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열번째 - 보은

세종해피뉴스 2025. 10. 15. 00:14

보은 찾아본다. 이곳 보은을 대표하는 속리산과 법주사를 제외하면 어떠한 문화재가 있을까, 궁금해 하며 요즘 난공불락의 성으로 핫한 삼년산성안의 문화유산을 찾아 길을 나서본다.  보은은 마한 → 백제 → 고구려 → 백제 → 고구려 → 신라 → 후백제 → 통일신라 → 고려 → 조선으로 ,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만도 주인이 150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바뀔 정도의 3국의 전략요충지였다고 한다. 신라가 백제의 동의 하에 삼년산성을 축조하여 고구려에 대항하는 최전방 요새로 사용, 고구려에게 멸망위기에 몰린 백제를 지원하나, 나제동맹이 결렬되고는 신라의 백제에 대한 최전방 구실을 하였다 한다. 신라 초기 보은군의 이름이 삼년산군(三年山郡)이었고, 경덕왕때는 삼년군으로, 9주 5소경 중 상주에 속해 행정구역 상 지금의 경상도에 속한 지방이었다고 한다. 이후 후삼국에는 후백제의 영역으로 귀속되기도 하며, 고려의 왕건이 삼년산성 근처에서 후백제에게 대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고려 시대  경상도의 보령(保齡)이라고 불리다, 조선들어 충청도로 옮겨지며 충남 보령과 혼동이 생겨 다시 보은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렇듯 삼년산성은 보은에서 중요한 사적지라 찾기를 잘하였다고 생각한다. 

회인을 지나며 이곳에 자리한 회인향교를 찾아본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회인향교]

 

 나라의 교육기관인 향교의 존재로 회인에 당시로는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세종때 세워진 후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보은향교와 합하였다가 광해군 3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성전·명륜당·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공부하는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둔 전학후묘의 배치로,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1층이 모두 개방 된 누문 형식의 특이한 건물이다. 『교생초안』·『향교유계안』 등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학문을 연마하는강당인 명륜당 모습, 학생들의 기숙 공간이 보이지 않고 명륜당이 이층 누각으로 바로 길에 접해 있슴이 특이한 구조 이다.

 

[회인 향교 대성전]

 

 향교 뒷편의 언덕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자리한다. 이제 향교에는 교육은 없이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자리를 옯겨 보은으로 들어서며 보은 동헌을 찾아본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동헌]

 

 사방이 터진 곳에 아헌이라고 불리는 동헌만이 덩그란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 부속건물이나 담장이 없어 다소 낯설지만, 조선시대에는 감사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는 관청의 중심건물로,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순조 때 고친 것으로 전한다. 한때 보은경찰서로 사용되어, 내부구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며, 17세기 말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1층의 팔작지붕집이다. 전면 1칸은 모두 마루이고 오른쪽 4칸은 대청이며, 왼쪽 3칸은 온돌방이며, 대청 중 동쪽 1칸과 후면을 높게 해서 누마루를 만들었는데, 조선 후기 동헌의 한 특징이라한다. 

 

 

동헌의 측면과 후면을 보기위해 건물을 한바퀴 돌아본다. 커다란 건물이 당시의 보은 수령의 권세를 느끼게 한다. 회인향교에서 얻은 정보로 보은향교를 찾아본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조선 세종 때 처음 세워지고,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짓고 보수하고,  지금의 건물들은 18세기 이후에 지은 것이라 한다.  『순암집』등의 문집과 『공부자성적도』 등의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보은향교 명휸당]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은 상현서원의 강당을 옮겨지은 것이라 한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보은 향교 대성전]

 

 사당인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 삼년 산성으로 향한다.

