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아홉번째 - 김제

세종해피뉴스 2025. 10. 6. 19:31

- 귀신사

김제로 향해 본다. 근간에 개인적인 일로 고교시절의 학우 들과 수학여행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쉽고 미안한 시간이 되고, 여행도 잠시 멈추게 되었다.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김제엔 유명한 금산사가 있으나,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인근에 자리한 귀신사를 찾아 보려 한다. 금산사와 거의 같은 방향으로 가던 길을 따라 가다 도착한 귀신사 주차장과 주변이 새로이 정비 되어 이전의 흙 길에서 느끼는 아늑하고 고즈녁한 감은 없어졌으나 한결 깔끔하여 보인다.  

이 곳에는 보물로 지정 된 대적광전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그리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 부도, 석수(石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귀신사는 모악산에 자리하며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 시 명칭은 국신사(國信寺)로 화엄십찰 중 하나이었으며, 귀신사로 개명된 시기와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9세기 초에 귀신사로 불렸다 한다. 고려시대에 원명국사가 중창하여 번성하다가, 15세기 중후반에는 폐쇄되며, 16세기 중반 사세를 회복하나, 임난에 폐허로 되었다가 17세기에 중창하였다고 한다. 2002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시 된 “귀신사(鬼神寺)” 명문기와 조각으로  9세기 초에는 귀신사로 알려졌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보물 제 826호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에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대적광전 뒷면]

 

 뒷면은 공포가 양 옆에 하나씩 빠져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혼자 뿌듯함을 느껴본다.

 

[보물 제 1516호  김제 귀신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대덕광전 안의 전면 양 옆의 벽면과 법당 안에 자리한 기둥으로 전면에서 삼불상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가 쉽지 않다.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비로자나불 삼존상은 본존불로 지권인의 자세의 비로자나불이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좌우로 협시한 삼불형식이다. 귀신사 영산전 불상의 「복장발원문」과 귀신사 사적을 통해 덕기스님이 1624년)에 귀신사 재건 당시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먼저 짓고 곧 불상을 안치하였다는 사실로, 대적광전의 소조삼불좌상은 1624년에서, 나한전에 삼세불상이 봉안된 1633년 사이에 제작되어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삼불좌상은 규모가 크고, 긴 장신형의 불신이 인자하고 품위 있는 형태로, 지권인의 표현과 긴 장신형 불상비례는 명초에 유행하던 표현이어 명대 조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어, 이 삼불좌상은 17세기 전반, 명대의 조각양식을 수용하며 이를 조선불상에 정착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 낸 점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유난히 밝은 모습으로 대하는 듯한 삼존불을 떠나, 대적광전의 오른쪽의 명부전을 찾는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김제 귀신사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 일괄]

귀신사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등은 영산전 불상발원문에 의해서 조성연대도 알 수 있으며, 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을 비롯하여 명부권속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후기 명부전의 존상배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한다. 아울러 본존인 지장보살이 흔치 않은 두건지장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명부전을 나서서 대적광전 뒤편 언덕 둔턱을 오르면 탑과 석수가 있다.
 
 
백제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탑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형상의 석수를 찾는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귀신사석탑]

 
 눈에 익어 보이는 이 탑은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만든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이 조각되어 있고,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네 귀퉁이만 살짝 들려 있는 모양에,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이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 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귀신사석수]

 
 무언가 궁금하게 하는 석수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이 놓여 있는데, 남서쪽의 솔개봉을 향하여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라 하며,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아랫부분은 대나무 같은 마디를 가지고 있다. 이 에 관해 두가지의 설이 있는데,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이 터가 좋은 형상이 아니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 뿐이므로,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다. 만든 시기도 확실히 모르지먄, 비슷한 예가 없는 독특한 모습의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라고 한다.
 

언덕을 내려와 대적광전 옆의 영산전으로 향하면 그곳에도  유형문화 유산인 소조석가 삼존상과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김제 귀신사 영산전 소조석가삼존상과 나한상 일괄]

 
 17세기의 대표적 조각승인 인균의 작품으로, 작품의 상태 또한 양호할 뿐 아니라, 전해오는 조성발원문에 언급된 25구의 불상이 한 구도 유실되지 않고 잘 남아있어 17세기 불상조각의 귀중한 문화재라 한다.

영산전을 끝으로 사찰을 나서며 이곳의 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부도의 위치를 스님으로부터 듣고 찾아본다. 내려다 보이는 오른쪽 앞마을의 다리를 건너 있다는 안내 덕분에, 공터에 우뚝 서 있는 처음 맞이 하는 유물을 접하게 된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귀신사부도]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부도에서 보이는 사찰은 족히 백미터도 넘어 보이고, 주변이 잔디로 잘 가꾸어진 환경에 잘 보전된 부도는 그 주인공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귀신사 전성기에는 이곳까지도 절의 경내가 아니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고 한다.  높이 2.5로,  8각형을 기본으로 연꽃이 조각된 기단부에 팔각형 몸체는 여러겹의 연꽃을 두른 윗받침돌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도 팔각이며 머리장식에 구슬형 돌이 올려져 있다. 각 부재의 비례가 맞지 않아 안정감이 없고 조각 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무엇이든 모으려 하고, 없는 것에 더 애착을 느끼는 수집가의 마음이 이러한지, 기존에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것에 새로움을 더하는 재미 못지 않게, 못 본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작용하여서 인지, 귀신사 부도를 새로이 접하개 된 것에 대한 기뿜이 이번 여행의 기쁨을 배가 시키고 있다. 돌아나오는 길 금산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보며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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