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의 향교를 찾아본다. 이 곳에는 2020년 많은 향교들과 함께 보물로 지정 보호되는 밀양향교가 자리한다. 향교는 인재를 양성하고, 공자와 성현들을 제사 지내는 곳이러서 인지, 학문을 익히는 장소 답게 조용하며, 엄숙함마저 드는 곳이라 생각된다. 밀양은 안동과 더불어 영남의 2대 유향이라 전하며, 또한 이 향교는 영남지방에서는 경주향교 · 진주향교와 함께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밀양형교는 고려말 조선초경 부터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2년에 부사 최기가 이곳으로 이전 중건하며, 현재의 건물은 1821년에 부사 이현성에 의해 중건된 건물이라 하며,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이 있다.
향교가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고 한다.

[ 풍화루]
교동 마을의 언덕 막다른 곳에 자리한 향교를 들어가는 문이기도 한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이다. 아래층의 가운데 1칸만 출입문을, 누마루에는 계자각난간이 있다.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어 그곳에서 보이는 교동의 풍경을 아쉽지만 볼 수 없다.

[보물 제 2095호 밀양향교 명륜당]
풍화루를 지나 ㄷ자형으로 보이는 건물들에서 중앙에 자리한 보물인 명륜당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1618년 다시 지었는데, 자연석을 쌓아 만든 기단위에, 맞배지붕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가운데 세 칸은 대청마루를 양쪽 끝에는 방을 배치된 규모가 큰 명륜당에서는 흔히 따르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구조이다. 새 날개 모양을 하고, 기둥 위에서 보를 받쳐주고 있는 익공은 17세기 모습 그대로 인듯 한다.
향교나 서원의 방문시 해보는 마루에 앉아 여러 생각에 젖어본다.

[동재, 서제]
명륜당 마당에 자리한,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맞배 지붕이고 3량구조에 민도리집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제례 공간인 대성전을 찾아 명륜당 뒤켵을 둘러보니 담만이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대성전은 면륜당 뒤에 자리 하는데, 이곳은 대성전에서 수평 왼쪽으로 다소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좌묘우학의 배치의 병렬식 향교의 대표사례로, 제례 공간인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 보도록 한 자리 배치는 국내에서 밀양향교가 유일하다고 한다. 발길을 안내도에 따라 옮겨 대성전을 찾는다.

[보물 제 2094 밀양향교 대성전]
찾아온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 되어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밀양 부사 최기가 1602년 현재 위치로 옮겨 짓고, 1821년 부사 이현시가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맞배지붕의 건물로, 특징은 대성전을 옮길 때 처마 끝의 공포를 앞면은 새로 만들고 뒷면은 원래 있던 것을 활용하여, 200년 시차의 조선 중ㆍ후기 건축 기술의 흐름과 특징을 한꺼번에 보여주며, 내부 바닥은 장마루로 개조되었다 한다.

[동무와 서무]
동무와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가운데 칸은 안쪽으로 열리는 쌍여닫이 판장문이며, 양 협간의 전면에는 채광을 위한 붙박이 살창이 있다. 조용한 걸음으로 둘러 본 향교를 나서면 바로 아래 운치 있는 모습으로 자리한 밀양 손씨의 한옥이 눈에 든다.

{경남 문화유산 자료 밀양교동 손씨고가]
대문이 닿혀 들여다 보지 못한 이가옥은 1900년대 초에 지은 밀양 손씨 종가라고 한다. 일명 만석꾼 집으로 알려져 있는 교동 손씨 고가는 99칸 규모로 안채, 사랑채, 중문간채, 아래층, 사당채,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며. 건물 수도 많고, 배치 형태도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내외 생활공간을 분명하게 구분해 놓은 집이라 한다. 이곳 밀양은 나의 조부께서 6.25사변에 피난살이 한 곳이고, 당시 밀양 손씨의 도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 남다를 감회를 느끼게 된다.

[국가등록 문화유산 밀양교동 근대 가옥]
맞은 편에는 밀양교동 근대가옥이 있다. 이 건물은, 안채는 1915년에 사랑채는 1937년 건립한 건물로, 구포은행의 대지주였던 손영돈이 차남 손정식을 분가시키려고 지었다고 한다. 동서로 긴 대지에 안채를 비롯하여 7동의 건물이 안마당과 사랑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의 큰방을 중심으로 제례 공간, 수장 공간, 접대 공간, 가족 공간 등의 다양한 공간과 이에 부속된 수납공간의 발달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먼발치에서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교동을 벗어나 오늘의 목적지인 만어사와 숭진리 삼층석탑을 찾아 나선다.

