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예순 일곱번째 - 경주

세종해피뉴스 2024. 8. 22. 20:13

- 경주 박물관

 

경주로 길을 나선다. 오랜 폭염의 날씨에 차 밖을 나서기가 두려워 경주를 들어서며 곧바로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러한 날씨에 시원하게 보물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박물관 관람이기 때문이다. 평일이지만 많은 관람객이 함께 한다. 방학기간의 아이 들과 그리고 눈에 띄는 많은 외국인을 통해 국립 경주 박물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무료 주차에 무료 입장으로 우리의 문화를 보전 전시한다는 것이 말없는 자존감을 갖게 하여 준다. 이 곳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신라천년보고, 옥외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월지관은 오늘  보수공사로 관람이 불가하다. 이곳을 다시 한번 찾을 이유가 생긴다.

먼저 신라역사관을 들어선다. 이곳은  신라의 건국과 성장, 그리고 신라하면 연상되는 황금의나라 신라, 그리고 신라의 번영이라는 테마로 전시되어 있는데, 1 전시실은 선사시대 돌도끼부터 당시 생활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다.

 

[국보 제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계림30호

 

토우란 흙으로 어떤 형태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로 장난감이나 주술적 의미, 부장의 목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으로, 흙뿐 만 아니라 동물의 뼈나 뿔, 나무 또는 짚이나 풀로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져 일반적으로 토우라 지칭한다고 한다. 원래는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와,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 2점이 국보 195호 이다.  계림 30호는 둥근 몸체에 윗부분은  벌어지고, 목부분에  4개의 돌출선이 있으며, 5개의 세로선으로 구획하고  안에  동심원의 문양을 넣으며, 개구리·새·거북이·사람 등으로 장식한 모양이다. 남녀가 성교하는 모양, 배부른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는 모양 그리고 개구리를 문 뱀, 토끼등으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재작자의 의도인지 사용자의 의도인지 궁금하나 생산 풍요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노동동) ] 노동동 11호 문화제청 자료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된 목항아리로  끝부분이 안으로 꺾어지고, 돌출선에 의해 2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5개의 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겹치게 새기고, 사이에 원을 넣었으며. 토우는 계림로 30호 토우와 같은 형태이나 목 부분에만 있고 그 수도 적은 편이다. 전시되지는 않고 있다.

 제 2 전시실은 4세기 중반 마립간의 지배자 중심인  황금의 나라를 보여 주며, 금강총, 천마총과 황남대총의 유물 들이 전시되어 있다. 들어서면서 곳곳에 보이는 황금의 화려함에 눈을 크게 뜨게 된다. 보물들을 찾아 두리번 거려본다. 많은 유사한 유물로 금관총 , 황남대총, 천마총 어디의 유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두번 더 방문하여 익혀야 할 듯하다. 오늘은 국보 보불이 명기된 것 유물부터 만나 보려 한다. 보물을 보물이라 국보를  국보라 왜 크게 또는 알아볼 수 있는 글씨나  도안이나 표식을 사용하지  않는지 알 수 가 없다. 문화재청에 건의해야 하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여본다. 

 

[금관총 출토유물] [국보 제 87호 금관총 금관 및 금제관식]

 

금관총에서 출토 된 고리자루 큰칼의 보존처리 진행 중에  칼집 끝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확인 되고, 이사는 이름, 지는 존칭, 왕은 왕을 의미 한다고 한다.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500년 전후에 사망한 신라의 유력자로 보고 있다. 금제 새날개 모양 금관 관식이 금관과 함께 머리에 쓰는 장식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 620호 천마총 유리잔]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에서 출토 된 유리잔이 함께 진열 되어 있다.  천마총 유리잔은 청색의 유리잔으로 천마총 무덤 내에서 발견되고, 높이 7.4㎝, 구연부 지름 7.8㎝의 크기로  2개가 발견되었으나 하나는 복원이 불가능 할 정도로 파손되었다 한다. 

금관총 유리잔은 유물의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5세기 경(서기 400년대)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흰 잔에 와인잔같으며 녹색의 물결무늬가 2줄로, 로만글라스의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신라가 지중해 연안 국가 또는 페르시아 지역과 교류하며 수입한 제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남 대총의 유리병과 잔이 국보인데 눈에 띄지 않아 포기한다.

