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일흔 아홉번째 - 거제

세종해피뉴스 2022. 5. 25. 12:21

거제로 향한다. 오늘은 여행보다는 오랜간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보기 위한 길이다. 덥게 느껴지는 날에 고속도로로 급히 이동한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을 가지고 이동하지만 그래도 나선 길이기에 거제의 보물을 잠시 찾아보려 한다.

 

점심 식사 후 고속도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하여 바로 달린다. 통영에서 고속도로를 내려 대교를 지나면서 오랜만에 바다의 내음를 느낀다. 대교를 통과하며 보이는 작은 섬과 이곳의 조선소 풍경, 코를 자극하는 짠내음에 거제를 온 것을 실감한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살짝 길을 벗어나 거재읍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작년 12월 27일에 보물로 지정된 기성관이 있다, 거재에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다. 거제의 자랑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아직 안내판이 보물로 변경되지는 않았지만, 건물의 앞에는 보물 지정을 기뻐하는 현수막이 자리한다. 이제 보물은 진관사 태극기가 2142호 지정되고 2021년 10월 25일 이후 지정 번호가 매겨지지 않는다.

 

기성관은 거제현 관아에 속한다. 거제현 관아는 조선시대 거제현의 일반 행정과 군사 업무를 총괄하기 위한 지방 행정기구이다. 주요 건물은 객사인 ‘기성관’, 수령이 엄부를 보던 ’동헌‘, 하급관리가 업무를 보던 ’질청‘ 등이 있다. 현재는 기성관과 질청이 남아있다. 지금의 거제면 사무소가 있던 곳에 동헌이 자리했었다 한다.

고려말 왜구 침략으로 인한 공도정책 (섬주민을 본토로 옯기는 정책)으로 행정상 공백지 였던 거제에 조선시대 세종 4년 (1422년) 피난 갔던 거제 백성이 돌아오며 거제현 관아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최초는 수월동에서 사동성를 거쳐 단종 1년(1453년) 고현성으로 관아가 이전, 선조 25년 임진왜란시 고현성의 함락으로 관아가 사라져 현종 5년(1664년) 현재의 자리에 새로 지었다 한다.

 

 

거제현 관아는 배산구조와 안산, 관아 배치와 진입로 구조가 시각적으로 뚜렷한 축을 형성하여 진입로-관아건물-계룡산(수정봉)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서울의 ‘광화문 –경복궁- 백악산’과 유사한 지형적 배치를 가진다.

 

[보물 거제 기성관]

「거제 기성관」은 거제현 및 거제도호부의 객관으로서 1665년(현종 6)에 관아가 이곳으로 옯겨 오며 지금의 위치에 지어졌고, 창건 이래, 1726년(영조 2), 1801년(순조 1), 1892년(고종 29)의 중수를 거쳐 1909년경까지 기능을 유지하였다. 이후 20세기 초 객사의 제사가 철폐되면서 보통학교의 교사로 전용되어 사용되다가 일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2007년에는 질청 및 관아 터와 함께 사적 484 호 「거제현 관아」로 지정되었다. 1974년 건물 전체를 해체. 복원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당시는 거제 초등학교 교실로 사용 되기도 했다.

해체수리 시에 종도리 아래에서 창건시의 상량묵서와 함께, 3건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이 상량묵서와 상량문은 승장(僧匠)들이 등장하는 점 등 조선 후기 지방 관아 건축의 건립 상황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 풍부한 회화식 지도 및 사진 등의 이미지 자료도 기성관의 전체적인 원형을 추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기성관]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사방이 탁 트인 마루로 된 웅대한 구조이다. 직사각형 평면을 갖는 단층 팔작집인데, 정청에 해당하는 중앙의 3칸은 그 전면의 지붕을 양 옆의 익헌 부분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 앞에서 보았을 때 솟을지붕을 가진 것처럼 꾸민 점이 특별하다. 

기성관 가운데는 왕의 전폐를 모신 정당이 있고, 좌우 양쪽에 사신이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본체의 좌우 양편에 딸려 있는 방)이 있었다.

