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쉰세번째 - 청주 - 고인쇄박물관, 직지

세종해피뉴스 2021. 12. 9. 22:46

청주로 길을 나선다. 앞서 청주의 보물은  계산리 오층석탑과 청주 시내 위치한 청주 용화사 석조 불상군 (7구) 그리고 청주 안심사의 대웅전과 국보인 안심사의 괘불탱, 청주 박물관에서 불비상들을 찾아보았다. 

 

오늘은 청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불비상과 함께 소개 못한 박물관의 보물들을 소개 하기 위해 청주 박물관과 또 다른 청주의 박물관인 청주 고인쇄 박물관을 찾아보려 한다.

 

1984년에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의 정의(제22조)에 의하면 문화재를 크게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와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기념물(記念物), 민속자료(民俗資料)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실제 우리가 쉽게 눈으로 보며 접할 수 있는 것은 유형 문화재 이다. 아직 무형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공연을 접할 기회, 지식과 열정이 없어서 이겠지만 접하기가 쉽지가 않다. 유형 문화재라 함은 건조물(建造物) · 전적(典籍) · 서적(書籍) · 고문서(古文書) · 회화(繪畵) · 조각(彫刻) · 공예품(工藝品)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考古資料)를 말한다고 한다고 한다.

오늘은 그간의 여행의 주 소재인 불상, 탑 및 전각 등이 아닌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면서도 도난 방지와 보존을 위해 대다수가 박물관이나 수장고 등 보관장소가 정해져 보존되는 서적류의 보물도 찾아보기 위해 고인쇄박물관을 찾는다.

 

이곳은 1984년 운천지구 택지개발 사업시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에 의해 ‘갑인오월일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라는 명문이 있는 청동금구를 발견, 이 곳이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터 라는 이유로 찾아보게 된다. 청주 시내에는 국보 철당간, 중앙공원, 용화사와 청주 박물관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한번에 많은 문화재를 접하기 용이하다. 이 박물관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청주 종합운동장 부근에 자리하고 있어 함께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

1986년 흥덕사지가 사적 제 315호로 지정되며 1987년부터 5년간 절터를 복원 정비 하고 1992년 청주 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한다.

[직지] 는 독일의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로 인쇄된책인 [42행 성서]보다 70여년 빠른 것으로 최초의 금속활자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책이다.

 

 [직지]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간행한 [백운 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이다. 이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전시회에서 [직지심경]이라 소개되었다.

[직지]를 편저한 백운 화상은 호가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이다. [직지]의 체제는 상하 2권으로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 문헌실에 전하고 있다. [직지]는 백운 화상의 스승인 중국의 석옥선사가 전해준 [불조직지심체요절]에 [선문염송]과 [치문경훈]등에서 그내용을 보완하고, 과거 7불과 인도 28조사, 중국110 선사 등 145 家의 법어를 가려뽑아 307편에 이르는  게, 송, 찬, 가, 명, 서, 법어, 문답 등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사로는 유일하게 신라 대령선사가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직지]의 중심주제는 <직지심체>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불도를 깨닫는 명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이[직지]가 1886년 초대 주한 대리공사인 콜랭드 플랑시에 의해 수집되어, 프랑스로 건너가서 1911년 앙리 베베르가 경매에서 이를 구입 소장하다가, 1952년에 유언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후 1972년 ‘세계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에 출품되어 세계의 주복을 받게 된다. 이후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된다.

 

 

[보관전시중인 고서의 일부]

이 박물관에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인쇄술로 목판, 금속활자, 한글활자 등에 대한 소개와 한국의 고서와 주요 소장 유물이 잘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에 대한 별도 전시관을 통하여 서양의 인쇄 관련한 전시물도 있고, 그리고 목판, 금속활자를 제조하는 과정을  모형과 설명으로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으며,  인접한 청주시 금속활자전수 교육관에서는 국가 무형 문화재 제 101호 김인호 금속활자장의 금속활자 주조과정 시연 및 책만들기 체험같은 실제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박물과 옆의 흥덕사지로 올라본다. 흥덕사지에서 조사된 건물터 위로 복원된  전각 한채가 존재하고, 앞에는 탑을 세워 이곳이 옛 흥덕사지임을 나타낸다. 내부에는 철불과 이곳서 발견된 동종이 있었다. 이 동종은 청주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고 이 동종은 복원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사실 전각 하나로 만으로는 이곳이 [직지]를 인쇄하던 곳이라는 실감을 느끼기 쉽지가 않았다. 사찰의 대웅전 말고 금속활자를 만들려면 여러 기구나 건물이 존재 했었을텐데, 그러한 것에 대한 복원이나 설명이  없음이 아쉽다. 고려 시대의 일이니 전각의 복원과 출토 유물의 보전으로도 대단하나 적어도 그때 쓰인 활자나 기록 등이 더 발굴되어 [직지]의 가치를 더 높였으면 한다

