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스물 일곱번째 _ 정읍2

세종해피뉴스 2026. 4. 8. 22:52

망제동 석불입상을 찾는다. 길을 벗어나 망제봉을 향해 산길을 따라올라 산 중턱을 찾아드니, 도착한 곳에서 전북의 문화유산의 돌봄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주변 작업을 마치고 연장을 정리하고 있다. 주변 정리가 깔금하여서인지 산으로 높이 올라와 외진 곳인데도 을씨년스럽지가 않다. 비교적 탑방객의 발길이 적은 이 곳 까지 둘러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 작은 감동을 느낀다.

 

[영모재와 석불]

 

두승산의 지맥인  망제봉의 영모재는 여산 송씨문중의 선영을 관리하는 제각(재실)으로, 이 곳  툇마루에서는 정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을 경험한다.  석등과 함께 자리한 석불과 인접한 이 건물은 조선시대 불상인 망제동 석불입상과 함께 있어 불교와 지역 내 유교 문화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전북자치도 유형 문화유산 망제동 석불입상과 석등]

 

망제봉의 중턱에 홀로 서 있는 이 석불은 머리에는 삿갓형의 넓은 원형 보개를 쓰고 있으며, 높이 4.28m로 일명 ‘대암석불(大岩石佛)’이라고도 한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석주형의 신체와 평면적인 옷주름 등은 토속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북자치도 유형 문화유산 망제동 석불입상]

 

친숙해보이는 얼굴로 머리에는 마치 갓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왠지 유교적인 성격을 띄고, 목의 삼도가 생략되어 있고, 목 밑에는 U자형의 옷주름이 있고, 복부아래는 V자형으로새겨져 있으며, 손목 아래에는 세 줄의 평행선으로 되어 있다. 두 손은 '두려움을 없애고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의, 손바닥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여원시무외인' 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하며, 머리에 쓴 모자와 직사각형의 몸으로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드는데, 다소 흔들린다고 하는 말이 있고, 불상이 좌대의 정중앙에 위치 하지 않아서 인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제 위치로 옮기기는 불상이 크고 갓이 커서 어렵겠지 하는 생각과, 어떠한 연유로 발걸음을 옆으로 옮긴 것인지, 여러 궁금증을 가지고, 산너머의 천곡사지를 찾아 찻길을 따라 산을 끼고 돌아 간다. 

 

 [천곡사지]

 

망제동의 서쪽 산기슭에 위치하는 천곡사지에 도착하니 멀리 가늘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는 탑이 눈에 든다. 지금은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 주변 사지를 발굴 조사시 이곳은 천곡사가 있었던 곳이라한다. 천곡사는 통일신라 선덕여왕때, 피부병을 앓던 선덕여왕이 이곳의 샘물로 병을 고치자, 자장에게 명하여 절을 짓게 하고 '천곡사(泉谷寺)'라 이름 붙였다고 하는 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며, 골짜기에서 맑은 샘이 솟아난다고 하여 '천곡(샘골)'이라 불렸으며, 민간에서는 이곳을 전곡사지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보물 제 309호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가늘고 긴 모양이 특이하게 보이는 이 석탑은 8매의 석재로 구성 된 지대석 위에 1매의 판석형 석재로 조성한 낮은 단층기단으로, 기단은 측면에 조식이 없이 상단에는 갑석형의 굽을 돌리고, 상면은 경사 지고, 중앙에 낮은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치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 형태로 운주사석탑군에서 볼 수 있어 고려시대에 시작 된 기단의 한 유형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탑신부는 1층탑신은 4매석으로 면에는 우주의 표현이 없으며, 2·3층탑신석은 각각 2매의 석재에 매 층 각 면에는 양 우주가 각출되어 있고, 4층 부터는  탑신과 모든 옥개석이 각각 한 돌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1층탑신이  높게 조성되고, 2층 이상은 체감률이 적으며, 옥개석은 전부 같은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옥개석은 낙수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하면에는 추녀에 얕은 낙수홈이 모각되고, 받침부에는 양련의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재는 모두 없어지고 7층옥개석 위에 노반석 하나만 놓여 있다고 하는데, 이 석탑은 옥개석의 양식이 특이하여 이형석탑(異形石塔)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한다. 

