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스물 다섯번째 - 거창

세종해피뉴스 2026. 3. 26. 13:48

거창으로 향한다. 금원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가섭암지가 금원산휴양림 내부에 자리하여 매표소를 지나면서 주차료가 징수 되고 있다.  가섭암지의 국가문화유산만 보고 돌아 나오는데, 주차료의 징수가 마땅치 않지만 뜻에 따른다. 매표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물길을 두 군데 가로지르면 문바위가 보인다. 

 

[문바위] 

 

신라고찰 가섭사의 입구에 자리하는문바위는 '가섭암' 또는 고려말 충신 달암 이원달 선생이 망국의 한을 달랬던 바위라 하여 '순절암' '두문암' 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단일암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바위라고 하는데 울산바위가 가장 큰 것이 아닌가?  단일암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가섭암사지에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바위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덮개돌이 비스듬이 걸쳐 만든 공간을 들어서면 바위 한켠에 높게 조각 된 마애불 삼불입상을 맞이한다.

 

 [보물 제 530호  거창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큰 돌이 비스듬이 누워 만들어진 동굴의 삼존불은 다른 마애불과는 다르게 삼각선으로 구획되고, 보주형으로  중앙은 아미타여래, 우측이 관음보살, 좌측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불꽃 같아 보이는 연꽃무늬 수미단 위의 본존불은 삼각형의 코가 다소 토속적으로 보이고, 전체적인 형식이 고려시대 부처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에 새긴 글로 1111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가섭암 자리에는 1770년대까지 절이 있었으며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석재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의 삼층석탑은 위촌초등학교 교내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동굴에서 자연광으로 그 빛을 발하고, 다소 경사진 사면으로 보존이 잘 이루어진 마애불을 뒤로 하고, 금원산휴양림을 차로 둘러본다. 황금원숭이가 반기는 금원산정상 가는 길에 자리한, 자운 폭포와 아직도 쌓인 눈속을 물길로 녹이며 흐르는 유안청 폭포를 관람하고, 거창읍을 향하여 길을 옮긴다. 지난번 농산리 석불과 함께 보려다 못 본 석불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보물 378호 거창 상림리 속조보살입상]

 

작은 마을 뒷편에 자리한 높이 3.5m의 화강암 보살상으로, 연꽃이 새겨진 8각의 대좌 위에 서 있다. 이 부근에 건흥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그 절에서 모시던 보살상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상투 모양의 보계에 보관은 없어진 상태로, 길어 보이는얼굴에 작고 가는 눈, 다문 입이 다소 엄숙한 형상이다. 작은 각진 어깨에  각이 져 있으며,  장방형 신채에서 보살상 특유의 유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가슴 장식 목걸이와 양 어깨에  천의가 표현되어 있으며, 허리에는 굵은 띠와 아래로는 양 다리에 걸쳐 U자형 옷주름이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오른손은 물병을 들고 있고, 왼손은 가슴에  연꽃송이를 쥐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제 거창의 또 다른 보물 석조상을 찾아 길을 나선다.

 

 [보물 제 377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새로이 단장한 금용사라는 사찰내에 자라한 석조여래 입상은, 이 불상이 서 있는 부근에 금양사 혹은 노혜사라고 부르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불상의 주위에 주춧돌이 남아 있고, 불상 앞에 석등 재료가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높이 3.7m로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형태이며,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모자 모양의 천개는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머리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모습에,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다.  얇게 걸친 옷자락은 U자형의 옷주름이 흐르다가 긴 타원형모양을 나타낸다. 오른손은 내려 옷자락을 잡고, 왼손은 배에 대어 검지 손가락만 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불상이라 한다.

 

[ 거창 박물관] 

 

거창 박물관을 찾아든다. 향토 사학자인 최남식 · 김태순의 기증으로 1988년 개관하였다고 한다.  거창역사실 · 생활민속실 · 야외전시실 ·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장 유물은 1,200여 점, 전시유물은 900여 점으로, 소장 유물은 가야시대 유물을 포함한 토제품 250점, 고려 · 조선시대의 자기류 400여 점, 생활 농기구 500여 점 등이라 한다.