 

[기성관 내부]

 

후면에서는 도리칸 9칸 전체가 같은 지붕면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전후면의 지붕면을 다르게 구성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거제현의 다른 건물과 달리 팔작지붕 및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객사가 임금의 전폐가 안치되어 있던 곳이라는 점에서 임금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 보고 있다.

 

[기성관 전경]

 「거제 기성관」은 행정과 군사적 성격을 갖는 남해안 관아의 객사로서 인근의 통영 세병관(국보 제 305호), 밀양 영남루(보물 제 147호), 진주 촉석루(경남 문화재 8호), 여수 진남관 (국보 304호) 비견할 수 있는 규모와 형식, 특히 다른 곳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독특한 솟을지붕의 처리 기법, 인근 지역에서 거제면이 갖는 역사문화 환경적 위상 등을 고려할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기성관 앞은 너른 앞마당과 소나무가 눈에 띈다. 오른쪽의 소나무는 크기나 자태가 오랜간 눈길을 잡아끈다.

 

[기성관 내부]

 너르게 트인 건물은 마치 강당 같아  안으로 올라가 앉아 본다. 시원한 느낌과 거대한 건물에 다소 서늘함을 느낀다. 이 안에서 무슨일이 있었나 궁금하다. 무엇을 위한 것이고 선조들은 이곳서 어떤 일을 했을까? 아직은 찾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겨본다.

이곳은 거제현의 객사로 객사는 왕과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관청에서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한 의식을 향하는 곳이며, 왕이 지방 군현에 보낸 사신이나 왜국 사신을 접대하는 곳이다. 현존하는 관아 건물인 기성관은 거제현의 객사로 중심적 역할을 하던 곳으로 단청이 화려하고 웅대한 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록 동헌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지만 부속 건물이었던 질청이 남아있고 당시 고지도 등의 관련 자료가 많아 당시 읍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유적중의 하나이다.

 

길하나를 두고 있는 질청을 찾아본다. 거제현 관아는 조선시대 거제현의 일반 행정과 군사업무를 총괄하기 위한 지방 행정기구이다. 그 중에서 질청(秩廳)은 하급관리들의 사무실이나 서재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1926년 부터는 등기소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4년 해체 복원된 것이다. 질청은 현재 남아있는 것만 해도 17칸이 넘는 대규모 건물이 ㄷ자형 구조로 되어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거제현의 지도에는 ㅁ자형 으로 나와 있어 일제 강점기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도로와 맞닿은 앞부분이 철거된 것으로 본다.

 

[질청]
[질청내부]

질청의 중앙부분에는 사무를 보는 큰 대청이 있고, 양쪽에는 주거용 방이 있다.

 

[질청내부]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검소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조선 시대 관아의 전형적인 기능적, 구조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은 거제읍 사무소가 자리하고 앞마당에는 커다란 보호수가 만들어준 그늘이 여러 사람의 더위를 식히기 좋은 장소인듯하다.

이제 기성관과 질청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한다.

 

[숙소 로비]
[낮과 밤의 야외풍경]

 

길을 달려 친구들의 숙소로 향한다. 그 곳에서 보이는 뷰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기성관 보물, 그리고 밖의 풍경이 친구들과의 만남의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아니 기쁜가 “하는 공자님 말씀에 추가하여 ”먼길의 보물을 찾아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고 읖조려 본다. 그간의 거제 여행의 주는 경치 구경과 드라이브 이었는데, 기성관이 보물급 문화재로 승격되어 찾아보게 되니 반갑기만 하다. 이를계기로 거제도 보물을 가진 곳으로 거듭나서, 이곳의 새로운 문화재 보전의 디딤돌이 되길 바라본다.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새벽귀가 길은 아내에게 맏겨진다. 눈과 마음의 즐거움에 더하여 오늘은 입과 귀 그리고 모든 것이 즐거운 하루였다는 생각으로 귀가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일흔 아홉번째 - 거제 > 뉴스 | 세종해피뉴스 (xn--vg1b03zi5a71m9wruj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