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사
순천 송광사로 길을 잡는다. 일전의 송광사의 한 풍경에 매료되어 이를 그림으로 남겨 보려는 동행인의 요청이 있어 송광사로 나서는 길이다. 우선 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있는 사찰을 방문 시 느끼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이 자리한다.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 법보, 승보) 중 하나인 승보사찰로서, 신라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시작하여,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대찰로 중건된 후,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곳이라한다. 경내에는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보 ‘송광사국사전’ 등 4점, 보물 27점 등 다수의 중요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찰로 들어서며 하루 만에 이 많은 문화재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며 한번 이상은 더 방문해야 할 느낌을 갖는다.
사찰로 들어서는 길을 오르면 계곡에 설치된 누각을 가진 홍예교를 만난다. 한편에는 극락교와 청량각이라는 현판을 가진 다리와 누각이 함께하는 누다리이다.
사찰의 일주문인 조계문를 들어서기 전 계곡에서 보이는 양반집 마루를 가진 사랑채 같은 건물이 나온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보이는 육감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선다. 오늘 우리가 다시 보려한 모습이다. 이곳 저곳을 옮기며 모습을 담아 본다. 여러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찰을 향하며 일주문을 지난다.
2023년 보물로 지정 된 조계문은 건립연대가 확인되지 않으나 1802년(순조 2) 중창의 기록으로, 그 이전에 세워진 것이라 본다고 한다. 정면에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라는 현판이 세로로, 내부에는 ‘승보종찰조계총림’이라는 현판이 가로로 걸려있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 지붕으로, 공포는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 공포 구조이다. 주기둥의 양쪽과 앞뒤로 창방 모서리 네 곳에 팔각형의 보조기둥을 세우고, 주기둥 안쪽 상단에 용두를 둔 조선 후기에 자주 보이는 장엄이라 한다.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폐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혼백을 목욕 시키는) 세월각과 척주당 이며, 세월각은 여자영가 ,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라고 한다.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삼청교)와 그 위에 지은 건물(우화각)로 삼청교는 일명 ‘능허교’라고도 하며,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들고,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조선 숙종 33년(1707)에 만들고, 영조 50년(1774)에 보수하였다 한다. 우화각은 들어가는 입구는 옆에서 볼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 나가는 쪽은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이는 나가는 쪽의 지붕이 옆 건물인 천왕문과 가까이 닿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본다.
우화각과 맞닿는 곳에 자리한 2024.04.02 보물로 지정된 사천왕문은 최초 창건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1612년(광해군 1) 중창된 기록이 있는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 2고주, 5량가 다포계 맞배건물이며, 천왕문 내부에는 팔각 단면의 심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구조적으로 보완하고, 사천왕상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1951년 전쟁중 불탄 뒤 1961년에 중창하고, 1988년‘아(亞)’자 형의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지어, 석가모니불과 연등불·미륵불 등 삼존불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각 부처님이 좌우에 관세음보살·문수보살· 보현보살·지장보살 등 4대 보살을 모시고, 천정은 닫집으로 꾸며져 있다. 웅장함의 감정을 가지고 이웃한 보물로 지정된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관음전으로 향한다.
대웅전과 같이 관음전 내부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관람자의 예를 갖추어 눈에만 담기위해 좌선하고 머뭄을 가져본다.
보물로 지정된 불상은 유리상자로 보관되어 있고, 그 모습이 눈에 익어 보인다. 복장되어 있던 저고리와 발원문에 1662년 궁중나인 노예성이 경안군 내외의 수명장원을 위해 발원하고, 경안군 내외와 나인 노예성, 박씨, 당대의 고승인 취미수초 등이 시주하여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와 금문이 조각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제작시기와 조성주체가 밝혀져 있는 조선후기 불상으로, 불상중에서도 높은 조각적 완성도를 보인다고 한다.
관음전 옆 담으로 구획된 스님들 거처에서 하사당의 특징을 본다.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덕을 기리는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라 한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짓고,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한다. 앞면 4칸·옆면 3칸에 人자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으로, 천장은 우물 정(井)자에 연꽃무늬로,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으로 송광사 하사당과 같은 시대로,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라 한다. 건물의 모습도 내부에 모셔진 16분의 영정도 궁금해 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약사전은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 규모가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법당이다. 앞과 옆면이 모두 1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존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의 건물로 추정한다고 한다.
느티나무로 된 비사리구시는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통리 봉갑사 근처 마을의 느티나무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었다고 전하며 용량은 2600여리터로 큰행사에 밥 담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찰을 둘러보다 남은 보물을 보러 성보 박물관으로 향한다.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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