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여든 한번째 - 안동

세종해피뉴스 2022. 7. 24. 01:19

 오늘은 홀로 안동으로 향한다. 무더위에 어머니가 먼 곳으로 이동을 어려워 하셔  대전 주변을 둘러보는 일과를 가졌다. 그간 짬잠이 대전인근의 잠시간의 답사는 적은 분량으로 글을 올리기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접어 둔 사연은 모아 정리하여 올려 보려 한다.  

오늘은 혼자만의 나들이로 안동으로 향한다. 오랜 빗속에 풀배는 벌초를 하기 위해서이다. 작업 후 하회마을 입구의 간장으로 맛을 내는  헛제사밥 육회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함께 고생하여 주신 형님을 배웅 후, 함게 어울려 코로나로 못다푼 형제애를 살려보려,  두 아우들과 춘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봉화에는 많은 문화재와 멋진 누정이 많이 있다. 이번 방문길에 다시 길을 하리라 마음을 먹다  빼앗아 간다. 이내 하회마을의 입구의 풍산읍에 자리한 체화정이 떠오른다. 서둘러 채화정으로 향한다.  

 오늘의 체화정은 화사한 배롱나무와 함께하는  정자의 모습으로 눈길을 한없이 멈추게 한다.  꽃의 유무에 의해 느껴지는 색다른 정자의 모습이 멋지다. 겨울의 체화정을 본일이 있는 지 반문해 보며 눈 덮힌 풍경을  연상해 보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체화정은 진사(進士) 이민적(李敏迪:1663-1744)이 1761년  지었으며, 1971년 중수되었다.  이민직이  형 옥봉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형제의 우의를 다진 장소라 한다. 

체화정이라는 이름은 하지(下枝) 이상진(李象辰, 1710∼1774)이 짓고, ‘체화(棣華)’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시경(詩經)』 소아(小雅)편 '상체지화(常棣之華)'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고 한다.

 

이곳의 접근은 오른쪽에 새로이 주차장 시설이 있고, 다리를 통해 정자로 이동 할 수 있다. 시간을 내어 정자 마루에 앉아 연못의 연꽃을 무심히 바라보며 안정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지나며 느낀  채화정의 특징은  하얀 창문과 그곳에 자리한 팔각 창문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하얀문에 자리한 창문이 이 정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온돌 전면의 창호는 4칸 폭인데 가운데 두 칸은 문얼굴(문짝을 달기 위한 방형 문틀)이 하나로 되어있으며 중앙에 눈꼽째기창(창이나 문안에 다시 열 수 있게 만든 작은 창)을 달았으며, 양쪽 문은 좌우로 열어 가운데 2칸 분합과 포개져 들어걸개로 열 수 있도록 만듦. 정자에서 눈꼽째기창을 둔 것도 드문 것이지만 양쪽에서 문을 열어 포개 가운데에서 들어걸개로 작동하는 분합문의 유형도 극히 드문 유형이다. (나만의 문화유산 참조)

 

안동 체화정은  이지역의 특징인 가운데 하나인 온돌을 둔 유형이다. 건물아래 아궁이를 불을 지피며 겨울에도 기거가 가능했지만 아궁이 불을 지피기 위해 마루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누군가의 일거리라 생각 해본다.

 

건물형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집으로 일반적으로 방 앞쪽에 툇간을 두는 경우 칸살을 방보다 작은 반 칸 규모로 잡는 것이 보통인데, 체화정은 동일 주간으로 잡아 전면에 3칸 마루를 들이고, 후편 어간에 온돌방 1칸을 두면서 좌우 툇간에 마루방을 들인 독특한 간잡이법(건축에서 평면계획으로 방이 배열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배롱나무의 꽃에 의해 정자의 분위기는 정말 다른 것 같다. 예전의 보물로 지정되기 전보다 주변 정리와 화목의 조경관리가 건물을 더욱 수려하게 보이게 한다.

 

2019년 보물로 지정된 채화정은 조선 영조 37년(1761)에 진사 만포 이민적이 세운 정자라 한다. 이름 자인 '체화'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나타내는 『시경』에서 그 의미를 따온 것이라한다.  

 

현판 '담락제'의 글씨는 조선 제일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가 썼다.

체화정이란 현판은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유정원의 친필이며 뒤에 김홍도가 쓴 것이라 전해지는 담락재라는 조그만 현판이 하나 더 있는데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기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특이 한것은 누정앞의 연못에는 보통 하나의 인공섭을 만드는 데,  이곳의 연못에는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이 있다. 

정자 앞의 연지에는 방장(方丈)·봉래(蓬萊)·영주(瀛州)의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을 둔 인공 큰 연못이 정자와 잘 어울린다.

 

멋진 풍경을 벗어 나려니 아쉽지만 가고저 하는 곳은 춘양이라 길을 따라 가다  길옆에 자리한 멋진 누정을 보게 된다. 이곳은 도암정이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정자는 옆에 큰바위들을 함께 한다. 마치 바위는 알과 같은 형태에 가운데 바위는 알에서 무언가 깨어나고 있는듯한 형상이다. 바위에도 나름 내력이 있을 듯하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이바위의 이름은 독바위이다. 천년에 한번 뚜껑을 열어 그 기운을 내뿜는다고 천년바위라고도 한다는데, 마을 사람은 이 세 개의  바위를 마을의 풍요를 지켜주는  쌀항아리, 술항아리, 돈항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는데 하여 알바위로 보는 나의 짐작이 틀림음 알게 된다. 만약 이곳에서 이름난 성씨나 성인이  출현 하였다면 알바위가 되었을 수 도 있겠다 생각해보게 된다.  

 

도암정

도암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황파 김종걸이 효종 1년(1650) 무렵에 세운 정자로 당대 유림들의 교유, 토론, 풍류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간결하게 꾸민 건물로 가운데 칸은 마루를 놓았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 앞의 연못, 인공섬, 큰 바위들과 노송 등 주변 경관과 정자가 잘 어우러져 당시 양반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정자와 옆에 자리한 독바위가 빗어내는 경관은 한국화 소재감이라 생각한다. 연못에 가득한 연잎이 풍성한 느낌을 준다.  마을 앞에 자리해서 인지 유난히 환한 느낌을 주는 정자 이다.

 

 도암정이 있는 황전마을의 "황전"은 누런밭이라는 뜻으로 그 연유는  옛날에 이 동네 앞산에 황학이 떼를 지어 서식하며, 이 황학들이 밭에 날아들면 밭이 누렇게 변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봉하에 접어 들다 본 도암정을 뒤로 하고 춘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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