  

 인쇄의 발전 과정과 고서들을 박물관 견학을 통하여 익혔으나, 아직은 눈에 익지 않고 안목이 없는  서책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여러움이 있다. 내용을 모르고 모습만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배우는 자세로 이곳을 찾았지만, 인쇄의 변천과 과정에 관하여는 일게되나, 서책이 가지는 내용의 귀중함을 알기엔 한계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잘 모르는 것이다. 서적에 대한 안목이 없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책을 지나치기가 일 수였다. 이번도 그리 변한 것은 없었다 . 다만 잘 설명 되어 있는  안내문으로 인해 전시물에 대한 이해와 목판 금속활자에 대한 인쇄의 이해는 높였다. 아직 서책의 가치를 논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아름다움이나 시각적, 역사적 의미보다 많은 뜻과 사상이 녹아 있어서 일 것이다.

한걸음 더 다가간 것 같다는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궁금증이 많아도 그 서적의 의미와  만든 배경과 안에 담긴 것을 모르는 내게는 종이와 글이다. 관심을 갖기 늦지 않았나 생각이 들며, 우선은 내가 많이 접하던 문화재부터 충실하기로 한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이니 고서가 잘 보존되는 것 뿐 아니라, 책의 본연의 역활인 많은 사람에게 속에 들어있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근대의 컴퓨터 기술로 책을 복사하고 그 해석도 내놓아 책 자체로의 보관 만이 아닌 우리들에게 유용하게 이용, 활용되게 컴퓨터에서 볼 수 있도록 편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말하자면 보물인 서적들이 온라인 상으로  이미지와 해석을 볼 수 있도록, 그래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교육 하여 주었으면 어떨지 생각하며 박물관을 나선다.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보물을 보러 길을 나선다.

 

이곳 고인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은 보관과 관리를 위해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듯하며, 소장 하고 있는 고서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보물 제 1051-3호&nbsp;분류두공시(언해)권&nbsp;21]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두공부시(杜工部詩)를 성종(成宗) 때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유윤겸(柳允謙) 등이 왕명을 받들어 제주(諸註)를 참정(參訂)하고 한글로 역편(譯編)한 것이다. 두공부시(杜工部詩)라 제명(題名)한 것은 두보(杜甫)가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이며, 분류(分類)는 송조(宋朝)의 분문집주두공보시(分門集注杜工甫詩)를 참고(參考)하고 서명에 관기(冠記)한 것이다. 그리고 원(元)나라 때 편찬된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를 원본으로 두보(杜甫)의 시 1,647편 전부와, 다른 사람의 시 16편에 주석(註釋)을 달고 한글로 언해한 책으로 흔히 ‘두시언해(杜詩諺解)’로 통칭되기도 한다. 이 책은 조선 성종 12년(1481)에 을해자(乙亥字) 및 을해자 병용(乙亥字 倂用) 한글자(字)로 간행된 것이 그 초간본이다. 권두의 서명은 ‘분류두공부시권지이십일(分類杜工部詩, 卷之二十一)’로 되어 있으며, 별도의 저자(著者)표시는 보이지 않고 있다. 판식(板式)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반엽(半葉)을 기준으로 8항(行) 17자(字)를 기본으로 하여 작은 자(小字)와 한글 활자를 함께 배열하고 있고, 판심부에는 ‘두시(杜詩)’의 판심제(板心題)와 장차(張次)가 새겨져 있다. 한글에는 방점(傍點)이 남아 있어 임란 이전의 국어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모두 45장(張)으로 되어 있으며 상태가 양호한 편이나, 전후의 표지(表紙)가 모두 개장(改裝)되어 있다.

 