[보물 제 468호 말영 숭진리 삼층석탑]
마을 한편에 서 있으며, 둘러 보아도 구체적인 사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이 곳이 옛 가리사(加利寺)가 있던 터라고 한다. 이 탑은 고려 중기 것을 추정하고 있으며, 기단 아랫부분이 묻혀 있고,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탑신부는 1·2층 몸돌이 각각 한 돌이고, 1층 지붕돌도 한 돌이지만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을 한 돌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몸돌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고, 각 지붕돌 아래는 받침이 3단씩이고, 윗면에는 1단의 낮은 괴임을 두고 있다. 떨어져 나가있던 3층 지붕돌을 올릴 당시에 3층 몸돌의 한가운데에 사리공이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좁은 마을 길을 찾아 와 보니 탑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고, 모습과 환경에 별다른 특이 점이 없음에 크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보물로 잘 보전되어 지켜지길 바라본다. 돌 물고기들을 만나러 만어사로 향한다.

[ 소원돌]
굽이 굽이 길을 올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찰로 걸어 오르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새해이기도 하고, 쉬는 날이어선지 소원돌에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지 확인해보려는 사람 들이다. 몇몇 인의 소원성취 시도를 지켜보다 이내 보물을 찾아 나선다.

[민어사 대웅전]
석탑의 뒷편에 자리한 다소 자그마한 대웅전을 올라본다.

대웅전내에서 찾은 아미타오존도는 가로121cm✕세로142cm에 보존 상태가 양호한 1880년 조성된 불화라고 한다. 정행, 정첨 2인의 화승에 의해 제작된, 19세기 후반에 유행한 아미타오존도 형식과 양식이 잘 갖추어진 수작이라 한다.

[ 삼충석탑]
석탑의 뒤편에 건물터로 보이는 널찍한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터로 여겨져, 이 석탑의 지금 위치가 원래 세워져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물 제 466호 밀양 만어사 삼층석탑]
1단의 기단 위에 올려진 3층 석탑으로,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며, 탑의 머리장식에는 보주가 얹혀 있으나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 탑의 바닥돌이 드러나 있고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천영기녑물 제 528호 밀양 만어사 암괴류]
이곳 암괴류에 대해 안내문을 통해 배워본다. 이곳에서는 공룡시대인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이 터지고 용암이 흘렀는데, 이때 화산암과 응회암이 생성되며, 지하의 마그마도 화강섬록암으로 형성되어, 이 암석 들이 융기하여 표면에 노출되어서, 십여만년의 세월에 간빙기 빙하기 간빙기를 거치며 얼었다 녹았다 하는 풍화작용으로 균열된 가운데, 주변의 흙이 쓸려 내려가 짜개진 암석들 만이 남은 것으로 이해해 본다.
건너다 보이는 곳에 미륵전이 자리한다.

[ 만어사 미륵전]
미륵전 안에는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이라 불리는 높이 5m의 자연석이 있는데, 큰 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변한 것으로 전하고,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나,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오르던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와 오던 길이 아닌 감물리로 빠지는 임도를 타본다. 비포장길에 천천이 차를 움직이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해본다. 밀양여행에서 새로이 몇개의 보물을 추가로 본 것을 감사하며, 달리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이백 스무번째 - 밀양 > 뉴스 | 세종해피뉴스
如一同行 이백 스무번째 - 밀양
교동의 향교를 찾아본다. 이 곳에는 2020년 많은 향교들과 함께 보물로 지정 보호되는 밀양향교가 자리한다. 향교는 인재를 양성하고, 공자와 성현들을 제사 지내는 곳이러서 인지, 학문을 익히
www.xn--vg1b03zi5a71m9wruja.com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如一同行 이백 스물 두번째 - 창녕2 (0) | 2026.03.03 |
|---|---|
| 如一同行 이백 스물 한번째 - 창녕 (0) | 2026.01.29 |
| 如一同行 이백 열아홉번째 -밀양 (0) | 2026.01.06 |
| 如一同行 이백 열일곱번째 - 예산 (0) | 2025.12.23 |
| 如一同行 이백 열여섯번째 - 여주 2 (1) | 202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