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예순 다섯번째 - 광주

세종해피뉴스 2024. 8. 7. 01:28

- 광주 박물관

 

오늘은 길을 광주로 잡는다. 더운 날씨도 피하며 문화재와 함께 할 수 있는 광주 박물관에서 시원하게 보물들과 시간을 보내려한다. 

 

[국립광주박물관 외형]

 

이 곳의  역사문화실엔 선사시대부터 마한, 백제, 가야, 통일신라, 후백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의  고고 유물을 중심으로 전라 지역의 선사 및 고대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많은 유물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도자기 풍류를 품다"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곳의 전시장을 둘러보며 보물 찾기에 나서본다.

 

[국보 제 103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눈에 들어오는 보물은 크기나 모양이 한눈에 보물 임을 짐작케 한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고 광명등 이라고도 하는데,  대웅전이나 탑 같은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이 석등은 연꽃이 둘러진 아래 받침돌 위에 기둥으로 쌍사자가 뒷발로 서서 가슴을 맞대어 위를 받치고 있고,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뚫려 있고, 지붕 돌은 여덟 귀퉁이가 치켜 올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중흥산성내에 있는 것을 일본인이 무단으로 반출을 시도 하다가, 경복궁으로 옮겨 진 후 지금은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쌍사자는 사자머리가 화사석의 받침대와 한돌로 붙어 있어 안정감이 있다 하며, 그 간 보아 온 쌍사자 석상 중 그 보존 상태가 생태가 정갈하고 힘찬 모습이 예사스럽지 않댜 생각이 드니 역시 국보로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  전시 된 또 다른 국보는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앞뒤면을 모두 감상할 수 있게 전시되 있으나 전시실의 조명으로 인하여 다소 산만함을 가지게 된다. 별도의 칸막이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보 제 143호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전남 화순군 대곡리 영산강 구릉의 청동기 시대의 굴피나무로 만든 적석목관묘에서 출토된 유물로,  세형동검(청동검) 3점·청동팔령두 2점·청동쌍령구 2점·청동손칼(청동삭구) 1점·청동도끼(청동공부) 1점·잔무늬거울(청동세문경) 2점이며, 이는 청동유물 중 출토지와 매장유구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발견은 1971년 8월 장맛 비에 구재천 씨가 배수로 작업 중, 쇳덩이가 나와 용도를 알 수 없어 한 동안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다가, 엿장수에게 넘기고 엿과 바꾸는데, 이를 엿장수가 범상치 않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전남도청에 넘겨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엿장수는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안목과 조치가 국보를 살린 것이라 본다. 발길 닿는 곳에 보물이 자리하는데 얼핏 보면 보물이란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보물 제 1233호 현자총통]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화포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하는데,  천자문에서 따와  천(天)·지(地)·현(玄)·황(黃)자총통이라 붙였다한다. 이 것은 그 중 크기가 3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이며, 1992년 전라남도 여천시 백도 근방 해저에서 파손 된 지자총통, 별승자총통과 함께 끌어 올린 것으로, 총 구경 6.5㎝, 전체길이 75.8㎝의 크기라 한다. 몸체에  가정을묘명천자총통(보물)을 제작하였던 양내요동(梁內了同)이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제작시기를 조선 명종 10년(1555) 즈음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남아 있는 7기의 현자총통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고 , 보존상태도 양호한 귀중한 유물이라한다.

 

[ 화포들]

 

 여러가지의 화포를 같이 전시하여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보물 제 1874호 순천 매곡동 석탑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

 

제작 연도가 나오는 발원문 8매를 포함하여  2015년 보물로 지정되며, 제작시기는 1468년이라 한다. 원래 순천 매곡동의 폐석 탑 안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2003년에 도굴당하고, 이후 골동품 시장에서 불법으로 유통 되다가 2015년에 문화재청 단속반이 발견해 회수한 것이라 한다. 관음과 지장이 협시로 이루어진 아미타삼존불의 형식에, 불감은 탑에서 유출되면서 임의로 수리되어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전각형 불감 안에 불상을 안치시 그 규격이 잘 맞는다고 한다.

 

[광주 전 성거사지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보물 제 109호 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수리 과정 중  2층 탑신 위에서 발견 된 보살과 사천왕이 장식 된 사리장엄 으로 고려 전기로 추정 된다. 사리구의 지붕과 몸체는 일체형이며, 호는 은제로, 은제 사리에는 56과의 사리가 발견되었다 하며, 몸체의 모서리마다 사천왕이 호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광주 신룡동 오층 석탑사리장신구]

 

광주 신룡동의 오층 석탑을 1981년 보수과정중 1층 기단부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것으로, 사각형 금동사리함과 금동사리병, 금동 연꽃장식, 대나무편, 그리고 작은 나무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암 용암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신구]

 

1996년 용암사지 석탑의 기단부에서 발견된 것으로, 별도의  큰 청자 항아리 안에 금동 지장보살과 32과 사리를 담은 백자 사리호가 들어 있었다 한다. 청자 항아리는 발견 당시 손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장흥 탑산사지 금동소탑]

 

완전한 모양을 갖출만큼 수량이 되지 않으나, 비율로는 9층탑으로 추정 되는 소탑으로, 현재는 기단1점과 탑신 5점이 남아 있는데 모두 별도로 만들어져 누각모양으로 조립하는 형식의  탑이라 한다.