천곡사지와 안정감이 없어 보이는 것이  비슷한 듯 차이나게 느껴지는 3층석탑을 찾아간다. 삼층석탑으로  가는 길가에 석굴 같은 묘가 보인다. 

 

 {백제 횡혈식 석실분]

 

길옆에 자리한 이 돌방(석실)은 깬돌과 판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유물은 일제시대에 거의 도굴되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무덤의 내부구조로 보아 백제 웅진시대 후기에서 사비시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돌방의 위치가 이 곳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이곳에서 이길 너머 고분군이 자리한다는 안내문을 본다. 고분군은 공주시대에서 부여시대 말기에 걸친시기에 조성된 천태산 서쪽 기슭에 있는 백제의 굴식돌방무덤(황혈식석실분)으로 약 1백년 동안의 묘역이었다고 하는데, 길가의 고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보물 제 167호 정읍 은산리 삼층석탑]

 

고분군 인근의 큰길 에서 샛길로 조금 올라가는 길에 자리한 3층 석탑으로, 독특한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 보물 제 167호 정읍 은산리 삼층석탑]

 

길쭉해 보이는 이탑의 기단은 낮은 1단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과 같은 양식이라 하며,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여러 장의 돌로 이루어졌다. 1층의 몸돌은 대단히 높아 기형적인 인상을 주고,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2층 몸돌에서 크기가 줄어 있어 독특한 모양을 보인다. 2층 몸돌의 남쪽면에 2매의 문짝이 달려 있어, 이를 감실로 짐작하고있으며, 보통은 벽면에 감실 형태를 새기는데, 이탑은 양측에 문짝을 달아 희귀하다고 한다. 3층 몸돌은 더욱 줄어들고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한 돌을 얹어 간결하게 구성하고, 꼭대기에 평평한 돌이 놓여 있는데 이것이 탑의 머리장식의 일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고려 중기의 탑으로 추축하며, 기단과 지붕돌에서 백제 석탑의 모습이 보여, 고려시대에도 옛 백제 땅에서는 백제양식의 석탑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안정감이 없고 육중한 감은 없으나, 특이한 양식과 백제양식의 탑이 전파된 경로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이곳으로 오던 길에 눈여겨 본 전봉준 생가를 방문해여 본다.

 

 [전봉준생가]

 

 [ 전봉준생가]

 

생가 방문을 통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좀더 자세히 알려는 마음이 일어, 동학 혁명의 발단이 된 만석보를 찾아보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만석보 형파 선정비]

 

만석보 가는 길에 보이는 전각을 찾아본다.

 

 [만석보 혁파 선정비]

 

선정비의 소개글을 읽어 본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예동보가 있음에도 새로운 보를 축적하고, 수세면제의 약속을 어기고 수탈하여 '배들 평야' 농민들이 분노로 봉기한 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발달이라 한다. 당시에 만석보의 일부만 파괴되고, 새로이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가 수탈과 학정의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나머지를 철거하여, 이에 마을 주민이 '군수안후길수만석보혁파선정비'를 새웠다고 한다. 비각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세웠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 조형물]

 

 [만석보 유지비]

 

지금은 없어진  만석보가 자리 하였던 곳에, 만석보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가 조성되어 있다.

 

 [안내문]

 

 

그리 멀지도 않은 시기라 생각되는 역사의 현장에 서 본다.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평야가 오는 내내 펼쳐진 곳이라, 풍요로움이 가득찬 곳이라 생각되는데, 그것의 나눔에 대한 차이와 인간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기록에 남을 사건이 발단한 것이 안타깝게 생각된다. 살아있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아있는 동안 남보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본능이며, 모든 생물계의 당연한 삶이 아니가 하는 무소유를 돼새겨 본다. 가진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에 물어 필요 이상을 탐내지 않는것, 소유는 그 것에 얽매이고  관리해야 하는 번뇌가 발생하게 되는것, 내가 가진 것이 본래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것, 그리하여 아무것도 갖지 않음이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치를.  소소하게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문화재 여행도 어쩌면 자신에 대한 자기애와 더 많이 접하려는 욕심 때문 아닌가 생각하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을 습득 후 트인 눈으로 다시 한번 방문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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