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열일곱번째 - 평택

세종해피뉴스 2023. 6. 27. 23:09

-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평택으로 향한다. 평택에는 현재 보물로 지정된 것이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일전에 방문한 심복사의 석조 비로 자나불 좌상이며, 다른 하나가 이번에 찾는 만기사의 철조 여래 좌상이다. 

 이 곳 평택은 교통의 요지로, 남양만 일대는 이미 통일신라 흥덕왕 8년에 당성진이 설치 되어,  군사적으로, 중국의 선진문물이 유입되는 대당 교류의 중심으로 중요한 곳이다. 아마도 당시 아산만을 근거로 해상교류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세력이, 뱃길의 안녕을 위해 심복사의 석조비로 자나불 좌상과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본다.

만기사를 찾아가는 길은 주변에 공장지역을 통과한다. 웅장한 돌기둥에 세워진 커다란 무봉산 만기사라는 현판을 단 일주문이 이후는 부처님의 땅임을 알리고 있다.

 

[일주문]

만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고려 942년 (태조 25) 남대사(南大師)가 창건하고, 조선 세조 때 왕명으로 중수하며, 명맥만 유지하다가 1972년 주지인 혜송(慧松)이 대웅전과 삼성각·요사채 등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석탑재· 석등재· 석불· 부도 등 고려시대의 석재들이 산재하여 있으나 결실된 부재로 대부분 복원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만기사 전경]

사찰의 입구에는 커다란 주차장 시설이 있고, 사찰은 한단 높이 자리한다. 오후의 퇴약볕에 더워진 주차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르며 불상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본다.

 

[요사체]

계단위를 오르며 맞이하는 절 풍경은 요사체라 짐작되는 건물 앞의 야채를 직접 가꾸고 수확하는 모습으로, 너른 공터에 스님도 불자도 함게 나물을 가꾸고 다듬는 모습이다.

 

[청왕문]

 왼편으로 이층 누각 같은 전각이 보인다. 보통은 만세루, 보제루라는 명칭을 가지고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과 마주하는 곳에 있지만, 이곳의 전각은 일층은 천왕문 이층은 명부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사천왕상]

힌두교의 방위신에서 불교에 귀의한 사천왕은 사찰 초입에서 자신의 무기를 지니고 사방의 사찰 전체를 수호하는데, 사천왕이 무섭고, 분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처님과 불법을 해치는 무리들을 힘과 위엄으로 조복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발아래 사천왕을 따르듯 발에 매달린 작은 도깨비 모양의 조각 역활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진다.

 

[사찰의 전경]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유독 하얗게 빛나는 석조물 등에서 느끼는 사찰의 모습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라기 보다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킨 절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래도 오랜 역사를 간직한 철조 여래상을 찾아 법당으로 향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안에는 1972년 보물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신중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불상]

대웅 전 안에 모셔진 불단은 생각했던 검은 쇠로 만든 철불을 모신 잔잔한 모습이 아닌  화려함을 느기게 한다. 금박을 두른 화려한 불단을 접하며 검은 철불상을 그리며 방문한 것에 대한 무색함을 느끼게 된다. 화려한 후불벽화 장식에서도 오래된 철불의 후불탱화의 느낌을 얻지 못한다. 

 

[보물 제 567호 만기사 철조 여래 좌상]

1972년 보물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은 높이 143㎝으로  두껍게 개금되어 원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불이라고 한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는 없이 불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었으며, 오른팔과 양 손은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고 원래의 것은 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과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다. 갸름한 얼굴에 3줄의 삼도가 뚜렷하고,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넓은 편이다. 어깨 부분에는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고,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명부전]

 대웅전에서 바라본 천왕문 2층은 명부전을 활용되고 있다. 이곳의 사찰은 주변에 새로이 조성되는 고인의 넋을 비는 납골당이 들어서는 지장 보살의 사찰로 자리하려는 듯 하다. 

이 층의 명부전을 찾아본다.

 

[명부전]

2층의 넓은 명부전에는 지장 보살이 모셔져 있고 도명 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좌우에 명부 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만기사의 철불을 직접 보게 되는 기쁨을 맛 보았지만, 본연의 모습이 아닌 개금된 철불과 후불 탱화를 접하면서,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은 나만의 욕심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성시 왜 철불로 조성 하게되고, 그 철불의 본연의 모습은 어떠했고, 그 긴 세월을 어찌 지내다 오늘에 이르렀는지, 보물도 나름의 이력서가 있으면 덜 궁금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여행이 계속 이어져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되는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면 그 나마 일조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다. 오늘의 기록이 앞으로의 역사적인 유물의 자료로 활용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혼자 흐믓해 하며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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