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예순 여섯번째 - 상주, 구미

세종해피뉴스 2024. 8. 16. 02:16

- 대둔사

구미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구미의 대둔사를 찾아 보려 하는데, 구미로 들어서기 전 상주를 통과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웃 도시나 마을을 가려면 굽이 굽이 산길로 재를 넘어가야 한다. 요즘 처럼 터닐이 없던 시절 발품 팔아 오랜 시간을  힘겹게 넘을 길을 쉬통과하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며 편히 넘을 수 있으니, 그리고 목적지 까지 빠르게 넘어갈 수 있으니 옛날 사람들 보다 수명 만이 길어 진 것 이 아니라 장소의 이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수백, 수천배로,  삶이 연장 된 느낌이다. 구미로 가는 상주를 통과 하는 길에 상주 오작당이 있어 둘러 본다.

 

[상주 오작당]

 

 안내문을  통하여 이곳의 내력을 알아 본다. 오작당은 입재 조대윤의 종가로 원래는 40여칸 이었는데, 1781년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정(1555∼1636) 선생이 지은 집으로, 선조 34년(1601)에 처음 지었다가 현종 2년(1661)에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한다. 인근의  양진당(보물)보다 오래된 건물로 추정되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상주 오작당 사랑채]
 

주민이 생활하며, 작은 공사가 진행중인 오작당으로 들어서면,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자리한다. 앞면7칸 옆면은 한칸과 두칸이다. 

[ 오작당 중문채]
 

건물 가운데 중문을 통하여 안채로 들어가는 구조이며 왼쪽으로 중문채가 자리한다.

  

[ 오작당 안채 ]
각방이 앞 뒤로 배치 되고, 부엌에는 물건을 두는 고방이 있으며, 네모기둥의 모서리위 둥글게 다듬은 기둥머리에 연꽃 봉우리 조각재를 사용하여 대들보로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르막 내리막을 통해  복우산 북쪽 기슭에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동쪽으로 자리한  대둔사가 자리한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30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하는데, 몽고침략시 불에 타서 충렬왕때 다시 지어졌다고 하며, 조선 선조39년에는 사명대사가 절을 크게 짓고 승군이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축대를 쌓아 지대를 높게 한 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사찰 앞 에 주차장이 공사 중 이지만 가파른 길을 사찰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보물 제1945 호 구미대둔사 대웅전]
 
 대웅전 앞은 돌로 축대를 쌓아 계단을 만들었고, 공포가 멋지게 자리한 다포식 팔작지붕이 커다란 관을 쓴 듯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옆면]
 

대웅전의 규격적이며 화려한 공포를 지탱하여 주는 듯한 활주가 건물을 안정감 있게 하는 듯 하다.

 

[보물 제 1945 호 구미 대둔사 대웅전]
 

2017년 보물로 지정 된 구미 대둔사 대웅전은 전면에 석축과 가운데에 화강암 계단이 있으며, 기단은 장대석으로 쌓고 자연석 초석 위에 모두 원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인,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이라 한다. 지붕의 네 모서리에 팔각형의  활주가 있으며, 공포는 강직하면서도 장식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7∼18세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잘 남아 있으며, 정면 가운데는 꽃살 여닫이 문과 뒷면 오른쪽에 있는 영쌍창이다. 단청도 건물이 세워질 당시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이 여럿 존재한다. 오랜 사찰답게 여러 문화유산물이 보물로 지정 되어 있다.

 

[보물 제 1633호 구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의 중앙에 자리한 2010년 보물로 지정 된 대둔사 건칠여래좌상은 정상 계주만 보수되었을 뿐 원래의 상태로 보전된 작품이라 하는데, X-ray 촬영 결과 상호와 불신은 건칠로 제작되고 양손은 나무다 한다.  균형 잡힌 비례와 이중의 대의를 입은 착의법, 감탕기법으로 만들어 붙인 나발, 양 무릎 밑으로 모아진 양쪽의 대의자락 그리고 왼쪽무릎에 늘어진 소매 자락 등은 고려후기 14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하는데. 이러한 고려시대 건칠여래상은 나주 심향사를 비롯 전라도 지역에 몇 사례가 있을 뿐으로,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북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건칠기법으로 귀중한 불상이라 한다. 불상의 크기가  105.5cm라 한다.

 

[경북 유형 문화유산 구미 대둔사 아미타불회도]
 

아미타 불회도는 아미타불좌상의 후불벽화로  화면 세로 316cm, 가로 301cm이며, 39cm 전후의 비단 8폭을 이어 붙인 화폭에 ,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해 8대보살, 사천왕상을 둥글게 배치하고 아미타불의 두광 좌우에 2위의 제자를, 구름문 외곽으로 천룡과 인왕상 2구를 그려 넣었다 한다. 화기를 통해 1761년에 수화승 처일을 비롯해 유성, 채성, 지열, 수연이 함께 참여하여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일은 18세기 전반 팔공산 은해사를 중심으로 청도 운문사와 대적사, 청송 대전사 등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이라 한다. 이 불화는 화면의 변색과 박락 등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보물로 신청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하나, 처일의 화풍적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한다. 대웅전 내에 새로이 보물로 지정 된 삼장보살도는 보전을 위해 액자판을 씌우고 있다.

[보물 제 2025 호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최근인 2019년 보물로 지정된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조성되는데,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고 하는 문화재 이다. 제작은 직지사 등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인 월륜, 치흠, 우평이 참여하고, 크기는 세로 238cm, 가로 279cm로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수미단 위에 결가부좌한 세 보살과 각각의 권속이 짜임새 있게 배치된 형상이다. 이 삼장보살도는 1661년에 간행된『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에 근거하여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한 곳으로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며, 특히 16세기 이전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 등 해외에 전해지고 있고,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년)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년)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18세기 전반 연대를 가진 삼장보살도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보물 제 2117 호 구미 대둔사 경장, 문화재청 자료]
 

2021년 보물로 지정 된 구미 대둔사 경장은 뒷면에 쓰인 명문을 통해 1630년(인조 8)에 제작한 제작 시기뿐만 아니라, 화원, 인출장인, 태장인 등 경장 제직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알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라 한다. 또한 좌우 경장의 문짝 안쪽에 각각 2구씩 그려진 사천왕상을 배치를 통해 이는 한 쌍으로 제작되어 대웅전의 불단 좌우에 놓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사천왕도는 17세기 선묘불화(線描佛畵)의 유일한 사례로 주목 된다고 한다. 대웅전을 둘러보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디 다른 전시회에 출품이 나갔나 하며 아쉬움을 갖는다 

 

이곳 대둔사는 비교적 최근에 여러 문화재 들이 보물로 지정되어 사찰의 품격이 한껏 높아진 듯 하며, 추후로는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 받을 수 있는 사찰이라 생각해 본다.  어느 사찰마다 나름의 이야기 거리와 역사가 존재하고, 그 안에  여러 문화재를 품고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문화 유산이 보물로 그 가치를 평가 받을 지 모르지만, 오늘 방문한 사찰에서  처럼 새로이 보물로 지정되면 보다 관심을 갖고 찾아 보는 것이 나의 꿈이며 사명이라 생각하며, 아직도 찾아 볼 곳이 많다는 생각에 흥분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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