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스물 한번째 - 창녕

세종해피뉴스 2026. 1. 29. 13:07

경남 창녕에 발을 디딘다. 이 겨울에 철새를 보고 싶어 우포늪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보와 보물이 있으며, 걸어서 산책하듯 볼 수 있는 고장이라는 특색을 갖춘 곳이라 찾아 본다. 길을 우선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자리한 곳으로 잡는다. 

 

[보물 제 520호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석탑 하나 만이 덩그란히 자리한 것을 보니 다소 안스럽게 느껴진다.  석탑에 관한 사찰의 기록은 없으며, 이름이 서 삼층석탑은 사실  술정리  동 삼층석탑( 국보 제 34호 )과는 한 사찰에 있었으나 쌍탑이 아닌 별개의 탑으로, 이곳 술정리에 두 개의 석탑이 있어 이를 구분 하려고 동탑과 서탑으로 구분하려 붙인 것이라 한다.

 

[보물 제 520호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며, 아래·위층 기단을 8개의 돌로 구성되고, 남쪽면의 중간의 문짝모양은 후대에 작업한 것으로 짐작 된다고 한다. 위아래 층 바닥돌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위층 바닥돌 각면에 2구의 안상을 조각한 것 또한 특징이라 한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이며,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기고,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진 노반위로 복발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나,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찾아가 볼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보다 다소 떨어지며 조성시기도 훨씬 뒤지는 것으로 본다. 

차로 자리를 옯겨 술정리 동 삼층석탑을 찾는다.

 

[ 국보 제 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과는 관련이 없는 탑으로, 서로 거리도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주변이 점점 가꾸어 지지만 석탑은 그 모습 그대로 라는 생각이든다. 주변을  산책하며 운동 하는 사람 들의 모습이 가끔 보이는 작은 공원 같은 분위기에  탑이 관리되어 보기가 좋다.

 

[ 국보 제 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2008년 송림사(松林寺)명 기와가 출토 됨에 따라 송림사였을 것으로 추정만하며, 1965년도 문화재청의 해체 공사 때 3층 탑신석 상단의 방형 사리공에서 동제잔형사리기, 황색유리사리병 등을 비롯한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창녕권은 신라 진흥왕조 가야가 신라에 귀속됨에 따라  정치/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왕실의  후원으로 건립 된 사찰 의 석탑이라 추정한다.  2중기단 위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 전형적인 석탑으로, 상륜부재들은 사라진 상태이나, 옥개의 각 모서리에 풍탁공이 남아 있어, 과거 풍경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권에서 벗어난 탑 중에서는 그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비례미 또한 뛰어나다고 하며,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에 비견시킬 정도라 본다. 
 

[창녕 진양 하씨 고택]

 

석탑의 뒷편에 자리한 진양 하씨가 대를 이어 살아 온 살림집으로, 공개가  되지 않아 안내문을 보고 내부를 짐작해 보고 길을 나선다. 이제 발걸음에 의지하여 창녕시장을 지나 또 다른 보물인 석빙고를 찾아본다.

 

[ 보물 제 310호 창녕 석빙고]

 

왕릉 같기도 하고 잔듸 언덕 같기도 한 석빙고는 얼음의 저장을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로,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지는데, 이곳은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입구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 현감이었던 신서(申曙)에 의해 세워졌으며,  각 부 양식 또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 보물 제 310호 창녕 석빙고]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고 한다. 또한 내부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올린 4개의 무지개모양 띠를 중간중간에 두고, 각 띠사이는 긴 돌을 가로로 걸쳐 놓아 천장을 마무리 하였으며, 천장에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를 드나들게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국보를 보기 위하여 차로 다시 돌아가며, 오랜 만의 도보 여행으로 지친 몸도 쉬고,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의 3대째 이어 온 식당을 찾아 간만에 둘이 국밥  외식을 즐겨본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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