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이백 일곱번째 - 괴산

세종해피뉴스 2025. 9. 9. 20:50

- 각연사

 

괴산을 찾아본다. 오늘은 약간의 산행을 각오하고 보개산 각연사를 찾는 길이다. 사찰은 몇 번인가의 방문으로 익숙하나, 이곳의  산에 자리한 보물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산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대사가 세웠다고 하나, 〈각연사대웅전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며, 비로전 대들보에서 발견된 묵서에는 고려 혜종(943∼945)년간에 중수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찰의 설화는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때 유일이 절을 지었을 당시, 현재의 칠성면 근처에 자리를 잡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까마귀 떼가 나타나서 대패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날아가 작은 연못에 떨어뜨려, 유일이 물 속을 들여다 보니 불상 하나가 있었음으로, 깨달음을 얻어 못을 메우고 절을 지어 각연사라 하였다 한다.

  

[보개산 각연사 일주문]

 

사찰을 방문 시 일주문의 사찰 이름 앞에 그 곳의 지명이 아닌 사찰이 속한 산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같은 이름의 사찰을 구별하고, 산이 사찰의 안정적인 기반이 되며, 산의 숭배와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은 전통에 따르는 것이라 한다.

 

[각연사]

 

각연사에 당도하는 길의 풍경이 눈에 익다라는 생각을 하며, 각연사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서 오늘 만나고자 하는 통일대사의 탑비와 승탑을 찾아간다.  외길이기는 하나 산 입구에 가는 이정표 하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며칠전 대전의 계족산 황토길을 오르며 산모기에 괴로웠던 생각으로, 미리 준비한 모기 퇴치제를 모자에 뿌려 눌러쓰고, 몸에 스프레이로 약을 뿌리고 길을 나서본다. 경험에서 나오는 위치가 아니라, 오르는 길은 사찰의 앞산을 향하고 있다. 

 

[이정표]

 

계곡을 건너고 산을 오르니 보이는 이정표에 칠보산 정상과 환묵재의 갈림길이 나온다. 멀지 않은 곳에 통일대사 탑비가 있슴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재촉하여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통일대사탑비 앞에 선다.

 

[보물 제 1295호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고려 전기의  중국유학을 다녀 온 승려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로,  대사가 입적하자 고려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문장가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한다.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형으로,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며 나타나는 양식상의 특징이라 한다. 비 몸의  글씨는 해서체로, 원래 새겨진 3,500자 가운데 현재는 260자 정도만이 보이고, 머릿돌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이 머리장식인 보주를 받들고 있으며,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 중의 하나로, 고려 광종 9년(958)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머리돌에 집을 지어 놓은 말벌집의 존재로 조심스럽게 탑을 돌고,  여정을 마치며 올려보니 빈 벌집 인 갓 같던 벌집 주변에 몇 마리가 보인다. 누군가 제거해야 해야 하는 데 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침 이곳을 등반하는 이를 통해 다음 여정지인 탑까지 가는 길을 물으니, 거리는 1.2키로미터 이지만 가파르고 쉽지 않은, 그리고 시간도 걸리는 길이라 한다. 쉽게 생각하고 길을 올라 오느라 옷이 다 젖고 지쳐 보이는 내게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 같아 후일을 기약하며, 힘을 비축하여 길을 돌아 내려온다. 오늘 보지 못한 탑은 일정 잡아 다시 도전하기로 한다.

 

[보물 제 1370호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문화유산청 자료
 
무너져 있던 것을 1965년 발견, 흩어진 부재를 찾아 모아, 1982년  괴산군에서 복원하였다 한다. 대부분의 석조탑은 사찰의 한쪽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탑비가 인근에 자리하는데, 이 탑은 탑비와 멀리 떨어져 산 중턱에 건립되어 있다. 팔각원당형 석조탑으로, 높이 2.3m 이며, 무너져 있던 것 임에도 불구하고 각 부를 구성하는 부재 또한 완전하다고 한다. 탑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9세기 이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산 정상부에 석탑을 건립하는 것과 같은 사상적 배경으로 사찰이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석조귀부를 찾는 것으로 통일대사탑 대신의 만족감을 위해 찾아 본다. 거리 표지가 없어 망설이다가, 내를 건너 숲길로 들어선다. 사람이 자주 오가지 않은 길을 풀을 헤치며,  뱀을 신경쓰며 걷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풀밭에 자리 잡고 있는 귀부를 발견한다. 가는 길이 멀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기면서 귀부를 맞이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괴산 각연사 석조귀부]

 
 머리가 보이지 않고  비신과 이수는 없이 귀부만 남아 있다. 귀부는 방형의 받침석과 한 돌로 조각되고,  4개의 다리는 생동감 있고, 발톱은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목과 귀두는 따로 만들어 끼우도록 한 것이나 유실되었고 한다. 목과 등이 연결되는 부분에는 연꽃무늬 모양이, 비좌는 장방형에 화려한 구름무늬와 안상이 표현되고,  힘차고 생동감 넘치는 신체와 귀갑문의 형태 및 귀갑문 안의 꽃무늬, 비좌의 구름무늬와 안상, 귀두를 따로 만들어 끼운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조성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 귀부 옆면과 뒷면]

 

등면의 귀갑문은 좌우 대칭으로 표현되었는데 4각형과 6각형의 변형된 형태로, 귀갑문 안에는 타원형이 변형된 꽃무늬를 장식되어 있다. 비신이 유실되어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어 어느 선사의 탑비인지 사적비인지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없으나, 귀부의 각부 조각기법이 우수한 수작으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산을 내려와 사찰에 도착하여 비로전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괴산 각연사 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있다. 비로전은 낮은 기단 위에 정남향이며, 주춧돌은 신라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라 한다. 가운데만 약간 굵은 둥근 기둥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옆면에 박공이 있는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조선후기 건물이라 한다.

 

[비로전 옆면]

 

 비로전 안의 보물을 접견한다.

 

[보물 제 433호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대좌와 광배가 모두 갖춰 진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오른손의 부처 세계와 왼손의 인간 세계가 하나임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듯 가운데가 들어가 있고, 불상의 머리 위쪽과 불상 양쪽으로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으며, 안쪽에서부터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라 한다. 발길을 옮겨 대웅전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괴산 각연사 대웅전]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풍판이 있는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 맞배지붕의 다포계 양식의 조선후기 건물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빗살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고, 옆면 앞쪽에도 빗살문을 달았다. 

 

[대웅전 옆면]

 
 풍판이 있는 옆면모습. 
 

[대웅전 삼존불]

내부에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장엄한 닫집이 있고,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과 관세음 보살이 협시불로 자리한다.
 

[ 범종루]

 

 대웅전 앞마당 한편에  범종, 운판, 목어, 홍고를 갖춘 범종루가 자리한다.  땀으로 젖은 옷 상태로 사찰을 벗어난다. 이 전에 오르다 중도 포기하고 돌아 섰던 탑비를 보게 된 것을 나름 기쁨으로 샹각해 본다. 함께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탑은 하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무작정 길을 나서고 발길 닿는데로 찾다가, 미쳐 못 본 것은 다음에 보면 되고, 그러다 보면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나름의 여행 스타일로 같은 장소를 몇번이고 방문하여야 하는 미련함 때문에, 이제는 가는 곳이 그리 낯 설지 않은 곳도 많지만 변화된 모습도 많이 보게된다. 이를 통해 다시 방문해야 할 핑계거리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이제는 서서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곳에 대한 도전을 해보려는 욕심도 내보며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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