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 석남사, 안성향교
안성을 찾아본다. 칠장사 방문시 함께 찾아보려 하다 지나친, 인기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그 존재를 알린 석남사를 찾는 길이다. 서운산자연 휴양림입구에서, 오른쪽 언덕위로 내달리면 사찰 바로 앞의 주차장에 도착한다. 맑은 하늘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석남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20년(680)에 고승 석선이 세웠고, 고려 초기 혜거국사가 넓혀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나중에 화덕이 다시 지은 역사가 오래 된 절이라 한다.

[석남사 금광루]
가람의 배치가 다소 경사가 있고 좁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인데, 주차장 정면에 보이는 오래지 않은 듯한 갈끔한 느낌의 금광루의 아래층은 다소 험하지 않은 인상의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석남사 사천왕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천왕상으로, 크기에 비해 앉은 자세로 있어 웅장함은 없지만, 발아래 악귀와 생령좌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사천왕은 원래 고대 인도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우주의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귀와 생령좌를 발로 밟아 제압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목책이 있지만 앉은 자세여서 인지 전체의 모습이 잘 보이고 있다. 다른 보물로 지정 된 사천왕상도 발아래와 전체모습이 잘 보이도록, 투명 프라스틱이나 목책사이를 넓게하여, 발아래의 악귀와 생령좌를 제압하는 모습과 사천왕상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석남사 전경]
그림같은 구조의 계단 위 끝단에는 대웅전이, 오른쪽에는 영산전이 자리하는 사찰의 오르막 길은 한옥마을 담장 같은 기와를 올린 벽으로 장식되어 있어, 드라마 촬영지로의 전경을 맘껏 뽐내고 있다.

[보물 제 823호 안성 석남사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그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불전의 명칭인데, 이곳은 500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설명에 의하면 1562년 처음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에는 소실을 면하였다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에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다포 양식인데, 뻗쳐 나온 재료의 끝이 짧고 약간 밑으로 처진 곡선을 이루고 있는, 조선 초기 건물의 기법이라고 한다.

[ 영산전 옆면]
영산전 앞에 나무의자에 앉아 세속을 내려다 보는 부처님의 시선으로, 아래의 절 입구와 먼산을 바라보니, 평안함에 안정감이 함께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석남사대웅전]
영산전 뒤의 대웅전은 임진왜란으로 불 타서 1684년에 다시 짓고, 1725년에 수리하였다고 하며, 1978년 영산전 앞에 위치한 대웅전을 높은 이곳에 이건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자연석 주초위에 둥근 기둥과 맞배지붕에, 공포는 앞 뒤에만 두고 있으며, 여러시기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공포를 앞쪽은 기둥사이에 2개를 두고 뒤쪽은 1개만 두었으며, 앞쪽의 공포는 팔작지붕에 쓰이는 수법인 45도 사선방향으로 부재를 짜 넣은 모습이 독특하다고 한다.

[영산전 옆의 쌍탑]
사찰의 독특한 계단에 걸맞게 좌우에 자리한 2미터 정도의 쌍탑은 절 아래 쪽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긴 것이라 하며, 왼쪽의 탑은 1매의 판석 지대가 기단부를 받들고 있고, 상면의 갑석은 탑신부 괴임대가 없는 평평한 판석에 감실이 있다. 오른쪽의 탑은 하층기단 갑석에 삼단의 괴임이 있고 1층 옥신에는 양우주가 새겨져 있다. 이 쌍탑은 옥신 옥개석의 조성수법과 형식으로 고려시대 후기 작품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산길로 1km 정도라고 하는데 산을 오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하여 찾아 보지 못한 이곳의 마애석불을 알아본다.

석남사 뒤 산기슭에 위치한 높이 7m, 너비 6.5m의 암벽에 새겨진 고려 시대 마애불상으로, 통일 신라 불상의 형식을 잘 이어 받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3겹 동심원의 원형 두광과 3줄의 신광 표현되고,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면서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붓다가 가르침을 펼칠 때의 손모습인 설법인으로 본다고 한다.
석남사를 벗어나며 처음 접하는 보물인 안성 향교를 찾아본다.

[ 안성향교 전경, 문화재청자료]
안성향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경으로,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방 공립 교육기관으로 유교를 가르치고, 공자와 여러 성현을 제사 지내던 곳이기도 한 교육 기능과 제사 기능을 모두 수행한 지방 공립 학교 역할을 한 곳이다. 입구처럼 사용되는 풍화루와 동재 서재와 함께 하는 교육장소 명륜당과 동무 서무와 함께 하는 제사공간의 대성전의 배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보물 제 2092호 안성향교 풍화루]
보기에도 긴 건물인, 2020년 보물로 지정된 풍화루는 누각형태의 정면 11칸, 측면 1칸의 길다란 구조로, 유식을 위한 누와 향교 출입을 위한 외문의 역할을 겸하는 문루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향교 문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풍화루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공급이 어려운 목재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면서, 효율적이고 구조적 안정성에 시각적 안정감과 조화로운 비례의 조형미까지 가진 건물이라 한다.

[풍화루 하부]
문을 통과시 입구 양쪽으로 길게 만들어진 기둥부분은, 하층 기둥에 일부 남아있는 건립 당시 기둥의 자귀질 치목 흔적이나, 17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영쌍창 등은 조선 중기 건축 기법 연구에 좋은 학술적 자료라고 한다.

[풍화루 이층]
풍화루를 지나 자리하는 명륜당 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풍화루의 모습은, 퐁화루와 동재와 서재가 이어져 ㄷ자 의 특이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언덕에 길게 자리하는 가운데, 건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륜당을 올라 구경하는 중, 이 곳을 관리하시는 분과 방명록 작성후 대담을 나누며 안성향교에 대해 알아간다. 이 곳이 국립기관인 향교이어서 문중의 소유가 많은 사립학교인 서원보다 관리 사정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닌 듯 한 느낌을 받는다. 향교와 주변의 서원과 향교에 대한 정보를 듣고 서둘러 대성전으로 오른다.


강학을 하던 공간인 명륜당 뒤를 돌아 대성전으로 향한다.

[보물제 2091호 안성향교 대성전]
이곳 대성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중엽에 재건과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하지만, 건축의 형태와 구조, 의장 등 전반에 걸쳐 건립 당시의 고식기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면에 개방된 퇴칸을 구성하고, 정면 5칸의 간살 구성에 맞배지붕의 규모가 비교적 큰 전형적인 조선시대 건물이라 한다. 특히 정면 툇보 위에서 주심도리를 감싸고 있는 승두의 사용, 서까래와 부연 및 우물마루 귀틀의 치목기법 등에 고식기법을 찾아 볼 수 있고, 대들보, 중보, 종보를 갖춘 삼중량의 지붕은 17세기 남부 지방의 건축물의 양식인데, 특이하게도 중부 지방에 있어서, 귀중한 학술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대성전 옆면과 동무와 서무]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건물로 향교에서 가장 중요하여 제일 안쪽에 자리 잡는데, 안에는 유교 성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례를 올리고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를 기리는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오늘도 여러 문화재를 통해 얻는 눈호강과 새로운 정보를 통한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정신적 안정감을 얻는 하루를 보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누구나 몸과 마음이 변하여 간다고 하는데, 곳곳에 자리한 보물들을 찾아 보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음은 무엇을 보러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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