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서른 한번째 -예산

세종해피뉴스 2026. 4. 29. 00:05

오늘은 예산을 찾아본다.  그곳의 천방사에 문화유산이 자리하여 찾는 길이다. 길을 가다보니 이전에 거쳐간 이남규 고택을 지나며 방산지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충남 문화유산 이광임 선생고택]

 

가는 길목의 방산지 저수지와 인접한 곳에, 목은 이색의 16대손 이며, 토정 이지함의 조카이자,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9대손인 조선 순조 때의 선비인 이광임(1784~1857)이 1820년에 지은 목조 기와집인 이광임 선생고택이 자리한다. 동향으로 경사진 지형에 4단으로 정지하여,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행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를 이루는 고택이라 한다.,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 모두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후 납도리집 으로, 지붕틀 가구는 전형적인 5량집으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는데 행랑채만은 초가로 되었다고 한다.

 

[사랑채]

 

건물앞으로 들어나고,  안채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정면 7칸, 측면 3칸, 옆면 3칸에 一자형 평면으로, 중앙부분에 있는 2칸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2칸의 사랑방이, 좌측에는 1칸의 건넌사랑방이 있고,  대청의 전면에는 4분합 띠살 들어열개이고 사랑방과는 각각 3분합 맹장지 들어열개로 되어 있어, 필요할 때 사랑채 전체를 넓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방 우측에는 1칸의 부엌을 두어 후면을  누다락으로 쓰고, 전면은 툇마루와 연결된 누마루를 설치하고 있다. 

 

[ 안채]

 

문으로 들어서 보이는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에 한 칸 폭으로 3칸 붙여 ㄱ자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에 삿갓천장을 한 4칸통간의 넓은 대청이 있고 대청 우측으로는 2칸통간의 안방과 1칸의 웃방이 외여닫이 띠살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안방 동측으로는 2칸의 부엌이 붙어 있으며, 그 위는 누다락이라 한다. 대청 좌측에는 1칸의 건넌방이 있는데 뒤에는 벽장이 있고, 앞에는 함실을 둔 툇마루가 깔려 있으며, 건넌방 옆에 2칸의 곡물 저장용 광이 있고, 그 옆에 앞에 누마루가 깔린 재실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모인 친척들이 머물 수 있는 방이 각각 1칸씩 붙어 있는데 이 재실과 누마루 사이에는 4분합 빗살문 들어열개를 달았다고 한다. 고가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있는 정려를 찾아본다.

 

 [ 이승유 정려]

 고택 앞의 이들 이승유의 효자정려 현판은 조선 후기의 효자 이승유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준 정문이라 한다.  이승유는 아버지 이광임이 학질을 얻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아버지 입에 넣어드려 목숨을 연명시켜드리고자 하고, 이러한 노력에도 돌아가시자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소를 찾아 절을 올렸는데, 절하던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전한다.

길을 찾아들어 아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본다. 이산해는 정치인이자, 시인, 성리학자로, 토정 이지함의 조카이기도 하며 호는 아계(鵝溪)이다. 이곳에서 저수지길을 지나니 마을이 나오고, 마을 찾아가는 입구에  옛 한갓골 선비마을이란 안내판이 서있다. 그곳에는  이광임고택, 이승유 정려, 천방사, 해국사, 방산지와 아계 이산해선생 묘와 신도비, 수당 이남규 고택, 상황리 석불 등 많은 찾아 볼거리가 자리하는 곳이라 한다.

 

 [아계 이산해 신도비]

 

조선 중기 문신 이산해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819년(순조 19년)에 세워진 325cm 높이의 석비로, 채제공이 비문을 짓고, 한호(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하여 제작 된 비석이라 한다. 

590년(선조 23년) 영의정에 올라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에 책록되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사로부터 국정을 그르치고 왜적을 들어오게 하였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아 파직, 백의로 평양에서 다시 탄핵을 받아 강원도에 귀양갔다가 돈령부영사로 복관되고 대제학을 겸임한다. 1600년(선조 33년) 영의정에 재임되어, 아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조정에서는 동인, 북인을 거쳐 마지막에는 대북(大北)의 영수가 되며, 저서로는 『아계유고』가 있고, 시호는 문충이라 한다.

  

 

[충남 기념물 이산해 묘소]

 부인과 합장된 형태이며,  단분에 봉분의 외형은 원분, 봉분 둘레 11m, 높이는 1.8m로. 용미와 사성이 있으며 분묘 앞에는 계체석, 묘표석, 묘 조성시 세운 문인석 1쌍과 망주석 1쌍이 있다.

  이산해는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李塏)의 종고손이라하며,  기축옥사 무렵 좌의정, 영의정에 오르고, 기축옥사의 참혹함을 보고 서인에게 원한을 품고 서인 공격의 선봉장이 된다고 한다.

1591년 세자 책봉파문(건저문제)으로 실각한 정철과 서인의 처벌을 놓고, 동인이 내부의 여론이 나뉘었을 때는 정철을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으며, 남인과 북인으로 갈릴 때 북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1590년과 1591년, 1592년, 1599년과 1602년 세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다고 한다. 

