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복사지
장마로 인해 몇 번인가 중간에 발길을 돌리다 더운 폭염의 날씨에 경보를 들어가며 다시 남원으로 향한다. 사적으로 지정되고 많은 보물을 간직한 만복사지를 찾아 보기 위함이다. 왕정동 야산의 만복사터는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지어진 것으로 전한다. 남쪽을 향한 3당과 목탑을 가진 사찰로, 기록에는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35척(약 10m)의 철불상이 있는 큰 절이었으나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 버렸다고 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라는 한문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며, 고려시대에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곳이다.

만복사지는 이전과 길이 바뀌고 넓게 정비되어 사지로써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길의 둑방에 자리하던 당간지주와 석인상이 너른 공터에 자리하여 이 곳이 사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만복사터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깃대를 고정시키는 구멍이 세 군데이며, 아래부분과 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어 그 이하의 구조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면이 고르지 않고 투박하고 장식이 없는 모양으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본다고 한다. 바로 인접하여 석조 인상상이 자리한다.

모습이 독특한 석조인왕상은 3면에 인왕상의 머리와 신체를 조각하고 나머지 한면은 편평하게 다듬어 두 개의 홈을 내었다. 이는 고려시대 유일하게 한 쌍으로 남아있는 단독상이며, 2기가 당간지주의 용도로 조성된 인왕상으로 추정한다. 이곳 국도 24호선 도로 갓길 보호철책 옆에 1기만 있던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 방문하니 두기로 복원되어 있다. 석인상은 육계가 있으며 귀가 길고 안구가 튀어나온 형상으로 전신이 3.75m에 달한다고 한다.
사지 안으로 따가운 햇살을 참으며 다른 보물을 찾아본다.

오른쪽 건물로 가는길에 석탑의 부재와 오층석탑이 보인다.


전각 주위를 둘러 낮게 만든 것이 마치 성의 주변의 해자와 같아 의아하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2m의 불상으로 만복사 창건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민머리의 정수리에 육계가 둥글게 솟아 있고, 살이 오른 타원형의 얼굴은 눈·코·입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함께 원만한 인상을 보여준다. 오른팔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팔은 아래로 내려서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던 것으로 보이며, 손은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윗부분이 없어진 머리광배에는 활짝 핀 연꽃잎과 연꽃줄기가 새겨져 있고, 몸광배에는 연꽃줄기만이 새겨져 있으며, 이 들의 바깥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는 각각 2구씩의 작은 부처가 들어 있다. 불상의 뒷면에는 선으로 음각한 부처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자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다.

거대한 하나의 돌로 상·중·하대를 육각형으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며, 하대는 각 측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장식하고, 윗면에는 연꽃모양을 조각하였다. 중대는 낮으며, 짧은 기둥모양이며, 상대는 중대보다 넓어지고, 평평한 윗면 중앙에 불상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진 구멍이 뚫려 있으며, 옆면에 연꽃이 새겨졌던 부분은 주변 전체가 파손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에서 벗어난 6각형이며, 안상 안에 꽃을 장식한 고려시대의 유행양식으로, 1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름의 보물로 지정된 이유가 되는지 반문하며 앞으로 잘 보존되기를 바라본다.
사지를 나서며 바로 인접한 곳에 자리한 문화재를 찾아본다.

이 곳은 1642년 (인조20)에 창건되어 벼슬을 한 이와 유생들이 모여서 경사를 연구하고 과거에 대비하여 향풍을 바로 잡고 선비를 양성하던 곳으로,1879년 중건하고 전토를 마련하였다 한다. 이후 양사재 동쪽에 인산영당을 건립하여 향약의 창시자인 여대균과 주희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봉향하면서 향약을 관장하다가, 1904년 향약소를 양서재로 옮기고 대방향약소라 편액하며 향약을 실시하였다 한다.

내부를 들어가 볼 수는 없으나 낮은 담넘어로 보이는 동방 1간, 대청 2간, 서방 1간, 중간 3간, 고사 4간 건물에서 옛 선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 더위에 지치리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넓지 않은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태양볕에 땀도 다 마르는듯 하다. 서둘러 오른 차의 에어컨에 몸을 식히며, 더위로 열을 품은 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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