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일흔 네번째 - 고성

세종해피뉴스 2024. 11. 4. 13:25

비가 오는 흐린 날이지만 바닷가를 찾는다. 송지호 해수욕장 인근의 기이한 모습으로 서있는 서낭바위를 찾는 길이다. 다른 나라의 모래 사막이나 바닷가에 자리한 가분수형의 여인의 두상 같은 바위가 우리에게도 있다 하여 그 형상이 궁금하여 나선 길이다. 오호리에서 등대로  언덕을 올라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면, 만화의 둘리를 담기도 한 모습의 신비한 형상을 갖춘 바위가 언덕으로 둘러쌓인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 오호리 주민들이 매년 풍어제를 올리는 서낭당이 가까이 있어 서낭바위라 불리는 바위이다. 뒤 벼랑은 서로 다른 암석이 지층을 이루며 비스듬히 누워 있고, 서낭바위와 같은 방행, 같은 각도로  누워 서낭 바위가 위의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서낭바위]

 

파도에 의한 파랑 침식으로 만들어 졌다는 바위는 아래 보다 위의 부분이 많이 커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마치 술레잡기를 하듯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자리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서낭바위]

 

이 바위가 한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비슷한 형상의 바위에는 바위에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서낭 바위는 머리에 상투를 튼  듯 푸른 소나무가 자리한다. 산책 삼아 주변을 둘러 보며 바다를 줄기다가 고성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고성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건봉사의 능파교이며, 다른 하나가 육송정의 홍교이다.  이 둘은 같은 날 보물로 지정 되었는데, 건봉사의 능파교는 이 전 방문 경험이 있어, 육송정 홍교를 찾아본다. 찾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길가에 자리 잡아 있지만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보물  제 1337호 고성 육송정 홍교]

 

건봉사로 갈 수 있는 길목에 자리한  홍교는 새로난 길 옆에 붙어 자리하여 운행 중에 발견하기는 어렵고,  이를 알리는 표지목도 그리 눈에 잘 띄지는 않고, 이 다리만을 보러 찾기엔 다른 볼거리가 없어, 길 옆에 외로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보물 제 1337호 육송정 홍교]

 

2002년 보물로 지정 된 이 문화재는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에 있는, 하천의 폭이 12.3m 정도에 석축을 쌓아 만든, 길이 10.6m의 다리로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동쪽은 암반 위에 지대석을 두고, 서쪽은 3단의 지대석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어 졌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능파교와 함께 을축년(1745년)의 대홍수로 붕괴 되어, 능파교(1704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 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지형을 이용한 조선 시대 단칸 홍예 석조 다리라고 한다.

 

 

고성에 돌다리가 조성 된 이유는 아마도 이 곳 계곡의 물이 갑작스러이 불어 올라, 나무나 여타 돌다리로는 견딜 수 없는 환경때문에 이러한 홍교를 사용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홍교를 찾아보고 또 다른  보물인 건봉사 능파교를 찾아본다.

 

[강원 문화유산 자료 건봉사 불이문]

 

잠시간의 이동으로 찾은 건봉사의 대표적 문화재 불이문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1920년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앞면 1칸·옆면 1칸,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각각의 기둥에는 금강저 문양을 새겨 놓았고, 불이문(不二門)현판은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라 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니 능파교가 사찰입구에 계곡에 걸쳐 있다.

  
[보물 제 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아치형의 능파교가 사찰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며 잘 복원되어 있다.

 

[보물 제 1336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

2002년 같은 날에 홍교와 같이 보물로 지정된 능파교는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라 한다.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건봉사 사찰을 둘러보고, 동 시대에 건조 된 듯한 고성의 두 보물을 보고는 바닷가로 돌아나와  길을 나선다.  돌아가는 길에 이 전에 공사 중이던 청간정을 찾아본다.

 

 [강원도 유형문화유산 청간정]

 

깨끗이 복원작업을 마친 청간정은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인데,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고,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라 한다. 2층 누각에 앉아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잠시 무념에 젖어본다.

 이틀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가 길에 지난 일정의 고성 홍교를 생각해 본다.  능파교에서 홍교의 거리는 약 3km, 차로는 4분거리로 멀지 않다. 만약에 이 두군데에 흐르는 물이 같은 줄기를 타고 흐른다면, 이 곳서 건봉사까지의 계곡을 따라 길을 내고, 그 중간 중간 몇개의 홍교와 정자 (육송정)를 더 건설하여 특화 된 숲길 다리걷기 장소로 개발하면 이 보물은 더욱더 우리에게 잘 알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가능 하면 요즈음 유행처럼 번지는 황토길이나 소나무 숲길로 만들면 새로운 볼거리, 놀거리  그리고 문화재 알림과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장소로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집 가는 길이 멀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고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달린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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