 

[국보 금제 새날개모양 장식, 보물 제 635호 계림로 보검, 보물 제 634호 황남동 삼강유리구슬]

 

 보물 제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은 경주 황남동에 있는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길이 36㎝의 칼로, 1973년 계림로 공사 때 노출된 유물이며, 철제 칼집과 칼은 없어지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다. 시신의 허리 부분에서 발견되었고, 자루의 끝부분이 골무형에 가운데 붉은 마노를 박고, 칼집에 납작한 판에는 태극무늬 같은 둥근무늬가 있다. 삼국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달리 이러한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한다.

 

[보물 제 634 호  경주 황남로 상감유리구슬]

 

경주 황남동에 있는 신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길이 24㎝, 상감유리옥 지름 1.8㎝,  옥 목걸이는 8가지 정도의 옥으로 만든 목걸이로, 대부분의 옥이 삼국시대 신라 무덤에서 자주 출토되는 편이지만 상감유리환옥은 처음 출토되었다고 한다. 유리 옥에는 녹색 물풀이 떠 있는 물 속에 오리 16마리와 두 사람의 얼굴이 지름 1.8㎝에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여 세밀하게 상감 되어 있다. 유리 옥의 제작지가 어느 곳인지 모르고, 얼굴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과 차이가 있다. 돌아가며 보도록 세워 놓은 것이 조그만 문양을 보기에 불편하게 느껴진다. 평면 전시하고 돋보기나 뒷 화면에 확대하여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보물 제 626 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금제 고배(高杯)는 황남대총 북쪽부덤에서 발견된 굽다리 접시(고배)로 높이 10㎝, 주둥이 지름 10㎝, 무게 169g이며, 토기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따라 반구형 몸통 밑에 나팔형 굽다리를 붙인 전형적인 양식이지만, 장식이 가해지고,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용품이라기 보다는 껴묻거리(부장품)로 제작된 것으로 본다. 나뭇잎 모양 장식 7개를 2개의 구멍을 통하여 금실로 꿰어 달고, 굽다리는 작은 편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사각형 모양의 창을 어긋나게 뚫어서 장식하는 신라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하고 있다. 죽은자에 대한 존경으로 제작된 것을 보면 주인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금고배로 마무리 되었나 보다.

 

[보물 제 632 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는  황남대총에서 발견 된 팔뚝가리개는 남쪽 무덤 널(관) 밖 머리쪽의 껴묻거리 구덩이(부장갱)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35㎝이다.

 

[황남대총 부장품]

 

 경주 황남동에 있는 두개의 무점이 남북으로 맞붙은 쌍분으로 남쪽이 먼저 조성된 남자무덤, 북쪽이 여자 무덤으로 5세기 초부터 중후반 사이의 마립간 (왕)과 왕비의 무덤이라 추청하며, 특이점은 왕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부인의 무덤에서는 금관이 츨토되었다고 한다.

 

[보물 제 619 호 천마총 목걸이]

 

화려하였을 천마총 목걸이는 천마총 안의 널<관(棺)>에서 발견된 것으로, 금, 은, 비취, 유리 등의 재료를 사용했는데, 원래의 줄 외에 가슴 부근에서 좌우로 늘어지는 짧은 가닥이 달려있다고 한다. 청색 유리옥과 금·은 제품이 여섯줄로 이어져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좌우에는 큰 굽은 옥이 매달려 있다. 이 경식은 목에 걸었을 때 전체가 V자형이 된다. 

 

[국보 제 194 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가운데 둥근 길이 33.2㎝의 금 목걸이로 남쪽 무덤에서 사람의 목에 걸린 채로 널(관) 안에서 발견되었다.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 사슬 4줄과 속이 빈 금 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고, 늘어지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굽은 옥을 달았다. 경주지역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 끝부분에 푸른빛의 굽은 옥을 장식한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들고 끝부분에도 굽은 옥 형태의 금으로 장식한 독특한 목걸이 이다. 

 

