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달사지

대크길과 잘 가꾸어진 잔디밭 조성으로, 사지내의 문화유산을 둘러 보기 쉽고 , 무념의 마음으로 산보 겸으로 둘러보기 알맞은 장소와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시야를 사로 잡는 탑비를 찾아본다.

[보물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가까이서 보니 탁 트인 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커다란 탑비이다. 원종은 이름이 찬유로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 90세(승랍 69세)로 입적하는데, 고려 광종이 대사가 입적 후, 시호를 ‘원종’, 탑호를 ‘혜진’이라 내리고, 그 를 기리고, 살아 생전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한다. 받침돌의 거북 머리모습과 발의 모습이 역동 적이고, 등에는 3중의 6각형 문양에, 소용돌이치는 구름 문양 위에 연꽃이 장식된 비좌를 가지고 있다. 머릿돌은 연꽃 받침대 위에 구름과 용을 새기고, 사각형 구획에 글자를 넣었다. 광종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승탑과 한 쌍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1915년 비몸이 넘어지면서 여덟조각으로 깨어져,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가 현재는 여주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으며, 현재의 비문은 복제 하여 설치 한 것이라 한다. 조금 지나친 곳에 석조대좌가 자리 한다.



[ 거북 비 받침]
탑비 위에, 옆에 자리한 크기가 작은 탑비를 받치던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소 망실된 거북모양 받침대가 자리한다. 탑비 뒤의 산으로 들어서면 승탑과 탑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 따로 자리한다. 계단으로 정리 된 다소 경사진 언덕을 오르며 먼저 국보인 승탑을 찾아본다.


[보물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탑비와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는 탑은 3단의 기단 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린,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한 탑으로,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새기고, 아래 받침돌도 네모난 형태이다. 가운데 받침돌은 윗부분에는 1줄로 8각의 띠를 두르고, 밑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으며, 거북이가 머리를 오른쪽을 향하고, 돌아가면서 4마리의 용이 구름 속을 날고 있다. 윗 받침돌에는 연꽃이 새겨지고, 탑신은 4면에는 문모양이, 다른 4면은 사천왕입상이 새겨져 있다. 길을 따라 내려 온 사지의 입구에 이곳을 발굴시 나온 석재들이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고달사지 출토 기단석]
이곳에서 규모에 비해 많지 않은 석조물을 보니 세월 속에 사람손을 많이 타 석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 나온 보물 중의 하나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는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을 알아본다.

여느 사지를 지키는 것은 석탑과 석등인데, 이 곳에는 궁금하게 석탑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궁금증을 가지고 여주를 벗어나기 전, 2007년 보물로 지정된 영릉의 재실을 찾아본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 두 곳이 한자 이름이 틀리게 하며 이웃하고 있다.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는데,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고 한다.

재실의 배치도를 통하여 건물의 쓰임새에 관해 알아본다.

[재실의 재빙]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자리를 잡은 후 능호를 익릉(翼陵)으로 하였다가 영릉으로 고치고, 능을 조성할 때 능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는데, 이후 167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여주 효종대왕릉 (영릉) 회양목]
키작은 나무인 회양목이 이렇게 까지 크는가 싶다. 이처럼 크게 자란 회양목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인 가치가 큰 노거수 일뿐만 아니라, 1673년에 조성한 효종대왕릉(영릉) 재실에서 300여 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서 그 유래와 역사성이 매우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재실 공간 내에 회양목과 향나무 그리고 재실 건축 연대보다 더 오래된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재실의 역사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릉릐 재실]
여주의 여행을 마치며, 사지를 통해 비슷하지만 색다름을 느끼며, 그 다양성과 숨은 이야기에 흥미가 샘 솟는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그래도 오늘 본 것을 혼자 만족하며 흐믓한 것을 보면 범인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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