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서른 두번째 - 논산

세종해피뉴스 2026. 5. 3. 19:41

논산에 발을 딛는다. 지난번 공사로 관람이 불가하던 노강서원이  복원 사업이 마무리 되어 이를 찾아 보기 위함이다. 서원을 가는길에 논산의 또 다른 문화유산인 종학당을 들려보기로 한고 길을 찾아 가는길에 기와집과 재실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여 길을 접어든다. 

 

 

 찾아 본 건물은 파평윤씨 병사묘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자리하는,  조선 중기 문신 충헌공 윤전(1592~1636)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0년대에 지어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윤전의 충절을 기리는 재실이다.  충헌공 윤전은 광해군 2년(1610)에 과거에 급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장생의 종사관으로 활약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에서 성이 함락되어 자결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여 적병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충남문화재 자료 윤전 재실] 

이 재실은 ㄱ자형 구조로 한쪽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에, 다른 한쪽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네모 모양이다.

 

 

윤전 재실에서 산으로 들어서면 이곳에 파평윤씨 재실과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이 이웃하고 있는 파평윤씨 병사묘역이 있다. 유독 재실이 많음은 뒷편에 묘소가 많음 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안내판에서 정보를 얻어본다. 

 

 
먼저 입구가 열려 있으며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재실로 향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 문신 덕포 윤진(1631~1689)의 제사를 위한 재실로, 17세기 후반 건축된 전통적인 'ㄱ'자형 배치를 가진 사저 겸 재실 형태에 윤진이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여 '덕포 선생 고택'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라 한다.
  

 

ㄱ자형 안채와 함께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혼용 된 형태이며, 이전에는 윤진이 거처하던 사저 건물로 파평 윤씨 재실과 동일 주소 이었는데, 덕포공 종중의 요청으로 분리되고 있다고 한다. ㄱ자형 구조로 지붕은 각각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과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며져 있다.  인접하여 있는 파평 윤씨 재실로 걸음을 옮겨본다.

 

[충남 문화재 자료 파평 윤씨 재실]

 

이곳의 문이 잠겨 있어 내부의 영사당 건물을 문틈으로 일부만 본다. 윤창세가 아버지 윤돈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하며, 병사란  묘지기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이곳의 병사는 1574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수호사, 덕포공의 재실과  한말에 세운  영사당, 성경재,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영사당 뒷편]

 

담장 너머로 둥근기둥을 사용한, 팔작지붕으로 된 영사당 건물을 뒷면을 통해 가름해 본다.

 

[충남 기념물 파펑 윤시 병사 묘역]

 
이곳 논산 파평윤씨 병사묘역에는 파평윤씨 문중의 묘역으로, 윤돈, 윤창세 등 파평윤씨 노종파 인물들 11기의 묘소와 묘표, 묘갈, 신도비 등이 있다고 한다. 묘역을 떠나 종학당을 찾아 가곡 저수지 건너편으로 가는 길에 한국 유교문화진흥원을 방문한다. 이곳은 유교문화 대중화와 세계화, 산업화를 전략 목표로 운영되는 곳 이라 하는데,  깨끗한 한옥 들로 구성된 이곳에는 명재 윤증 집안의  유품인, 상투관, 빗, 빗치개, 살쩍밀이, 신, 백목화, 합죽선, 월자, 첩지, 비녀, 인장, 혼천의, 해시계 등의 생활자료와 회화류, 겨울철 여성의 방한모인 아얌 등 복식류등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전시된 양부공신 이삼의 기획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 양무공신 이삼기획전]

 
이삼(李森, 1677~1735)은 조선 후기의 무신이며, 조선의 마지막 공신으로 알려진 인물로,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양무공신에 책봉되었다 한다. 영조의 신임을 받은, 무인으로서 충절의 인물로 재조명 받고 있으며, 충청도병마절도사, 포도대장, 병조판서 등 무관으로서 요직을 역임한 자라 한다. 그의 행적에 관한 전시를 둘러본다.

자리를 옮겨 근처의 종학당을 찾아본다.  정문에 홍살문이 자리한 호암산 산기슭의 넓은 터에  종학당 건물과 산기슭에 자리한 정수루와 백록당 그리고 기숙사 건물이 자리한 곳이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논산 종학당]

 

입구의 왼쪽에 자리한 종학당은 1643년(인조 21)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건립한 교육도장으로서, 1910년 경술국치 전까지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신교육의 도입으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오로지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이며,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가 1970년 윤정규가 지금의 종학당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1910년까지 운영된 종학당은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하며, 학동 들에게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논산 종학당]

 

종학당은 동향에 가까운 동남향으로 서 있으며 주변은 담을 둘러 구획하였다. 이곳 뒷마당의 굵은 배롱나무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아 썰렁하지만 꽃이 피는 날 이곳의 경관으로 한번더 발길 하여야 할 듯 하다.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을 겸한 트인 마루이고, 양쪽 칸은 방이 설치되어 있다.  양 측면의 온돌방 앞마루는 가운데 대청마루보다 1자 정도 높여 단의 차를 두고 있으며, 전면의 기단은 자연석 바른층쌓기를 3자 정도로 높이고, 가운데 계단을 두고 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3분합 들어열개를 달아 방과 대청을 터서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종학당을 나와 산기슭의 누각으로 향한다.

