이고, 또 지감국사와 탑명인 혜월원명은 시호임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1328년(충숙왕 15)에 출생하여 14세에 수법하고 공민왕의 명으로 내원에 들어가 왕을 보살피고 우왕·창왕에게도 충성을 다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63세로 입적할 때까지의 경력과 국사의 천부적 자질과 인품·학력 등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또한 음기( 비 뒤에 새긴 글)에는 국사의 문도들과 속인 문도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다시금 둘러 본 충주의 철불들은 이전되어 옮겨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 보다 낳은 문화재 보호 환경 속에서 관리되는 것을 알게 된 하루이며, 정보를 얻지 못하면 또 다른 발품 팔이도 필요하고, 찾아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 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도 처음 접하지 못한 많은 보물들이 있는데, 이렇듯 이전하고 환경이 바뀐다면 짧은 인생 속에 어찌 다 볼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귀가 길을 택한다.
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이백 서른 네번째 - 충주 > 뉴스 | 세종해피뉴스
如一同行 이백 서른 네번째 - 충주
충주로 목적지를 잡는다. 충주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으나, 이번 여행은 이곳에 자리한 여러 철불을 찾아보려 하게 때문이다. 충주를 들어서며 먼저 단호사를 찾는다.[단호사 대웅전]단호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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