 

[강진 월남사지 쇠북]

 

쇠북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예불을 드릴때 사용하는 것으로 강진의 월남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고리가 달린 쇠북이다.

 

[고려 철불]

 

철로 만든 부처는 선종 승려의 유학과 귀국등 당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 선종사찰을 중심으로 유입되어, 고려 전기 까지 널리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철이 구리보다 경제적이며 또한 녹는점이 높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주조한 후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자기의 다양한 문양을 선 보이는 '도자기 풍류를 품다'에는 묘지와 도자기에 사군자와 다양한 문양, 글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군자, 시, 경치 등 소재별로 전시 된 다양한 도자기를 익힐 수 있는 기쁨으로 둘러본다.

 

[보물 제 1993호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묘지는 세종때 집현전 학사 이선제의 묘지(墓誌)로, 1998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2017년 일본인 소장가의 기증으로 국내로 환수된 문화유산라 한다. 

조선 초기 민간의 상장례(喪葬禮)가 정비 보급되기 전 제작된 것으로, 2개의 넓은 장방형태 토판과 2개의 좁은 태토판을 붙인 위패형 형태이며, 이선제 묘지에는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기록이 제대로 전하지 않은 그의 가계와 이력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조선 15세기 경의 변화하는 상장의례나 도자 기술, 서체 연구를 위한 중요한 편년작으로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보물 제 1329호 백자 청화소상팔경문 팔각연적]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품이 기획전으로 이 곳으로 나들이  한 듯하다. 여덟면의 비교적 큰 백자연적으로, 윗면에는 구름과 용 무늬를, 옆의 여덟면에는 중국의 소강과 상강이 만나는 곳의 경치인 소상팔경을  그려 넣었다 한다.  주둥이가 있는 면은 시로써 경치를 대신 묘사하고 있으며, 중앙에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 하여 주제를 밝히고 그 양옆에 각각 한 구절씩 시구를 적어 놓아 소상팔경 가운데 ‘동정추월’의 장면을 표현하였음을 나타내며, 푸른색의 코발트 빛 청화 안료를 사용한 이 연적은 1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적의 물을 다 사용하여 글을 쓰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데 허세가 대단한 사람의 연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자기에 시를 넣은 작품]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오지 않는 술을 기다리며' 의 일부라고 한다.

 

[화조와 국화 문양]
[병에 새겨진 문양]
[접시의 매화와 죽 그림]

 

 

 

['도자기 풍류를 품다'의 여러 작품 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에 사군자, 산수 글씨 등 다양한 문양을 표현 하여 즐기는 조상의 멋스럼을 한자리에서 흠뻑 느껴 본다.

 

[소치 허련이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

 

조선 초기 호남 화단을 이끈 소치허련이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라 한다. 초의 선사는 추사 와 소치 등 당대 문화계 인물들과 차를 매개로 깊은 우정을 나눈 분으로, 이 편지 내용은 안부인사와 병든 아이늬 차도가 나아지고, 십육나한도를 빌렸으면 하는 내용의 서신이라 한다. 

 

 많은 눈호강을 얻는 박물관의 방문을 하다 보면 다른 여행지 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 적으로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고 느낀다. 사실 혹이나 놓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힘든 하루이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또 다른 보물을 찾아 인근에 자리 한 광주 역사민속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본다. 진입이 남달리 특이한 이 곳에는 일찌기 보물로 지정 된 정지장군의 갑옷이 있다 한다.

 

[보물 제 336호 정지장군 갑옷. 문화재청자료]

 

이 갑옷은 철판과 철제 고리를 엮어 만든 경번갑으로, 이 갑옷의 주인인 정지장군은 고려 충목왕 3년(1347)에 태어나서 공양왕 3년(1391)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갑옷은 장군이 왜구를 물리칠 때 착용했던 것으로 하동정씨 문중의 후손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길이 30㎝로 세로 7.5∼8㎝, 가로 5∼8.5㎝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앞면은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 6줄에  두 줄은 여미게 되어 있으며,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5줄로, 어깨 팔은 철판없이 고리만을 사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앞면 아래쪽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갑옷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하는데 오랜 세월 보전 되어 온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박물관 전시품. 복원품]

 

이곳에서는 남도의 생활을 농촌 어촌의 생활상을 엿 볼수 있고, 특히 상여나 장옷 같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근대사의 광주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장소와 금남로를 재현해 놓은 곳도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그의 살아 온 발자취와 노벨상 메달도 볼 수 있다. 사실 박물관 투어를 한 날은 진이 빠진다는 느낌을 갖는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얻는 정보가 많아 나의 메모리 능력을 초과 하게 됨을 느낀다. 보면 볼 수록 알면 알 수록 더욱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문화유산 탐방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늘은 애 썻다는 기분을 가지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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