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찾아 보령으로 발길을 해본다. 대전의 계족산에서 맨발로 황토길 걷기를 실행하여, 건강을 찾아가는 친구가 새로이 찾아낸, 맨발로 백사장 걷기를 답습해 보려 그의 뒤를 밟아 대천해수욕장을 찾아본다. 맨발로 걷기는 문제되지 않으나,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꽃샘 추위보다 더한 찬기운을 내뿜어, 의상이 준비 미비로 환경만 알아보며 걷기를 포기한다. 이곳으로 찾아올때 도로의 벛꽃이 다른 곳과 달리 아직도 만개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된다.

[대천해수욕장]
방문객이 띄엄띄엄 보이는 백사장을 잠시 걸으며, 보령의 머드축제 같이, 지역축제로 맨발 백사장 걷기를 홍보하면 어떨가 생각해 본다. 방문자가 무념으로 걸으면 육체적 정신 건강이 좋아지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걸으면 건강과 소통의 화목한 분위기가 생기도록, 백사장을 운동장 트랙처럼 돈다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적어도 건강 생각하는 이의 방문으로 북적이는 백사장이 되지 않을까? 걷기대회나 맨발 달리기 등도 좋고, 맨발과 백사장의 매치는 환상이라는 생각 속에, 요즘 지자체 마다 설치로 붐이 이는 황토길 맨발 걷기에 이은 백사장 맨발걷기로, 지역이 방문객으로 활기차게 되길 바라본다. 잠시 수평선의 바다를 감상하다 자리를 옮겨 주변에 자리한 문화유적지를 탐색하려 한다. 해수욕장을 벗어나 남포 방조제를 끼고 지나서 자리한 명소를 방문한다.

[충남 문회유산자료 최고운 유적]
남포방조제가 생기며 섬에서 벌판의 작은 동산으로 변한, 이곳은 통일신라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선유한 곳으로 전해지는 유적이다. 최치원은 신라 6두품 출신의 유학자로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와 신분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어려워지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도 머물며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에 한시를 새겼다고 전하나 지금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다고 한다.

1955년 남포방조제 건설 전에는 맥도(麥島, 보리섬)로 불린 섬 이었을때, 지금의 이 바위들이 파도를 맞고 있었을 생각을 해보며, 바다와 접한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최치원 선생을 그려본다. 지금은 벌판 위에 덩그러니 자리하여 이전과 같은 품세가 출중하지 못하나, 바위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모양과 최치원을 기리는 것에 만족해 하며, 유형 문화유산을 찾아 단원사로 향한다.

[단원사]
새로이 불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듯한 단원사에 당도한다. 이곳 영수암( 예전의 신라 범일 국사가 창건하고 임진왜란시 불탄것으로 전하는 단원사) 에는 이곳 보령의 오석으로 만든 석비를 얹어 놓은 완전체의 석비가 자리한다. 새로이 만들어 완전체가 된 석비를 지키는 순둥한 삽살개 같은 견이 계속 따라 다니다 자리잡고 지키고 있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어느 고승의 탑비로 추정하나 비신이 없이 귀부(龜趺, 받침돌)와 이수(螭首, 머리돌)만이 주변 산기슭 절터에서 발견된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원래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의 비몸을 잃어버린 채, 머릿돌만이 놓여 있었는데, 새로이 비신을 만들어 귀부와 이수와 완전체를 만들어 놓고 있다.

[승탑 부재]
귀부와 이수와 함게 자리한 석조물은 귀부와 이수의 조각 수법, 양식, 크기가 비슷한, 8각 원당형 승탑의 파재(破材)로 보여 고려시대 어느 유명한 승려의 탑비와 부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탑비를 이고 있는 완전체 모습을 흐믓해 하며 보령향교를 찾아본다.

[충남 기념물 보령향교]
주포면에 자리한 보령향교는 조선시대 1723년(경종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중등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어, 1868년, 1964년, 1967년에 각각 중수되었으며,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을 비롯하여 부속건물이 있으며, 전학후묘의 일반적 향교 배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명륜당]
동재 서재는 기숙사이며 명륜당은 강의실인데,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토지와 노비를 지급받아 보령현감의 통제 하에 교관이 교생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갑오개혁 이후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의 석전제 행사만이 거행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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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중국 5성과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보령향교 앞 전경]
보령향교에 서 보이는 전경은 벌판과 그 벌판 위에 자리하는 듯한 바다와 섬이 여느 향교 앞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웃한 옛 관아 건물을 찾아 나서본다.

[남포읍성]
남포면 읍내리에 자리한 남포읍성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석성으로, 고려 우왕 때 처음 쌓기 시작, 공양왕 2년(1390년)에 진영을 설치하며 완성되고, 조선 세종 때 현의 치소를 옮기며 재정비되었다고 한다.

[남포읍성]
성벽의 총 길이는 약 900m, 높이는 약 3.5m로 외벽은 돌로 쌓고 내벽은 흙으로 채운 내탁식 구조이며, 성안에는 조선시대 남포현의 관아 건물인 진서루(서문), 동헌, 옥산아문 등이 남아 있고, 현재 성 내부에 남포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바닷물이 성 앞까지 들어오던 해안의 요충지였다는데, 현재는 간척 사업 등으로 내륙에 위치한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남포관아문 진서루]
조선시대 여지도서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로서 객사, 동헌, 아사, 향청, 작청, 현사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헌, 내삼문 그리고 관아문 진서루라고 한다. 진서루는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의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며,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듯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내삼문이 자리한다.

[ 충남 유형 문화유산 남포관아문 내삼문]
동헌 안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중앙은 솟을대문 1칸 출입구 역할을 하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좌우대칭이 아닌, 한쪽은 돌을 넣은 흙벽돌로 한쪽은 널판을 댄 벽이 있어, 무기고와 서고로 분리되어 다른 구조로 되어 있나 하는 궁금증을 갖게하는 건물이다. 중앙 1칸은 익실보다 올려 맞배지붕으로, 좌우 익실은 팔작지붕이다.

[충남 유형문화유산 남포관아문 동헌]
현감의 집무실인 동헌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정면 중앙에 2칸 툇간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미고 있다.
보령보다는 대천으로 그리고 머드축제행사로 유명한 곳인데, 여름철이 아니면 한산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각종 미네날이 많이 함유된 갯벌이나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것이 여러사람의 입을 통하여 알려져 여름이 아니라도 벅적거리는대천 해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이백 스물 아홉번째 - 보령 > 뉴스 | 세종해피뉴스
如一同行 이백 스물 아홉번째 - 보령
바닷가를 찾아 보령으로 발길을 해본다. 대전의 계족산에서 맨발로 황토길 걷기를 실행하여, 건강을 찾아가는 친구가 새로이 찾아낸, 맨발로 백사장 걷기를 답습해 보려 그의 뒤를 밟아 대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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