 

 

호암산을 배산으로 한 종학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2층 누각간물인 정수루를 향하여 오르니 숨어 있던 백록당이 보인다. 종중의 결의로 종학당, 백록당, 정수루,보인당 등 그 일원을 총칭하여 종학원으로 명명 하였다고 한다.

 

[정수루와 백록당]

 

두 건물은 남향에 가까운 동남향으로, 급한 구릉을 이용하여 정수루를 2층 누각으로 만들어 백록당과 정수루가 같은 높이가 되게 지어졌다. 1628년(인조 6)에는 7칸 전후퇴의 백록당(상급교육과정)과 7칸 2층 누각인 정수루를 건립하고,  '형원익청', '오가백록' 두현판을 현액하고 있다고 한다. 

 

 [정수루]

 

정수루는 파평 윤씨 문중의 고등반을 위한 교육장으로 학문 토론, 시문 짓기 등의 장소로, 정수루 2층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이고,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주춧돌이며, 모두 원주를 쓰고, 아래의 기둥은 거칠게 초벌 다듬기만 하고, 위의 기둥은  재벌 다듬한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층 바닥 주위에는 교살문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백록당]

 

정수루 뒤의 백록당은  상급 고등 교육기관으로, 백록은 '하얀 사슴'이라는 뜻으로 영재와 높은 벼슬을 의미 하여  이곳에서 교육 받고 높은 지위에 이르기를 바라는 교육기관을 의미 하는 듯 하다.  이곳에는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으로, 대소 과거시험 준비생 및 석학들의 학문연구와 기호학파 유림들의 학문교류 중심도장 이었다 한다. 이곳의 초대교장이 명재 윤증이며, 문무 모두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289년에 걸쳐 42명의 문과 급제자와 31명의 무과 급제자 그리고 많은 생진과 및 석학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산넘어에는 이들이 교육받던 활궁터와 말을 타는 곳이 있다.

 

 

파평 윤씨 자제들이 누리는 특혜를 느껴보려 정수루 마루에 앉아 앞을 내다보는 호사를 누린다. 앞에는 종학당과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보이며, 멀리 가곡 저수지 건너편에는 다녀온 병사 묘역이 넘어다 보인다. 주변의 산들이 낮아 평안함을 느끼며, 이곳에서 학문을 익히는 특혜 받은 사람의 기분을 짐작만해 본다. 

 

[보인당]

 

정수루와 인접한 건물로 윤순거와 그 후손들이 살던 살림집이라 한다. 정면 4칸, 측면 3칸이다. 지금은 많이 개조되어 원형이 변형되었다고 한다. 당시 파평 윤씨가 누렸을 권세와 가문의 명성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남은 유산물에서 느끼며, 또 다른 교육의 장인 노성서원으로 향한다. 

 

[노성서원]

 

서원에 도착하여 보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복원되어 있다. 서원앞에 민가가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서원 내부 보수만 이루어 지나 했는데, 그 자리에 너른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노강서원은 전학후묘로 외삼문, 강당, 사당을 서원의 중심축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대칭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어 서원건축의 규범을 잘 보여주며,  1871년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350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 온 서원이다. 서원의 성향은 기호계이며 파평윤씨의 대표적 문중서원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강서원이 기호지방에 영향력을 가진 것은 건립을 발의하였던 인물들이 김수항, 광성부원군 김만기, 좌상 조사석, 영상 여성제, 우상 신익상, 민유중 등으로 당대의 명상·명현들 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보물 제 1746호 논산 노강서원 강당]

 

논산 노강서원은 숙종 1년(1675년), 조선 중기의 문신인 팔송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꾸미고, 양 측면에서는 각각 온돌방을 두었다. 온돌방 전면에는 퇴칸으로 하여 마루를 깔아 대청과 연결되게 하였다고 한다. 양 측면 툇마루 밑은 아궁이 함실을 두고, 새의 날개처럼 생긴 공포 형식이 돋보이고 맞배지붕의 옆면에 덧붙인 내림지붕은 비바람을 막고 건물에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는 기능을 한다.

 

[ 노강서원 강당 뒷면]

 

[동재와 서재]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대칭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어 서원건축의 규범에 맞는 서원이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동재, 서재가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다. 동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3량집 구조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이 없는 박공으로 처리되고, 내부공간은 남측의 2칸을 대청마루로 하고, 북측 2칸은 온돌방이다. 서재는 동재와 같이 3량집 홑처마 맞배지붕에, 북측의 2칸은 온돌방으로 두고 남측 2칸 중 한 칸은 부엌, 한 칸은 창고를 두고 있다.

  

[숭의사]

 

강당 뒤편에는 높은 단을 조성하여 사당을 배치하고 있는데, 사당 주위에는 담을 두루고 있다. 숙종 8년 사액을 받았고, 윤황을 비롯한 윤문거, 윤선거, 윤증 등 충청도 지역 소론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 열은 퇴칸으로 하고 후면 2열은 내부공간으로, 퇴칸 좌우측은 심벽으로 막고 있다. 1고주 5량집 구조에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논산의 하루는 역사 속의 윤씨의 발자취를 찾아 더듬어 보는 기분으로 보낸 시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난 역사를 다 잘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여행을 통하여 인물들을 알고 다니다 보면, 그 시대에 맞는 환경과 인물들의 역활도 연결하여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귀가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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