 

[사적 보은 삼년산성]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 마주친 성을 밖에서 본 모습이 튼실하게 보인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왕 8년(486)에 고쳐진, 5세기 후반 신라의 성 쌓는 기술을 대표하는 돌로 쌓은 산성이라 한다.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산성 북문지의 문터]

 

 가장 유명한 것은 성문구조라고 한다.   2013년 2차 발굴조사로 서문만 현문식이 아닌 성벽이 안쪽으로 휘어진 모습에, 문앞이 낭떠라지인 곳에 치성을 2개 배치한 모양이고, 동문, 남문, 북문은 치성을 설치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현문식이라고 밝혀진다. 서문만 현문식이 아닌 이유는 방어수단이 충분하고, 물자 보급 등의 이유로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성문을 하나는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성의 둘레가 약 1,800m이고 성벽은 납작한 돌을 이용해서 한 층은 가로 쌓기를 하고, 한 층은 세로 쌓기를 하여 튼튼하며,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다. 남쪽과 북쪽은 안팎을 모두 돌을 이용하여 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성내에는 연못터와 우물터가 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조선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발견으로 어 성을 오랫동안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성안에 자리한 보은사를 찾는다. 이곳 보은사에 유형 문화재가 있어 이를 보려 함이다

 

[보은사]

 

보은사는 삼년산성 북문지 안쪽에  위치한 사찰로 1970년 간행된 보은군지에 의하면 1902년 박경하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스님이 없는 사찰로 그 기능은 하지만, 소유가 보은군이어서 이곳에 관리인이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주인 없는 빈집 같은 느낌이나 그래도 사찰을 방문하는 불자들이 참배를 할 수 있는 사찰이다.

보은사터는 성재절터로도 불리고 있어서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보은사가 자리한 이 부근이 통일신라시대 행궁터로 추정하기도 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보은사 지장시왕도]

 

 비꺽이는 법당안에 자리하는 지장시왕도는 금호당과 만총 법인이 제작한 것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3열의 권속으로 구성되며, 본존은 신광을 두르고, 왼손에 투명보주를 쥐고 있는, 유희좌의 모습이다. 협시로는 도명존자와 관모의 무독귀왕을 비롯, 제1·2열에 삽왕이  시위하고 있으며, 제3열에는 동자, 동녀, 판관, 직부사자, 우두나찰, 마두나찰등이 묘사되어 있다. 관리인의 설명으로 이 작품은  예천 용문사 지장보살을(1813)를 본 따 그려서, 발모양이나 구도가 닮았다고 한다. 이 불화는 화곡당 림성이 단독으로 시주한 것으로, 1896∼1897년에 걸친 법주사에서 대규모로 일괄 이루어진 불화불사의 하나로, 제작시기가 명확하고 법주사 본사와 복천암, 상환암, 여적암 등 산내 말사 시주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등 지역 불화제작의 기법과 양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법당을 나와 유형문화유산인 석조여래 입상이 자리한 미륵전을 찾는다. 이전에는 법당에 모셔졌던 석조여래 입상을 모시고저, 새로이 지은 전각으로 한글로 붙여진 현판이 특이 하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보은사 석조여래입상]

 

어딘가 조화 롭지 못한 석조 여래입상은 일제강점기 보은읍 대야리 미륵댕이 산에서 옮겨온 것으로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한다.  목과 허리부분이 훼손되어  3부분을 시멘트로 접합한 상태로, 어깨이하의 불신은 본래의 것으로, 조성당시의 조각과 불상양식의 보전상태가 양호하다. 불상의 수인은 전륜법인으로 보이는, 두 손의 3, 4번째 손가락을 접고 있다. 양감있는 옷 주름선에, 목에는 三道가 남아있고, 동체와 상호의 조각기법이  다른데, 조성 당시의 상호가 마멸된 상태에서 새로운 불두를 제작하여 결합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불두를 재사용하기 위해 다듬는 과정에서 얼굴이 작아지고 상호의 앞뒷면이 평평해져, 조선시대 민불과 같은 형태로 변모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미륵전 앞의 용트림 소나무]

 

 이곳 관리인이 보여주는 용트림 소나무는 나선구조로 빙빙 돌며 올라가는 수피의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 이 곳 삼년 산성을 한바퀴 둘러보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 하루이며, 조금만 움직이면 법주사를 들려 볼 수 있으나, 그 곳에 자리하는 너무 많은 보물이 주는 중압감과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맘을 접는다. 오늘의 가벼운 나들이에서 삼년산성을  한바퀴  돌아 보지 못함이 아쉽기도 하지만, 시간과 정비 된 몸으로 다시 찾을 핑계로 삼으며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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