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스물 세번째 - 영양

세종해피뉴스 2026. 3. 10. 22:42

오늘은 국보로 지정 된 전탑을 가진 영양으로 향한다. 전탑이 많은 안동과 이웃 한, 옛날 같은 문화권이어선지 독특한 전탑이 여럿 보전되고 있어 이곳을 찾아 본다. 먼저 산해리로 길을 잡는다. 국보이기는 하나 문화재에 관심을 가기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보 제 187 호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여행 중에 늘 큰탑이나 마애불을 올려다 보지 않고 정면이나 주변 위의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수줍게 조용히 드론을 날려본다. 탁트인 주변의 모습과의 여러 높이와 각도에서 보이는 조화를 알 수 있어, 향후는 보다 활용을  높여 보려한다. 크기가 압도적인 탑이나 마애불 앞에는 그것을 수평의 높이에서 사진이나 화면을 통해서가 아닌 앞에 높은 전망대를 만들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탑은 험준한 산으로 쌓인 계곡을 따라 흐르는 반변천 옆 밭 가운데 서 있다.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이탑을 ‘봉감탑’이라고도 하였으며,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와조각과 청자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이탑은 흔하지 않은 강을 끼고 있는 사찰이었음을 알게 된다. 뜬금 없는 강가의 마을에 우뚝 홀로 자리한 커다란 탑에 의아해 하였는데, 이제 새로이 주변 정리 작업에 들어가는 듯 보인다. 지금은 다소 황량한 작은 벌판에 사진틀 만 하나 설치 되어 있는데, 갑자기 전망탑이나 흙으로 만든 꽃동산 전망대를 설치 하면  탑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주변도 단조롭지 않아 방문객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이 의견을 영양에 알려야 하나 생각해 본다.

 

 [국보 제 187 호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977년 국보로 지정 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된다. 붉은색 이암 계통의 석재를 사용하고, 돌을 작게 다듬은 여느 모전석탑과 달리 비교적 큰 돌들을 사용하고있다. 해체결과에서 모전석들은 노출 된 부분만 다듬어져 있었고 탑 내부로 감춰지는 부분은 가공되지 않았으며,  뿌리가 긴 돌들이 내부의 다른 돌이나 흙으로 단단히 다져져 있어 탑이 내구성을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1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으로 , 기단은 흙과 돌을 섞어 낮게 바닥을 깔고, 10여 개의 길고 큰 돌을 짜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을 두고, 감실 양쪽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 맛돌이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중간에 돌을 돌출되게 내밀어 띠를 이루고, 지붕돌은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다. 1981년과 1988년 해체보수, 1999년의 방수처리, 2000년의 기단 보수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해체수리를 통하여 탑 내부와 기단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의 탑이라 한다. 해체·수리에서 발견된 사실로, 5층 지붕의 중앙에서 부터 아래로 3층 탑신 상부까지 사각구멍이 이어져 있으며, 4층 탑신에서는 나무기둥의 흔적이 발견되어 목재 심주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5층 상부와 탑 내부에서 다량의 기와가 발견되어 원래 탑 지붕에 기와를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머물며 한적함을 즐기다가, 발길을 옮겨 한국의 민간 정원으로 유명한 서석지로 향한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양 서석지 ]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정영방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둔시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민가의 정원시설로 연못과 정자를 말하는데, 연못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주일재(主一齋), 서쪽에 경정(敬亭), 뒤쪽에 수직사(守直舍)가 있다.

 

[서석지 경정]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다.

 

[주일재]

 

주일재는 ‘운서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 독서를 하던 공간으로, 주일재의 뜻은 '주일무적'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마음을 한곳에 모아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학문 수양의 자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서석지 주일재와 사우단]

 

주일재 앞으로 연못 쪽으로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고 사우단으로 부른 돌출된 석단이 있고, 연못은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의 모양이다. 동북쪽 귀퉁이에 '읍청거'라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과 반대편 서남쪽 귀퉁이에 '토장거'라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이 있는데, 읍청거는 맑은 물이 뜨는 도랑, 토장거는 더러운 물을 토하는 도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연못 안에는 60여개의 돌을 서석(瑞石)이라고 부르는데, 이중 19개는 옥성대, 상경석, 낙성석, 조천촉, 수륜석, 어상석, 관란석, 화예석, 상운석, 봉운석, 난가암, 통진교, 분수석, 와룡암, 탁영반, 기평석, 선유석, 쇄설강, 희접암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는 바위의 성상에 따라 지은 듯 하다.

서석지를 나서 마을을 둘러 본다. 

