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다란 사찰을 둘러보고 다소 지친 몸으로 돌아 나오며 성보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이곳 송광사와 관련 된 소장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입구를 지나 들어서니 커다란 궤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 보관되어 있는 괘불탱이 사진으로 알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송광사지’ 등 기록에 1677년 홍철 스님 증명으로 그린 괘불이 있었다 하나 1951년 전쟁으로 소실된 후 10년 뒤인 1961년 여름 다시 괘불을 제작하여 성보박물관이 개관되며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종 들과 사찰에서 사용하던 각종 집기와 스님들의 용품 그리고 많은 사찰 관련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송광사에서 사용하던 가마가 특이하게 보인다. 전시된 유물 중 보물을 중심으로 관심을 가져본다.

높이 20.6㎝, 지름 6.6㎝의 청동제로 도금의 흔적이 있으며, 4각형이고 각 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긴 손잡이가 있으며 보수 흔적과 손잡이 윗부분도 손상이 있다고 한다.
몸체 각 면엔 굵은 돌출선을 돌리고, 그 테두리 안에 용 한 마리와 구름무늬를 세기는데, 각면의 무늬는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듯 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국사전에 관한 전시관에는 나라의 큰 스님 16분의 진영을 모시고 덕을 기리는 곳이 국사전이라는 설명과 모셔진 16분의 진영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고 3분의 진영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1780년에 조성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약한 보조국사 지눌과 15인의 고승 진영으로, 쾌윤(快玧)이 수화사가 되어 제작하였다 한다.

1995년 국사전 후면에 흙벽을 뚫고 침입한 도난으로, 16점의 진영은 1세, 2세, 14세의 3점을 남기고 모두 도난당하며 아직도 행방을 몰라 현재는 3점이 소장되어 있다.

1990.09.20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로, 원래 16폭이 지정되나 현재 송광사에 3점만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 세로 134.8㎝로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진영 아래 그간 접하지 못한 보물을 대한다.

경패는 불경을 넣은 나무상자에 경전의 이름을 적어 사용하던 것으로, 송광사의 경패는 총 43개로 상아패 10점과 목제패 33점이라 한다. 표면에 액(額)을 만들어 불경의 명칭과 번호를,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 학무늬 등 문양으로 장식하고, 뒷면에는 방형의 구획 안에 보살, 나한, 신장상 등을 돋음새김 되어 있다고 한다. 상의 위쪽에는 장막,격자창을, 아래에는 연화대좌, 난간 등을 조각하고, 방형 구획 아래에는 정(貞), 주(周), 진(晉), 하(何) 등의 함호(函號)가 연꽃, 집 등의 모양 안에, 측면에는 둥근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 되며, 이 경패는 송광사 제6세 원감국사가 1278년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거란본재장경을 송광사로 이윤할때 함께 온 것이라 한다.


송광사의 16번째 국사인 고봉화상이 소지했던 원불(願佛)로 , 양편 문 내벽에 문짝이 있고, 내부벽에 불·보살 등을 양각으로 조각하고 있다. 중앙 주존불은 대일여래불로 금강권인을 하고 있으며, 왼쪽에 노사나불과 오른쪽에 석가여래가 각각 협시불로 배치되고, 아래에는 두 제자와 보살상이 앉아 있는 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감에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문비상인데, 일반적으로 문비에는 인왕상이 배치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들 문에는 오른쪽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과 왼쪽에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큰절이나 박물관에서 느끼는 벅참이라는 감정이 이곳에서도 발동된다. 그리고 귀해서 아니면 보존을 위해 공개 되지 않은 문화재들에 관한 아쉬움도 뒤 따른다. 오늘 방문에 만나지 못한 유물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자료로 알아 본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나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이라 알려져 있다. 불감은 3부분이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본존불이, 오른쪽 방에는 보현보살이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고, 왼쪽 방에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교장(敎藏)을 원본으로 다시 찍은 것 가운데 하나로,『법화경』에 대한 당나라 혜정(慧淨)의 주석서 10권 가운데 권 제1, 2를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나무에 새겨서 닥종이에 찍었으며, 크기는 세로 36㎝, 가로 35㎝이다. 각 권의 끝에 있는 간행기록을 통해, 고려 헌종 1년(1095)에 남궁예가 글을 써서 처음 간행한 것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다시 새겨 찍은 것 가운데 일부가 전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번 방문에 보지 못한 응진전에 눈여겨 볼 만한 보물 들을 지나침을 아쉬워 하며, 다시금 방문해야 하는 핑계거리로 삼는다. [보물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십육나한탱] 과 [보물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그리고 천연 기념물인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와 산재된 유형문화유산을 위하여 다시금 이곳 순천을 찾아보려 한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보물을 가진 선운사가 자리함도 잊지 않고, 이러한 많은 보물을 가진 곳은 한번의 방문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스쳐 지나가는 보물 관람객에서 조금은 벗어난 자세로 유물의 가치를 알아 보려하는 탐구자로의 자세로 여행을 하다 보니 한번에 많은 것을 접하는 것은 왠지 가슴을 답답하게도 한다. 이곳 순천의 선운사도 그래서 예전 처럼 발을 선뜻 들여 놓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순천을 벗어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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