[보물 제 629 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이 황금 허리띠는 발굴 당시 시신의 앞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순황금으로 금형을 뜬 34매의 띠꾸미개와 7개의 요패로 구성되어 있다.  금으로 만들어진 골무를 씌운 청색 곡옥이 3개, 족집게형 장식 1개, 물고기형 장식 1개가 장식되어 있다. 대형 띠드리개의 경우 시신의 왼쪽에 달려서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가 오른쪽에 달린 것과는 위치가 정반대라 하는데, 이는 곧 당시 남녀의  허리띠의 패용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말해 준다고 한다.
금관과 허리띠가 장식된 곳에서 멋진 모습을 접한다.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된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으로, 높이 32.5㎝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다 한다. 앞면 위에는 山자형 모양이 3줄,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로 된 형태이다. 山자형은 4단으로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이다.  원형 금판과 굽은 옥으로 장식하고, 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은 촘촘히 연결하기도 하였다. 밑으로는 나뭇잎 모양의 늘어진 드리개(수식) 2가닥이 달려있다. 금관 안에 쓰는 내관이나 관을 쓰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널(관) 밖에서 다른 껴묻거리(부장품)들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국보제 190 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허리띠(과대)이다. 과대란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 길이 125㎝, 띠드리개(요패)의 길이는 73.5㎝로, 과대는 44개의 판을 연결하고, 주변에 9개의 구멍이 있어 가죽에 고정시키게 되어 있고 양끝에 허리띠고리(교구)를 달았다. 과대에서 늘어뜨린 장식은 13줄로 타원형 금판과 사각형 금판이며,  이 허리띠와 띠드리개는 관 안에서 허리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었다한다.

화려함 보다는 정교함에 눈길이 간다, 전체를 보면 위압감을 느끼나, 부분 부분은  처리가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느껴진다.

 

[보물  제 633  호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1번 소장품

 

신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길이 15.5㎝의 한 줄은 길고, 세 줄은 짧은 금제 드리개(수식)이다. 긴 줄은 속이 빈 금 구슬에 꽃잎 장식을 금실로 꼬아 연결하였고, 끝에 비취색 옥을 달았다. 작은 줄 역시 긴 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현재의 상태가 원형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드리개 가운데 가장 호화스러운 작품이다.

 

[국보제 189 호 천마총 관모]

 

천마총에서 발견된 내관으로 쓰였던 모자형 관으로 높이 16㎝, 너비 19㎝인 이 금모는 널<관(棺)> 바깥 머리쪽에 있던 껴묻거리(부장품) 구덩이와 널 사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각각 모양이 다른 금판 4매를 연결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위에는 반원형이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모습이다. 윗단에 눈썹 모양의 곡선을 촘촘히 뚫고,사이사이 작고 둥근 구멍을 뚫었으며, 남은 부분에 점을 찍어 금관 2장을 맞붙인 다음 굵은 테를 돌렸다고 한다. 밑에는 구름 무늬를 뚫어 장식하였고 또 다른 판에는 T자형과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모양의 금판이 있다. 머리에 쓴 천에 꿰매어 고정시킨 후 썼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금판에 점을 일일이 찍어 놓은 돌기를 보니 그 정성에 놀라게 된다

 

[보물 제 617 호 천마총관모 (1978-1) 나비형금제 관식  과 보물 제 618호 천마총 관모(1978-2)금제조익형관식]

 

천마총 금제 관식(1978-1)은 널<관(棺)> 밖 머리쪽에 껴묻거리(부장품)가 들어있는 상자 뚜껑 위에서 발견되며, 높이 23㎝, 너비 23㎝인 이 관식은 중앙에 새머리같이 생긴 둥근부분이 있고, 그 밑 좌우 어깨 위치에는 위로 솟는 날개 모양의 한 쌍이 있다.  천마총 금제 관식(1978-2)은 천마총 안의 널<관(棺)> 머리쪽에 있던 유물 보관함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이 45㎝, 양 날개너비 40㎝이다. 큰 새의 날개가 펼쳐 있는 모양이고, 밑은 방패 모양으로 된 장식이 달려있다. 

이 관모들은 밑에는 못 구멍이 하나 있어 어느 곳에 꼽기 위한 것으로 추정 되지만 어떠한 용도로 쓰였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국보 제 318 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

 
2009년 5월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 에서 발견된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이다. 모양이 일정치 않은 화강암(花崗巖) 1면에서 전체 12행 20자로 음각(陰刻)된 도합 203자의 비문이 각자(刻字)되어 있다고 한다. 비문은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 신라의 지방통치와 분쟁 해결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 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상황을 알려 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2009년 중성리 일대에서 도로 개설 작업장에서, 편평한 돌 하나를 근처에 거주하는 김헌도씨라는 분이 집으로 가져가 마당의 화분 받침용으로 자신의 집 마당까지 운반하여 돌을 물로 씻는데, 정으로 새긴 글씨가 눈에 띄어 제보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한다.

 

한번의 방문으로 경주 박물관을 알기가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며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천천이 발길을 옮긴다. 머무는 시간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지만 앞으로도 보아야 할 곳이 더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한가한 때를 찾아 다시금 오려는 마음을 갖으며 발길을 옮긴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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