 

 [경북 문화유산 자료 태화당 고택]

 

마을안에 자리한 한옥들 중에 태화당은 동래정씨 입향조인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의 9대손인 정익세가 19세기 말에 건립한 주택으로, 증손자인 정수호가 명명한 당호라고 한다. 정익세는  "문중과 친족의 화목과 손님접대의 필요성"을 느껴 이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하며,  학문 숭상의 가풍을 진작시키고 후학을 양성하는 강당으로도 활용할 생각으로, 사랑채 앞 툇마루를 간이 누마루형식의 난간마루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택은 남향으로, ‘ㅁ’자형 정침, ‘ㅡ’자형 고방, ‘ㅡ’자형 대문채로 구성되고, 고택은 정면에 넓은 앞마당이 있고,  좌측에 장독대가 있고, 담장을 두르고 협문을 세워 뒷마당과 영역을 분할하고 있다.

 

 

느린 발걸음으로 마을안을 둘러보고  길건너 냇가 부근의 석불을 찾아본다.

 

 [전각에 모셔진 연당동 석불좌상]

 

 [경북 유형문화유산 영양 연당동 석불좌상]

 

불상 높이 1.12m, 대좌 높이 1.11m의 약사불좌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삼부작으로, 육계 일부와 양쪽 눈이 깨져 있고, 광배가 세 조각으로 절단되어 있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등 쪽에 새겨져 있는 “市元年乙酉八月佛成之 所屯沙干卽中成之 金獻長戌像(시원년을유8월불성지 소둔사간즉중성지 김헌장술상사)”라는 명문으로  제작 연대가 889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삼도가 선명하고,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으며, 무릎의 앞면이 납작하게 평판화되어 있다. 통견의 법의는  V자형 옷섶에 물결식의 옷주름 선, 기하학적 무늬 처리되어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이 하나의 돌에 새기고, 머리 광배는 양각 두 줄의 띠로 표현되며, 신광의 주변은 소용돌이 구름무늬가 드문드문 새겨져 있다. 대좌는 상대의 앙련과 하대의 복련은 귀꽃 장식을 하고, 복련 아래의 하대석에는 亞자형의 형태만이 새겨져 있다. 격이 떨어지는 지방화가 현저하게 나타는 지방 장인의 솜씨로 이해된다고 한다. 

서석지를 찾은 길을 돌아나온다.

 

 [남이정 자금병 입암]

 

서석지로 가던 길에 지나친 길을 돌아 나오며 절벽앞에 차를 정지한다. 자금병 입암은 3각형 절벽이다.

서석지 방향의 동천과 반변천이 만나는 자리에 있는 석벽은 눈에 띄는 웅장한 모습이다. 그 아래 돌출부에 자리한 정자는 남이정이라 부른다. 계절별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 바위산은 사계절의 바뀌는 모습이 궁금해 지는 곳이다.

 

[선바위]

 

동천과 반변천이 만나는 자리의 선바위는 촛대바위라고도 불리는 바위로 남이장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조선 세조 때 영양 땅 운룡지(雲龍池)에 지룡(地龍)이라는 용이 있고, 그에게는 아룡(阿龍)과 자룡(子龍)두 아들이 있었는데, 맨날 주민들을 괴롭히는 등 몹쓸 짓만 하여, 관에서 혼내려고 군사를 여러 번 보냈지만 모두 실패하고, 둘은 더욱  기세 등등하여 주민들을 더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세조는 화가나서 남이장군을 파견하여, 남이장군은 바로 영양에 내려와 아룡과 자룡의 행패를 듣고는, 운룡지에 이르자 두 형제가 남이장군에게 덤벼든다. 이에 장군이 몸을 날려 커다란 바위에 오르니, 두 형제가 달려와 칼로 해하려고 하자, 몸을 피하면서 두 형제가 자리한 곳을 연속해서 칼로 내리치니 바위가 깎이어 두 형제는 디딜 자리가 없어져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이때 여러 차례 칼로 내리친 부분이 뾰족한 선바위가 되었고,  앞으로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칼질을 두 번 하여 Y자로 물길을 두 개로 나누었으니 현재 반변천과 동천이라고 한다. 설화라 믿기지 않으며, 남이 장군의 기개를 이용한 이야기로 생각된다. 남이장군과 영양의 관계는, 남이장군은 의령남씨로 영양남씨와는 그 시조가 같아 아마도 이런 지형과 남이장군의 기계에 맞는 설화가 생겨났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곳 연당리서 내려 온 동천과 반변천이 만나 합류하는 남이포 건너에는 선바위 관광지가 자리한다. 유원지를  스치며 또 다른 보물을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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