 

 [연못]

 

묘소 앞에 연당(연못)은 비보(裨補) 풍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한다. 오늘의 방문 목적을 달성하고자 천방사로 향한다.

 

 [천방사]

 천방사는  비구니 선원으로 옛이름은 이화사였으며, 과거 '천 개의 방'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1895년 화재 후 중창된  작고 아담한  사찰이라 한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대웅전 내의 금동여래불상은 고려 시대 후기 불상 양식의 28cm 크기의 금동불상이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대웅전에 유리상자내 주불로 모셔진 금동여래좌상은 육계는 크고 낮으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표현되어 있고,  얼굴의 인상이 두꺼운 도금으로 인해 명료하지 않으나 단정하게 보인다. 어깨가 둥글고 허리는 길고 반듯하며, 하반신은 비록 잘못된 주조로 인해 밑부분이 들떴지만 결과부좌한 다리의 표현은 안정감있다고 한다. 신체에는 두꺼운 대의를 걸치고 노출된 가슴에는 수평의 내의와 군의를 묶는 띠매듭이 표현되고, 왼쪽 옷주름은 삼각형 골주름 형이라 한다. 마을을 돌아나와 일전에 안채를 들어가 보지 못한 이남규 고택을 찾아본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이남규 선생고택, 안채]

 

조선후기 목은 이색 10대손인 이산해의 손자 이구의 부인 관련 주택으로 지난번 방문시 저녁 늦은 시간으로 내부를 못 본 것에 아쉬움을 가지던 곳이라 재방문 해본다. 부인이 인조 15년(1637)에 그의 조부 묘소 근처인 이곳에 건립하고 그후 헌종 12년(1846)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전하며, 한말의 지사 이남규의 생가이기도 하다. 남향으로  전체 배치는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행랑체가 튼ㅁ자형을 이루면서 안채의 서측편에 一자형으로 된 큰 사랑채가 있다.

  

 [안채 내부]

 

안채의 문을 들어서면, 안채는 ㄷ자형 평면에서 중앙부분 3칸통칸을 넓은 대청으로 하고 대청 우측편에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이 반 칸씩의 고방을 갖고 있다고 한다. 대청의 좌측편에 안방이, 우측편에 건넌방이 위치하는 이 지방의 일반적인 평면 구조와 달라 특이하고 2칸으로 된 부엌이 안방 옆에 붙어 있다고 한다. 안채의 구조는 덤벙주초석 위에 방형기둥을 세운 후 양봉만을 건물 내외 방향으로 끼운 간결한 민도리집으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대청 좌측에는 1칸씩의 마루방과 건넌방이 있고 이어서 2칸의 부엌이 연결되는데, 특히 사당을 별채로 두지 않고 대청 서측 끝단 1칸 반을 우물마루로 하여 사당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행랑채 뒷모습과 안채]

 

안채 앞에 있는 一자형의 행랑채는 2칸의 중문을 중심으로 동측 3칸에는 헛간을 드렸고 서측 2칸은 청지기방으로 꾸몄다.

 

 [사랑채]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대청이 2칸이고, 전면에는 4분합 띠살문 들어열개를 달고 후면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고 있다. 대청 좌측에는 1칸의 작은 사랑방이, 우측에는 2칸의 큰사랑방이 있는데 대청과는 3분합 맹장지 들어열개를 각각 달아 대청으로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각간 전면에는 툇마루로 이어지고 특히 큰사랑방과 작은 사랑방 전면에는 창호로 막아서 누마루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전면 4개소에만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나머지는 모두 덤벙주초석을 놓고 방형기둥을 세우고 있다. 기둥머리에는 초각이 있는 양봉만을 끼워 놓은 굴도리집이며, 지붕틀은 5량가구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사랑채과 옆의 안채]

 

이곳에 있는 수당기념관은 수당 이남규 선생(1855~1907)과 그 일가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박물관으로, 일제에 항거하며 4대에 걸쳐 독립운동과 호국에 헌신한 수당 가문의 유물과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 상황리 석불]

 

자목련 뒤에 있는 상황리 석불을 생가 앞에서 바라본다. 천방사 금동여래 좌상을 찾아 온 이곳에서 여러 문화재를 접하는 행운을 맞이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두번 발길 하는 경우도 생기나, 전에 보지 못한 것도 견문을 넓히고 다시보는 즐거움도 있고,  두번의 방문으로 눈에 익어 더 잘 알게 되는 것으로 만족하며 헛걸음이 아닌듯 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오늘 방문하여 많은 문화재에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됨을 기뻐하며, 또한 다음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이백서른 한번째 -예산 > 뉴스 | 세종해피뉴스

 

如一同行 이백서른 한번째 -예산

오늘은 예산을 찾아본다. 그곳의 천방사에 문화유산이 자리하여 찾는 길이다. 길을 가다보니 이전에 거쳐간 이남규 고택을 지나며 방산지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충남 문화유산 이광임 선생고

www.xn--vg1b03zi5a71m9wruj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