[보물제 1157-2호&nbsp;성리대전서절요]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김정국(金正國)이 성리대전(性理大典)을 요약하여 4권으로 편집한 후, 그 당시 나주 관청에 보관해 있던 금성목활자(錦城木活字)를 기본으로 하고 부족한 것은 새로 보충하여 성리대전서절요(性理大全書節要) 400부를 간행한 것이다. 권말에 있는 김정국의 후서에 보면, 그 인출경위(印出經緯)는 절요자(節要者) 김정국(金正國)이 중종(中宗) 33년(1538) 여름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의 명(命)을 받고 부임(赴任)한 이후, 도사(都事) 김회백(金晦伯)과 의논하여 금성(錦城)인 나주목(羅州牧)에 있던 목활자(木活字)에 부족자(不足字)와 결자(缺字)를 새겨 보완하여 그해 가을에 간행하였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권 4책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권1의 권두(卷頭)에는 서문이, 그리고 권4의 후미에는 김정국의 후서가 수록되어 있다. 권1의 서문이 끝나고 장을 바꾸어 권두서명이 나타나고 이어서 바로 ‘태극도총론(太極圖總論)’편으로부터 본문이 시작된다. 권두제면(卷頭題面)의 반엽을 기준으로 판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邊欄)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나 간혹 쌍변의 경우도 보인다. 반엽(半葉)은 모두 10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한 항은 19자씩 배자되어 있는 상태이다. 중앙의 판심부(板心部)는 상하로 대흑구(大黑口)가 보이고 있는데, 그 사이로 상하내향(上下內向) 흑어미(黑魚尾)가 새겨져 있으며, 흑어미 안으로 판심제(板心題) ‘성리대전(性理大全)’과 권장차(卷張次)가 새겨져 있다. 각 책의 권두에는 신선로(神仙爐)와 종형(鐘形)의 장서인(藏書印)이 날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유명인사가 소유했던 장서로 보인다.
권4의 말미에 후서(後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후서 끝에 ‘가정무술추 문소김정국근지(嘉靖戊戌秋 聞韶金正國謹識)’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이 책이 바로 중종 33년(1538)에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전책(全冊)의 표지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본문의 경우도 충식(蟲蝕)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인 점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전체분량은 권1은 64장(張), 권2는 56장, 권3은 62장, 권4는 67장이다.

 

[보물제1407호&nbsp;법망경보살계본 및 수보살계법]

범망경보살계본 및 수보살계법은 후진의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권하(卷下)와 이 경전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보살계도량이나 수계법회 등의 절차와 규범인 북송의 연수(延壽)가 집(集)한 수보살계법(受菩薩戒法), 그리고 진(陳)나라 혜사(惠思)가 찬(撰)한 수보살계의(受菩薩戒儀)로 되어 있다. 『범망경』은 승조(僧肇)의 후서(後序)에 따르면 112권 61품으로 구성된 범문이 있었으나 전체는 한역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하권만 따로 뽑아 보살계본으로 삼아 불교도의 신행 규범으로 삼고 있다. 내용은 보살이 지켜야 하는 10가지 무거운 계(十重大戒)와 십선계(十善戒) 등 보살이 지녀야 할 몸가짐과, 말씨와 마음자세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실천덕목을 담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한국불교 종단의 조직 및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책은 종이 앞·뒷면에 모두 인쇄되어 있는 등 인쇄상태 및 인쇄조건, 그리고 발문의 내용 등으로 보아 1306년 이후에 고려인들에 의해 원나라에서 판각하여 원나라 종이로 찍어낸 판본으로 추정된다.

 

[보물제&nbsp;1408호&nbsp;금강반야바라밀경]

이 책은 목판본으로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을 바탕으로 육조 혜능(慧能)이 금강경에 대해 해석한 내용을 붙인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줄여서 ‘금강경(金剛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법이 실체가 없으므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공(空)사상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제10의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서는 청정한 마음으로 외적인 대상에 집착함이 없이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것(應無所住而生其心)’을 가르친다. 이는 혜능 및 여러 고승들을 깨닫게 한 유명한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 조계종의 근본경전으로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이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개판된 점이 주목되는데, 곧 원흥사의 육구(六具), 박지요거사(朴知遙居士) 등이 발원한 사찰판이다. 이는 1377년의 흥덕사(興德寺) 간행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이전에 간행된 판본으로서, 청주지역이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흥지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보물 제&nbsp;1409호&nbsp;대방광불화엄경소 권48,64,83 ]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주본(周本))을 저본으로 당나라 징관(澄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해한 교장류(敎藏類)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통칭되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러한 화엄경에 화엄학의 대가인 당나라 징관이 주소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것이다. 이 판본은 저자인 정원(淨源)이 의천(義天)에게 상인 서전(徐전)을 통해 보낸 목판으로 주본(周本) 화엄경을 주해한 주소본(註疏本) 120권을 찍어낸 것 가운데 권48, 64, 83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표지는 상즙(橡汁)으로 염색한 종이를 사용하였고, 중앙의 제첨(題簽)은 금니로 그리고 그 안에 표지서명(簽題) 또한 금니로 기재하였다. 판식의 특징은 상하단변으로 계선이 보이고 있으며, 한 행은 15자씩 배자되어 있다. 한 장은 5면씩 접혀 있으며, 점련부분에는 판수제(板首題)가 기입되어 있어 작업과 관리의 편리를 위한 의도로 고려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질(紙質)은 저지(楮紙)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표면의 광택과 묵즙(墨汁)의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도침(搗砧)한 흔적이 보이는 상품의 고려지이다. 그런데 권83의 말미에 ‘가정(嘉靖) 31年(1552) 임자(壬子)…시봉(侍奉)…’라는 묵서(墨書)가 남아 있는데, 인출기(印出記)로 보기 어렵고 소유를 나타내는 장서기(藏書記)로 생각된다. 자체(字體)는 송판(宋板)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구양순체로 보이며, 인쇄면의 필획이 살아 있어 비교적 초기에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주본(周本) 화엄경소 120권 가운데 3책으로서 당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불서(佛書) 수집 상황과 더불어 송(宋)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문화교류를 알게 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는 불경이라하겠다.

