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열한번째 - 의성

세종해피뉴스 2025. 10. 21. 21:01

- 고운사

의성으로 걸음하여 본다. 올 3월의 산불에 인한 피해로 사라진 보물에 마음이 답답하여 방문을 미루던 고운사를 찾아본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복구가 어느 정도 되어 방해가 되지 않을 듯 하여 산불피해를 복구한 양양의  낙산사를 생각하며 길을 접어드니, 가는 길에 불에 탄 최치원 문학관이 눈에 들고, 주변의 잿더미가 된 소나무 숲, 먼 공제선에 잎을 달지 않은 불탄 나무가지가 주는 참혹함과  섬뜻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드문 드문 초록이 섞여 보이는 피해를 면한 지역과 재생하는 자연을 보게 되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 진다. 의성 고운사는  681년(신라 신문왕 원년) 신라시대 승려인 의상이 창건하여 이름을 고운사(高雲寺)라고 하였는데. 그후 최치원이 여지, 여사 두 승려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짓고 본인의 자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며. 이후 도선이 약사여래불과 석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일주문]

 

 주차장에서 고운사로 오르는 길에 반갑게도 일주문과 천왕문은 건재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 때 사명당 승군의 병참기지 역할과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 거점인 곳이며, 국립공원 소재 사찰 중 등산객들에게 입장료나 주차료를 받지 않은 복 받을 사찰인데 산불을 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었다. 예전의 모습을 기억해 보며 남아 있는 것들과 소실된 문화재를 둘러보려 한다  사찰로 들어서니 화재의 참혹함을 어느 정도는 수습한 듯 하나, 아직 복구되지 않은 모습이 남아있다. 

 

[고운사]

 

 화재에 대비하여 대웅전 내의 탱화나 불상, 고서, 현판들은 의성 조문국박물관 수장고로 전날에 이동시켰다 하지만, 화재로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을 비롯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 종각, 우화루, 행사채, 수월암, 백련암 공양간, 일주문, 숭가대, 템플관 등도 소실되고, 대웅보전을 비롯해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조실채, 고금당선원, 고불전, 사천왕문, 해우소, 승가대 등은 불길 속에서 살아 남았다고 한다.

  

[가운루가 있던 자리]

 

이전의 건물이 사라진 곳에 석축과 석가래 그리고 지대석 만이 자리하고 있다. 글을 남기며 이내 옛 모습이 잘 떠오르지는 않아 오래전 방문했던 기록을 찾아 사라진 보물을 되새겨 본다.

 

[화재전 가운루]

 

[보물  의성 고운사 가운루]

 

 최근 2024년 보물로 지정되고  얼마되지 않아 소실된 가운루의 건립 시기는 문헌으로 1668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 형식을 갖춘 사찰 누각으로 파련형 대공, 소매걷이형 창방의 결구형태, 설주를 둔 창호, 익공의 형태 등을 비롯한 다수의 부재에서 조선 중·후기의 건축적 양식이 잘 보여 지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가운루는 계곡의 양안을 가로 지른 사찰 누각 중 가장 큰 규모이고, 계곡으로 인한 지형의 고저차를 기둥 높낮이로 해결하는 수법과 넓은 주칸을 해결하는 구조 형식 등은 독특한 구조 형태 였다고 한다.

 

[가운루의 모습]

 

 지금은 사라진 가운루 인접한  곳에 자리했던 종각의 범종에서, 당시 화재때의 열기를 느끼게 하는 금 간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재현장]

 

 화재로 인한 목재의 소실로 내려 앉은 종각에는 떨어져 깨어진 기와들이 쌓여 있다.

 

[화재전의 종각]

 

사라진 종각에 자리한 기물들이 사진으로 나마 그 모습을 회상하게 하고 있다.

 

[화를 면한 대웅보전]

 

 단위에 자리한 대웅보전은 화마가 비켜가서 온전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화재 이후의 복원을 위한 많은 불사를 알리는 게시판이 사찰의 복원 불사를 알리고 있다.

 

[대웅보전 안]

 

[나한전]

 

[명부전]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은 조선 현종 때인 1670년에 명부전을 지으면서 제작된 목조 불상으로 조선 후기의 조각승 단응(端應)의 제작이라고 전한다. 

대웅전에 이르기 전의 단 아래의 불탄 자리가 눈에 든다. 자그만하게 독특한 건물이 담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폐허로 보이지 않고 있다.

