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열네번째- 산청

세종해피뉴스 2025. 11. 11. 21:08

 경남 산청의 단속사지의 보물 쌍탑을 찾아 길 나선다. 3번 국도를 벗어나 경호강을 건너 웅석봉을 끼고, 가을로 접어 든 고갯길을 돌고 넘어 단속사지에 이른다.

단속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창건한 사찰로, 창건 시기와 주체에  2가지 설이 있는데, 748년(경덕왕 7)에 이순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763년에 신충이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이순이 나이 50세가 되면 출가하여 절을 짓겠다고 하다가, 748년에  마침 그의 나이가 50세가 되어 조연의 작은 절을 중창하여 단속사라 하였다 하는 설과 763년에 신충이 두 친구와 관을 벗어 던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왕이 2번 부름에도 응하지 않다가 머리를 깎고, 왕을 위해  단속사를 짓고 대왕의 복을 빌겠다고 하여 왕이 허락을 받았다는 설이 라고 한다. 

 

 

 [ 단속사지]

 

공사로 인하여 주변이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탑 주변의 민가가 보이지 않고, 저 만치 뒤로 물러나 새로운 민가가 설치 된 환경이다.

 

[단속사지 주변 이전과 현재 모습] 

 

단속사지는 산청군을 대표하는 쌍탑가람의 유적지로 최근 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당지, 고려~조선시대 강당지, 회랑지, 중문지 등 중심사역의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사찰은 최치원이 머물렀고, 솔거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이 있었으며, 고려시대에 탄연이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였고, 최 씨 정권 2대 집권자인 최우의 아들 최만종이 주지로 머무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에 소속되어 17세기까지 이어졌으나 폐사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찰이다.

 

[보물 제 72호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입구에 들어서며 보이는  동쪽의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기단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져 있고,  위로 기단을 한 층 올린 후 탑신을 올리고,  네모난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탑의 좁아드는 비례감이 알맞어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갖는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며, 이는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기법으로 보고 있다. 

 

{보물 제 73호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
 
현재 보수 중인 이 탑은 2026년 11월 13일 까지의 공사기간으로 해체 보수및 보존처리 공사 중이다. 이로 인해 주변에 바닥공사와 철재빔 설치가 되어 있고 탑도 감싸져 있다. 단속사지의 두탑 중에 서쪽의 이 탑은,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동탑에 비하여 많이 부서지고 안에 봉안된 사리함이 도난당하였다고 한다. 기단에는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아랫단은 가운데에 2개씩을 두고 윗단은 1개씩 두고 있는 탑이다.  

 

2022년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산청 단속사지 당간지주]

 

탑의 공사에 의한 어수선한 분위기로 하여 당간지주를 찾아 보지 못한다.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단속사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인데, 2개 기둥 모두 윗부분이 떨어져  있던 것을 1984년에 1개를 복원하고, 1개는  정당매각 보호벽의 문주석으로 사용되던  일부를 찾아 붙여 1996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 전에도 찾는게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전체 높이는 3.73m이고 두 기둥의 간격은 50㎝로, 위·아래에는 네모 모양, 중간에는 둥근 모양의 3개의 사이구멍(간공)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시대 양식이러고 한다.

 

 [매화나무 정당매]

 

이 전에는 보지 못하였다가, 바뀐 환경 속에 단속사지 탑에서 보이는 곳에 자리한 수령 700년의 매화나무는 수고가 3.5m 나무둘레가 2.5m 인 고묵이다. 나무 둥치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매화나무의 잔가지를 보며 꽃이 핀 모양을 상상해 본다.

 

 

정당매라하며 통정공 강회백선생과 통계공 회중 형제가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수학할 때 수식한 매화나무라 한다. 통정선생의 벼슬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에 이르면서 정당매라 불리는데, 이는 원종공 하즙선생의 원정매, 남명 조식선생의 남명매와 함께 산청의 삼매로 불리운다고 한다. 매화나무 앞의 전각에는 수식기념비가 자리한다.

 

[비각안의 수식 기념비]

 

 산이 병풍처럼 둘려 쳐진 아늑한 곳에 자리한 이곳 사지를 뒤로 하며 또 다른 보물을 찾아 단성향교를 찾는다.

 

[산청 단성향교 홍살문]

단성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으로, 1127년(인종 5) 지금의 강루리 구인동에 창건되고, 조선 세종 때 다른 데로 옮겼다가 1752년(영조 28)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향교의 특성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로 보이고 있고, 향교 안에는 단성 호적장적(경남유형문화재)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외삼문]

 

향교를 들어가기 위한 문으로 경사가 있는 계단 위에 자리한다.

 

 [명륜당 건물]

 

외삼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모습이 학당부인 명륜당 인데, 보통 문쪽을 향하여 동재와 서재를 품으며 뒤에 자리하는 것이 명륜당인데,  문을 등지고 자리한다.  배치나 형태에 있어서 경남지역의 다른 향교보다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는 향교라 생각 된다. 명륜당 건물을 지나 명륜당의 모습을 보기위해서는 보루 같이 생긴 건물 밑을 통과하여야 한다.

 

 [명륜당 아래 부분]

 

[보물 제 2093호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기에도 특이하다고 느끼는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에, 공(工)자형 맞배지붕 양식으로,  누(樓), 강당(講堂), 문(門)이 통합된 독특한 건물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 건물은 1725년 중건 된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지고, 누각형식을 수용한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유래가 드문 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한다. 올라와 마당 위에 서보니 강단인 명륜당이 누각형식으로 지어져 정문을 평대문으로 처리하고, 대문의 양 옆으로 긴 행랑채를 둔 모습이 보인다.

 

 [내삼문 앞]

 

대성전으로 통하는 내삼문 앞에서 본 동재와 서재를 둔 명륜당의 모습이다. 이 또한 눈에 익지 않은 모습이라 무슨 뜻에서 이런 모습을 갖추었는지 궁금하다.

 

 [내삼문]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이를 수 있는 대성전의 내삼문안이 문묘부 이다.

  

 [내삼문 뒷편]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기둥 사이에 설치된  x자형 가새의 멋진 모습과 양 옆이 편문을  둔 모습도 특이하다. 내삼문은 앞면 7칸의 큰 규모로, 가운데 3칸은 삼문을 달고 양쪽 끝 1칸씩에는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을 달고 그 앞으로 계단을 두었다. 내삼문 안에는 대성전이 있는데, 대성전 앞 양쪽으로 양무 대신 전사청과 제기고의 역할을 하는 두 건물을 둔 점도 주목된다고 한다.

 

[대성전]  

 

이곳 대성전에는 5성과 10철, 송조6현, 한국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며,  현재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지는 잘 알려진 유명사찰이나 건물터 보다, 화려하지 않으나 무언가를 품고 전해주려 하는, 새로이 복원 되는 사지와  향교 서원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이번 가을 산청여행을 통하여 느낀다. 보다 잘 정비되고 복원 된 단속사지를 볼 것을 기대하며 귀가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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