찾아가 봐야 관람이 불가하다는 둔마리 벽화고분이 박물관내에 복원되어 있어 빠름 걸음으로 찾아본다.

 

[사적 239호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거창둔마리벽화고분은 거창군 남하면의 천녀상, 주악상 등의 벽화가 그려진 고려시대 굴식 돌방무덤이라한다. 방형으로 구획된 묘역 내에 중앙의 경계벽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돌방을 동서로 하나씩 설치한 쌍실묘로, 각 방의 벽면은 회를 칠하고, 천녀상 · 주악상 · 무용도 등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자료로 1974년 9월 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거창둔마리벽화고분]

 

1971년  발견된 후,  발굴 조사당시 봉토와 둘레돌이 심하게 훼손되었고, 도굴에 의해 부장품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상자형 쌍돌덧널로 먼저 땅을 판 후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덧널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서쪽에 있던 덧널에는 나무로 만든 널이 1개가 들어 있었으며 동쪽 돌덧널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장방형으로 굴착해 무덤구덩이를 조성하고, 그 내부에 굴식 돌방을 2기 설치하고 남북 방향의 경계벽을 기준으로 동서 방향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방은 모두 널돌을 사용해 상자 형태라고 한다. 도굴로 인해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지만, 양쪽 돌덧널 모두 벽면에 회칠을 하고 흑·녹·갈색으로 인물을 그린 벽화가 있고, 동쪽 돌덧널의 동쪽 벽에는 선녀 6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북쪽 벽에 글자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서쪽 돌덧널의 서쪽 벽에는 여자 2명, 남자 1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악기연주 그림으로, 불교의 사상이 중심이 되면서 또한 도교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개성 근처의 법당방에서 발견된 벽화와 함께 몇 안 되는 가치있는 고려 벽화무덤이라 한다.

발길을 옮기다 큰 지도를 접한다. 여행가가 존경하는 인물인 고산자 선생의 대동여지도를 펼쳐놓은 것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대동여지도 ]

 

대동여지도는 보물 제 850 호로 세가지가 일괄 지정되어 있는데, 거창박물관이 소장한 대동여지도는 1864년(고종 원년)에 재간된 목판본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후기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순조 34년(1834)에 자신이 만든 <청구도>를 27년 후에 증보 수정한 대축척 지도로 분첩절첩식지도첩로, 형태를 보면,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상을 담은 채색본으로 22첩(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아코디언처럼 접거나 19단(동서), 22단(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처음으로 만들어 김정호가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그 후 고종 원년(1864)에 수정본이 재간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이토록 정교한 지도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고산자에 대해 경이감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 

전시 된 문화재들을 둘러본다 

 

 [보물 제 285호 금동보살입상]  거창읍 출토로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복제품

 

[국보 제 172호  백자상감 초화문] , 거창 북상면 출토 , 복제품

거창에서 출토된 문화재이지만 보관은 외지에서 하고 있는 국보, 보물의 문화재를 복제품을 통해 알리고 있다.

 

 

 

문화재가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와 맵시에 취하다가 박물관을 나서 옥외전시품을 둘러본다.

 

 [경남 유형문화재 거창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 

 

이 석불은 마리면 말흘리 송림마을의 절터에서 출토되어 마리중학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박물관 개관시 옮겨온 것이라한다. 하반신 부분이 깨어져 나가고 마멸이 심한 편이다. 양손은 마멸되어 불분명하지만, 손의 위치로 보아 지권인일 가능성이 크다. 대좌는 송림마을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짜맞춘 것으로 하대석은 심하게 파손되었다. 특히 중대석에는 나한상이 부각되어 있는 것이 이채로운  마멸이 되었지만 좌대를 갖춘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이라고 한다.

 

[ 당산 기자석상과 비석군]

  

[ 천덕사지 석탑, 이형석탑, 소야탑골 3층석탑]

 

앞으로 문화재로 깊이 사랑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많은 문화재 들이 야외를 장식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재를 가진 거창을 둘러보며,  아직도 발길 닿지 않거나 다시 보고 싶은 곳이 많은 곳이라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문화재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 감에 놀라움을 느끼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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