 

[연수전 화재후 현장]

 

 집터에는 축대와 담장만이 남아 을씨년스럽다. 이전에 화려하게 그 모습을 뽐내던 연수전은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보물 제 2078호 의성 고운사 연수전]

 

 2020 년에 보물로 지정된 이 건물은 조선 영조때 (1774년)에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여 1887년 극락전등 다른 전각과 중수 하였다 한다. 국왕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는 건축물로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였다 하는데 지금은 볼 수 가 없게 됐다.

  

[연수전]

 

 예전에 놀라운 모습에 한동안 둘러보던 연수전은 단청과 벽화가 수려한 금단청으로 둘러진 건물로, 이 곳은 만세문 현판을 가진 솟을 대문에 사방에 담을 두르고, 가구식 기단에 겹처마 형식의 팔작지붕으로, 숭유 억불시대에 사찰내에 배치된 왕실과 관련된 이채로운 건물이었다 한다. 모양과 색체, 용도가 특이함에 매료되었던 건물이라 아쉬워 하며 또 다른 보물이 자리하였던 약사전 터를 찾는다.

 

[화재전 약사전이 있던 곳]

 

 대웅보전 옆에 자리한 이곳에는 불길이 날아들었나 보다.

 

[약사전]

 

 보물인 석조여래 좌상이 모셔졌던 약사전으로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약사전의 내부 모습]

 

 오래전의 약사전의 내부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회상한다.

 

[보물 제 256호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광배를 갖춘 9세기 불상으로,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네모난 얼굴이며 눈·코·입이 작고, 허리가 잘록한 불안정한 자세로,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땅을가르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놓았다. 배 모양의 광배는 연꽃과 덩굴무늬 등을,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졌는데, 상대석은 연꽃을 위로 떠 받은 모양, 8각의 중대석은 모서리에 기둥 장식이고, 하대석은 연꽃잎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표현되고 있다. 석조 여래좌상의 근황이 궁금하여  스님께 물으니 아직 피남처인 조문국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데 전각이 보수되면 모셔올 것이라 답한다. 빠른 약사전의 복원을 통해 원자리로 귀환하기를 기원해 본다.
 
[우화루 벽화]
 
 
화재로 소실된 우화우의 벽화는 청룡과 호랑이가 한쪽 벽면에 자리하였 었는데, 어느 방향을 가서 보아도 호랑이가 눈을 마주 치며 노려본다 하여 이목을 받았던 벽화이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고운사 삼층석탑 ]

 

 고운사 대웅전 남쪽의 산 중턱의 화마를 피한 나한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 무늬가,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탑신은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고, 지붕돌은 경사가 약하며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도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과  복발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석재가 많이 닳아있고 특히 아래층 기단이 심하며, 줄어든 규모나 지붕돌의 조각양식 등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낙산사 이 후 다시 보는 사찰의 화재를 접하며 산불의 크기와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산불에 취약한 나무로 지어진 사찰의 전각들은 전소라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 낸 하회마을 이나 만휴정 처럼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에 대한 산불예방은 물론 만약에 대비한 화재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산불은 불에 의한 더운 공기의 발생과 이동, 바람의 영향으로 골과 골을 날아가며 번지는 것이라 본다. 혹시 이러한 외진 사찰 같은 곳의 보전하여야 할 문화재는 물이나 방화포에 의한 보호에 더하여, 불길에 생명을 불어 넣는 바람의 흐름을 잘 이용하며, 이동이 가능한 강풍을 발생하는 기구를 사용하여 불길의 방향을 바꾸거나 접근 못하게 하여 불의 접근을 막는 것은 안됄까? 문화재 주변의 화재에 대비하여 접근을 막는 바람의 방향과 설치장소를 AI를 이용 알아보고 대비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통한 시스탬은 가능하지 않을까? 강풍에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면 진압에 도움 되지 않을까? 탑을 오르는 계단에 주저 앉아 불 탄 현장을 보며 생각해 본다. 오랜시간 보전 되고, 많은 사람이 아끼고 지키던 것이 일 순간에 잿더미가 된 현장을 보고 돌아서 나오며, 새로이 불사로 복원하면 옛 모습은 그대로는 아니라도, 임진왜란이후 다시 지어져 우리에게 옛 역사를 전하듯, 문화유산이 사라지지 않고 그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 지키지 못한 건물을 다시 지어서 새건물의 보물지정이 해제된다 해도 후손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지나치는 최치원 문학관을 보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여러 생각을 해보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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