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일흔 여섯번째 - 영월

세종해피뉴스 2024. 11. 30. 00:58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초겨울에 들어서도 날씨는 그리 춥지 않음을 기뻐하면서, 그대로 돌아가도 늦은 저녁이 되는 시간이나,  차로 소금강의 계곡을 끼고 올라 진고개로 넘으며 주변에 단풍구경에 매료된다. 진부에서 오래 전 맛 본 산채비빕을 다시 찾아 맛보는 행복감과 이전 같지 않게 길이 한적함을 느끼며,  굽이 도는 산길을 즐기다 보니 영월에 당도 한다. 애초에 계획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월을 오랜 만에 지나며 최근 이곳에서 보물로 지정 된 건물에 흥미를 갖고 찾아 본다. 이 곳의 새로운 자랑거리인 보물로 지정된 창절사를 찾아 영월 읍내로 들어선다. 영월 읍사무소 인근에 자리한 창절사는 주차장 시설도 되어 있고, 이날은 도로 단장도 하여 서원 앞은 다소 어수선 하다.

 

[창절서원]

 

영월에 두번째로 보물로 지정된 창절사는 창절서원 뒤편에 자리한다.  창절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존치되었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서 현재까지 이어져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서원에는 창절사, 강당, 동재, 서재 등이 있다. 

 

[창절서원 강당]

 

강당은 정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배견루]

 

외삼문인 배견루는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이 여덟 팔자인 팔작지붕이다.

 

 

위패를 모신 열분을 나타내는 충절목인 소나무 10그루가 담 밖에 심어지고, 각각에 표지석을 설치하고 있다.

 

[보물 영월 창절사]

 

창절서원 뒷편에 자리한 창절사는 2022.11.25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창절사는 처음 숙종 11년 (1685년) 장릉 경내에 감사 홍만종과 군수 조이한이 도내에 통문을 돌려 기금을 모아, 육신사를 세워 사육신과 엄홍도의 위패를 모셨다가, 단종이 복위 됨에 따라 숙종 31년(1705년) 현 위치로 옮겨 지으며, 1709년 창절이라는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정조 15년 사우 2칸을 늘려 생육신 김시습, 남효온의 위패를 모시고 순조 28년 수절 충신 박심문을 추배하여 현재 열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영월 창절사는 인근에 위치한 장릉과 함께 영월지역에서 단종과 관련 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건립 되었으며, 건축물에 남아 있는 익공의 형태 등 건축 구조적 특징이 18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정면 5칸 옆면 2칸의 건물로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주변을 둘러본다.  

 

[창절사 뒷편]

 

벽면의 돌 쌓음이 현대적인 감각마저 느끼게 하지만, 담 넘어로 보이는 방풍널이 오랜 풍화로 퇴색되어 연륜을 알게 하지만 보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돌아갈 길이 만만치 않아 바쁘게 영월을 뜨고자 하다 보니 장릉을 지나칠 수 없어 들려본다. 방문하여 본지 오래 된 장릉은 그동안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에 지정되어 관심을 가져 본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의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숙종 24년(1698)에 복위되어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한다.

 

[영월 장릉]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 서면서  2002년 개관한 장릉 단종 역사관을 둘러본다.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한 전시관인 이곳에는 단종의 초상과,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까지의 일대기가 모형과 자료로 전시되어 있으며, 사육신·생육신 위패와 관련자료, 정순왕후 관련자료, 조선의 형벌기구와 궁중의상, 세종실록·단종실록·단종애사 등의 서적 등이 있으며, 영상실에서는 단종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영상물이 상영된다.

 

[박충원 낙충비각]

 

길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1973년 세워진, 중종36년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단종의 묘를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치제한 낙촌 박충원의 충심을 기리는 비인 낙충비각이 자리한다. 일화로는 부임할 당시에 영월의 관리 들이 돌연사 하는 일이 많아 모두들 이를 노산군 때문이라 하여, 박충원이 노산의 묘에 제사를 지내니 이후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 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재실]

 

재실 앞의 단풍과 청사초롱이 장릉의 고즈녁한 저녁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엄홍도 정려각]

 

정려(旌閭)의 정(旌)은 임금이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우거나 신임의 증표로서 내리는 깃발을 말하며, 려(閭)는 마을 입구나 길에 세운 문을 의미하는데, 이는 국가시책에 부합하는 백성이나 신하에 대해 나라에서 표창의 증표로 하사하는 오늘날의 훈장과 같은 것이라 한다. 단종이 노산국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아 세상을 떠나자, 후환으로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못하는데, 영월 호장인 엄홍도가 관을 마련하고 장사를 지내려 내려진 것으로, 영조때 엄종한의 상언으로 청주에 세웠다가, 영조 35년 어명으로 고향인 영월로 옮겼으며, 1901년 정려각을 수축하였다 한다. 엄홍도는 숙종 때 공조참의, 뒤에 다시 공조판서에 증직되며, 사육신과 함께 영원의 창절사에 배향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우승지 신상을 보내 치제한 것으로 시작되어, 숙종 24년(1698) 확립된 영월 단종제례는 장릉에서 올리는 유교식 제례의식으로 체계적 보존⋅전승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1791년(정조 15)에 시작된 배식단의 충신제향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크다고 한다.

 

[홍살문과 신도]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하지 않아서 인듯, 홍살문으로 부터 정자각으로 향하는 길이 일직선이 아닌 기억자로 꺽여 있으며, 길은 신도와 왕로로 구성되어, 왼쪽의 신도는 神만이 다니는 길이며 오른쪽 작은 길은 초헌관이나 일반 제관이 다니는 길이라 하는데, 일반인을 왕로로 통행하기를 표지판으로 일러준다.

 

[영천]

 

우물은 정조 15년에 왕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지어서 한식때 제정 (제사지낼때 사용하는 물을 기르는 곳)으로 사용되었으며, 우물의 깊이는 1.5M정도로 아래로 둥글게 쌓고 위는 정사각형이다.

 

[단종비]

 

비각안에 자리한 단종비는 표석의 앞면에 조선국단종대왕장릉 이라는 이름과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를 새긴 비석이으로, 영조때 영월부사 윤양래가 건의하여, 7월 어명을 받아, 비는 1733년 건립되었다고 한다. 

 

[영월 장릉과 정자각]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 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한 곳으로,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라 한다. 정자각은 제향을 모실때 신주를 모시는 건물이다. 영월 장릉은 2009년에 조선왕릉 40기와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 시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릉으로 오르는 것은 이 곳 영월에  단종과 관계된 여러 사적지를 둘러볼 때 다시금 찾기로 하고 멀리서 참배 만을 드린다.

 

[배식단]

 

왕릉에 자리한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신하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제단으로 정단과 별단의로 구분하고, 별단은 공로외 신분에 따라 셋으로 나뉘는데, 단종이 복위한 뒤 정조 15년에 정단의 제위 32인과 별단의 제위 198인을 지정하였는데 순조때에 추가되어 268위가 되었다고 한다. 제사는 한식때 지낸다고 한다.

영월은 그간 보물이 영월군에서는 비교적 먼거리인 곳에 자리한 법흥사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가 유일한 보물이었는데,  이번에 창절사가 보물로 지정되어 방문할 수 있음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다음에는 법흥사와  단종과 관계하는 여러 곳을 찾아보고, 이곳에 기거하는 친구도 찾아 볼 것을 마음 속에 새기며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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