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서른번째 - 세종

세종해피뉴스 2026. 4. 22. 21:13

오늘은 세종을 돌아본다.  불비상을 보유한 연화사 사찰과 보물인 극락보전을 지닌 비암사를 다녀온 이 후,  멀지 않아서 언제나 가볼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등한시 하여 왔던 세종의 문화재를 찾아보려 한다.  세종의 부강에 홍판서 댁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있어 먼저 방문하여 본다. 이 고택은 당시의 고급 기법으로 지은 것으로, 1984년 ‘청원 유계화 가옥’으로 지정되고, 세종시 출범 후 2012년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불리다가 2018년 ‘세종 홍판서댁’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니 온전한 한옥으로 자리한 모습을 보니 정이 많이 간다. 안내판의 구조를 통하여 사전 지식을 얻으며 안으로 들어서 본다.

 

[홍판서댁 구조]

 

고전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진 집은 일대에서는 드문 ㅁ자형 평면으로, 홍판서댁은 한 단 높은 ‘ㄷ’ 자 모양의 안채와 한 단 낮게 지어진 ‘ㄷ’ 자 모양 사랑채가 맞물린 ‘ㅁ’ 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를 향하지 않고 문 쪽으로 향하고 있고, 가운데 몸채에서 좌우로 1칸씩 꺾어 날개를 만들었다. 몸채, 대청, 안방을 모두 남향으로 배치한 구성은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등 중부지방에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한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세종 홍판서댁]

 

세종 홍판서댁은 고종 3년(1866)에 지어진 고택으로, 병조판서와 예조판서 등을 지낸 홍순형이 살던 가옥이며, 홍순형은 대한제국 시절에 궁내부 특진관, 규장각 학사 등을 지내고, 순종 4년(1910)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일본이 주는 남작 작위를 거절한 인물이라고 한다.

 

 [사랑채]

 

문을 들어서면 앞면에 사랑채가 안채를 향하지 않고 문쪽으로 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는 몸채이고 안채쪽으로 꺾어진 좌우 1칸씩은 날개에 해당한다. 몸채는 대청과 아래·윗방으로 되어있고 앞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양 옆 날개부분은 곳간과 방·함실이라 한다.

 

 [옆면 ]

 

사랑방을 왼쪽으로 돌면 보이는 안채와 사랑채 날개 부분으로 왼쪽 날개부분은 상방과 부엌 그리고 사랑채 곳간과 연결이 되는 중문간이 있다.

 

 [뒷면]

 

장독대가 자리한 안채의 뒷 모습으로, 뒤뜰에는 장독대와 여러 과실수와 나무 등이 있는 공간이며, 다소 언덕진 뒤편의 담에는 작은 문을 두어 담밖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옆면]

 

건물 외곽을 돌며 건물 뒤 장독대에서 본 옆면의 모습이다. 

 

 [안마당]

 

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면, 안채 역시 몸채와 날개부분으로 되어 있고, 넓은 대청과 안방이 남향하여 위치한다. 안채의 오른쪽 날개부분은 길다란 부엌이 있으며 그 옆의 샛문간은 사랑채와 연결이 된다. 작은듯 보이며, 가운데 우물을 가진 정사각형의 막힌  폐쇄성을 가진 듯한 공간구성이다. 그리 오래진 않으나 잘 보전 독특한 구조의 판서댁을 나와 풍수지리상 황소가 누워 있는 형세의 황우산을 오르는 길목에 황희의 후손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지는 황룡사의  문화유산이 있어 찾아본다.  

 

 [ 황룡사 전경]

 

세종시 황룡사의 창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조선 중기 황희정승이 낙향하여 후손들이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원찰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불자들의 염원으로 조성된  400여 불상이 모셔진 곳이 있다.

 

 [ 관음보살입상] 

 

잘 조성된 삼존불 옆에 자리한 관음보살입상은 약 100년전쯤에 조성된 것으로,  황룡사를 중창할 1930년대 조성된 것이라 한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 된 보살입상이지만 보관을 쓰고 있는 특징과 전체적인 외관의  형상이 충청지방의  불상조각의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에 자리한 삼존불 옆에  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유리상자 안 가운데 모셔져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유산 연동 황룡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황룡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4cm, 무릎 넓이 35cm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불상으로, 손은 따로 제작하여 끼웠으며 수인은 무릎에 올려 놓은 다음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이다. 머리에는 원형 정상계주, 반달형 중간계주와 나발이 조각되고, 얼굴은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착의법은 변형 통견식 으로 편삼 위에 대의를 양 어깨 위로 걸치고 가슴에는 수평의 승각기가 있으며,  편삼은 배 중앙에 W자 형태로 접혀 있다.  얼굴 표정과 옷주름, 연화좌 위로 흘러 내린 꽃잎형 옷자락 등에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조각승 진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 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유물에서 건륭 무오년(1738년)이라는 연대가 확인되었고, 『진언집』 7점과 다라니경 1점,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진신사리보탑]

 

대웅전 앞에 조성된 사리탑은 1991년 이 곳 황룡사 주지 청하 법인 스님께서 스리랑카 콜롬보 "강가라마 "사원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기증받아 이곳에 모시며 조성 된 탑이라 한다.  이 사찰의 황소바위 등 곳곳을 둘러보고 세종의 천연기념물을 찾아 본다.

 

 [천연기념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나란히 자리한 은행나무 2그루의 나이는 약 600년 정도이며, 뒤에 자리한 고려말 충신 임난수장군을 제향하는 숭모각의 입구 우측 은행나무는 나무 높이20m, 뿌리목 무분 둘레 6.9m이며,  좌측의 은행나무는 나무 높이 19m, 뿌리목 부분 둘레 5.4m라 한다.  임난수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부안임씨세보(1674년 간행)의 부조사우도에 은행나무 한 쌍과 행정(杏亭)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충청도 공주목<公山誌(1859)>의 부조사우(不祧祠宇), 연기지<燕岐誌(1934)>에도 은행나무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말 최영장군과 탐라(제주도)를 정벌한 공을 세운 분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두임금을 모시지 않겠다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 금강변에서 여생을 보내며 이때 이 나루를 심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이렇듯 여러 문헌에서 은행나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고, 암수 한 쌍으로 이루어진 노거수로서 기존에 단목으로 지정 된 은행나무와는 차별성이 있으며,  유교 문화와 관련된 행단(杏壇)의 좌우 대칭으로 심는 전통 재식방법과 전월산 자락의 숭모각과 조화를 이룬 점과  현재까지도 부안임씨 후손들이 매년 은행나무 목신제를 지내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세종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접하는 기쁨을 갖고, 2025년 보물로 지정 된 비암사의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을 보물로 다시 보기 찾아 보려하며, 찾는 길에 세종에 자리하는 다른 문화유산은 무엇이 더 있는지 궁금해 하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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