 

[보물 제 1653호&nbsp;자비도량 참법집해 ]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는 활자본을 번각한 목판의 인본(印本)이며 조판의 형식, 글자의 모양 및 크기 등을 비교하여 볼 때 이 책의 저본이 된 활자는 『직지(直指)』를 찍은 ‘흥덕사자(興德寺字)’로 추정되었다. 비록 고려후기에 찍은 바탕본(금속활자본)은 전하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고려후기에 <직지>외에 또 다른 금속활자본의 존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간접적이나마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의 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이 책은 동일한 판본이 공인박물관에 1부가 소장되어 있을 뿐 매우 희귀한 전적이다. 때문에 이 책은 우리나라 고려후기의 금속활자 인쇄본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이며, 또한 불교학의 교학적(敎學的)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물 제 1654호 신편 산학계몽 ]

조선 초기의 과학관련 서적은 전해지는 것이 많지 않은데, 『신편산학계몽(新編算學啓蒙)』은 원나라에서 수입한 산학서(算學書)로서, 『양휘산법(楊輝算法』, 『상명산법(詳明算法)』등과 함께 전문기술직의 고시과목으로 수학교육의 교과서적인 서적이다. 이 책은 15세기 전반 안평대군의 글씨로 주조한 경오자(庚午字)로 인출한 것으로 낙권(落卷)이나 결장(缺張)이 없이 완전한 상태인 점에서 매우 귀중한 서적이다. 또한 권말(卷末)에는 세종조(世宗朝)의 경자자(庚子字)와 갑인자(甲寅字)의 주자사실(鑄字事實)을 기록한 주자발문(鑄字跋文)이 있어 조선 초기 활자 인쇄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더욱이 경오자로 인출한 책들은 전본(傳本) 중에 완질(完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특히 소중하게 평가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책은 조선전기의 과학사 및 도서출판사 그리고 금속활자인쇄술과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nbsp;1655호&nbsp;노좌권재구의 ]

 『노자』에 대한 주석서는 수없이 많지만 본문만큼이나 주석도 난해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하여 임희일의『노자권재구의(老子 口義)』는 서명에서 밝히듯이 말로 설명하듯이 쉬운 구의체(口義體) 문장으로 분명하고 뚜렷하게 서술한 관계로 초학자들이 이해하기에 쉽다는 평을 받으면서 동양에서 널리 읽혀졌다. 이 「老子 口義」는 조선에서 계미자(癸未字)에 이어 2번째로 주조된 경자자(庚子字)로 찍은 판본으로 완전한 형태의 전존본(傳存本)이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자권재구의』는 결장(缺張)이나 훼손된 부분이 없이 전권(全卷)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경자자(庚子字)의 인본(印本)과 전본(傳本)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판본학상(版本學上)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인본(印本)을 통해 당시 활자의 모양, 조판의 개량 등 인쇄기술적인 발달상을 살펴 볼 수있어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 인쇄술과 판본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서지학과 도서출판사 연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었다.

 

[보물 제1901-11 호 조선왕의 궤]

*지정사유
의궤(儀軌)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국가전례의 따라야할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국가기록물이다. 또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서 예법을 중시하고 기록을 철저히 보존하려는 조선시대의 우수한 기록문화 중 하나로서 국가지정문화재의 가치가 충분하다.
*내용(연혁,유래,전설)
〈조선왕조의궤〉는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한 것이다.〈조선왕조의궤〉는 제작 방식에 따라 필사본과 활자본으로 구분할 수 있고, 열람자에 따라 어람용(御覽用)과 분상용(分上用)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왕조의궤〉에 기록된 주요 행사는 왕실의 혼인을 비롯하여 왕과 왕세자의 책봉, 왕실의 장례, 제사, 궁중 잔치, 활쏘기, 태(胎)의 봉안, 국왕의 행차, 궁궐 건축, 친농(親農)⋅친잠(親蠶) 행사, 사신의 영접 등 국가나 왕실 행사 전반에 관한 것으로 행사의 과정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각종 공문서를 비롯하여 업무의 분담, 담당자의 명단,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경비의 지출, 유공자 포상 등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행사의 가장 중요한 행렬은 반차도(班次圖)를 통해 표현했다. <나만의 문화유산 발췌>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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