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스물 두번째 - 창녕2

세종해피뉴스 2026. 3. 3. 21:19

국보가 자리하고 있는 만옥공원을 찾아간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삼층석탑을 찾아본다.

 

[ 경남 유형 문화유산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

반듯하게 조성 된 공원으로 옮겨져 자리한 이탑은 이중의 받침돌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삼층석탑으로, 원래 퇴천리 일대 민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수습하여 이곳 만옥정공원으로 이전 복원 하였다고 한다. 탑이 있었던 곳은 절터로 추정되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사찰이나 석탑의 기록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나, 이 탑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하며, 이곳 창녕의 석탑의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탑이라고 한다. 

 

[창녕 현감비군]

 

석탑과 이웃하여 자리한 비군은, 예전 이곳 창녕현을 관할하던 지방관의 선정비를 모은 것으로 관찰사, 현감, 군수, 들의 34기의 선정비와 이 비들을 모을 때 함께 한 나무아미타불 비석 1개가 자리한다. 선정비(유애비, 거사비, 청덕비로도 불림)는 지방관의 공덕이 공론화 되어, 왕의 칙령으로 허가 받은 후에 세우는 것으로, 비문에는 수령의 이름과 공적을 4구 16자의 주절로 요약하여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며, 아울러 비석을 세운 연도인 간지를 적어 넣었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접하며 객사를 바라본다.

 

[창녕객사}

 

이웃하여 자리한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당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우헌으로 구성되는데, 이 객사는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고, 1924년 군수가 시장용 건물로 쓰기 위해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 이곳 만옥정에 옮기고 보수하였다 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바닥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기단 위에 곧바로 세웠으며 기둥 사이에는 벽을 쌓지 않고 있다. 앞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기둥 사이에 나무 2개를 가로로 설치해 행사 때 발이나 병풍을 치기 쉽게 하였으며, 건물 전체에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창녕객사 옆모습]

 

지어진 건물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측 된다고 한다. 일부러 이렇듯 특이하게 지은 것이 아니면, 객사라기에는 완전체가 아닌 듯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공원 산책길을 따라 한바퀴 둘러보다 보면, 작은 전각 안에 잘 모셔진 자연석 덩어리를 만난다.

 

[국보 제 33호 신라 진흥왕 척경비]

 

이 비는 1914년에 발견되어, 1924년에 최초 발견된 자리 (창녕읍 목마산성 서쪽 기슭)에는 표지석을 설치하고, 이 곳으로 옮겨와 보전하고 있는 창녕 신라 진흥완 척경비 이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비화가야(지금의 창녕) 지역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561년(진흥왕 22년)에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 국보  제 33 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화강암에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3m, 낮은 곳이 1.15m로 비석의 왼쪽 윗부분이 오른쪽 윗부분보다 낮아  두행마다 한 자씩 줄여 새겨져 있다고 한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글자 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전체 643가 가운데  현재 400자  정도가 판독 된 상태라 한다. 비문의 첫머리에 '신사년 2월1일 세웠다'는 내용이 있어 진흥왕 22년 (561년)에 세워졌음을 알게되고, 앞부분이 심하게 닳아있어 판독이 어렵다지만 뒷부분은 긴세월에도 비교적 선명하다. 진흥왕의 업적과 함께 당시 동행했던 고위 관직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어, 신라 6부의 명칭과 중앙 및 지방의 중요관직 명칭, 지방 유력가의 직명 등이 기록으로 알려지고 있어,  6세기 신라의 정치, 사회, 제도, 군사적 실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라 한다.

 

 

진흥왕대에 세워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는 첫머리에 모두 "순수관경"이라는 표현이 있어  순수비로 부르지만, 이 비석에는 이러한 표현이 없어 척경비로 부른다고 한다. 앞으로 어디든 자연석의  큰덩어리를 만나면 혹 글귀가 세겨져 있지는 않은지 관심있게 보려고 한다. 공원을 나서 창녕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다가 달성을 지나는 길에 현풍의 석빙고가 생각난다. 아마도 창녕의 석빙고 내부를 잘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 여기며 현풍 석빙고로 향한다.

  

[ 보물 제 673 호 달성 현풍 석빙고]

 

국내 6개와 북한에 1개 총 7개가 남아 있다고 하는,  석빙고는 얼음이나 신선도을 유지하여야 하는 특산물을 보관하는 창고였다고 한다. 현풍의 석빙고는 길이가 약 9m, 너비는 5m, 높이가 6m로, 북으로 뻗은 능선의 아래쪽을 따라 남북으로 긴 형태이며, 출구는 능선 방향으로 나 있다.

 

 

이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축조연대가 기록된 비석이 발견되어, 영조 6년(1730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내부의 모습은 천장은 무지개 모양이며, 환풍구를 두군데 배치하고 바닥에는 배수로를 설치하고 돌을 깔고, 입구에는 바깥의 공기를 차단하기 위한 옹벽이 있다. 이러한 구조로 얼음을 썰어 넣어 냉장고와 같은 역활을 하였다는 것이 대단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 오늘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됨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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