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일흔 아홉번째 - 안동

세종해피뉴스 2025. 1. 2. 00:16

친구들과 함께 안동의 친구의 부름에 응하여 안동의 황토길을 찾아 나선 길이다. 대전 계족산의 황토길에 매력을 느끼는 친구들이 안동 땅을 밟아, 이 곳의 황토길을 탐방하는 길, 어설픈 걸음으로 따로이 뒤쳐저 홀로 도는 길을 택하고는, 이전 보다 걸음이 많이 나아졌다는 격려에 기쁜 마음으로 황토 길의 탐방을 마치고 이제 문화재 탐방길을 나선다.  도청앞에서 차로 이동하여 옛 제비원 불상을 찾아본다.

 

[보물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볼수록 신비로운 이천동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신체는 선으로 나타내고, 머리는 따로 올려놓은 높이 12.38m인 불상으로, 고려시대 불상으로 앞면과 달리 불두의 뒷 모습은 손상되고, 입술을 붉게 치장한 모습이다. 근간에는 경북 주변의 마애불에서 발견되는 도색의 흔적으로, 마애불을 조성시 도색을 하기도 하였다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이 마애불도 오랜 풍파에 다른 색은 퇴색하고, 붉은 색이 입술부분에 남은 것은 아닌지? 잠시 머물다 자리를 옮겨 안동댐으로 오르는 길에 자리한 임청각으로 향한다.

 

[보물 제 182호 안동 임청각 군자정]

 

 안동 임청각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1963년 보물 제182호 안동 임청각정침군자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안동 임청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이기도 하다.

 

[군자정]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로, 앞면 3칸·옆면 2칸 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있으며, 내부는 4개의 방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둘러 난간을 세우고, 출입은 두 군데에 놓은 돌층계를 이용한다. 

 

[보물 제 182호  안동 임청각]

 

임청각은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1515년(중종 10)에 건립한,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집으로,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남향집인데, 중앙선 철도부설 때 50여 간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고, 현재는 예전 99칸 집의 흔적만을 가지고 있다.

 

[ 임청각과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전시실]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임시정부 국무령(임시정부 2차 개헌 때, 국가수반)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11명이 임청각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애국시인 이육사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며느리인 이중숙 여사의 친정 종손자이며 손부 허은 여사와 내외종(고모의 아들 ) 관계로, 어려서부터 존고모 집인 읍내의 임청각에 드나들며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건물벽은 작은 박물관으로 독립운동에 관한 많은 자료와 이 집안의 독립운동사가 전시되어 있다. 

 

[임청각 안채]

 

 임청각에서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제 관헌이 1942년에 집 앞마당과 집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현재는 규모가 70칸 정도로 축소된 채 낙동강 풍경과도 단절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철길이 놓여 높은 선로의 둑이 사라져 강변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된다.                                                                            

자료를 통한 옛 임청각의 모습과 규모를 짐작하여 본다. 이제 임청각앞에는 철길이 없이 안동댐으로 오르는 큰길이 자리한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없어진 철길로 인하여 확연히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법흥사지 칠층 전탑만이 아니다. 탑 앞에 자리한,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도 우리에게 모습을 들어내어 보인다.  이후식 (1653∼1714)이 조선 숙종 때 안채를 짓고 이어 사랑채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손자 이원미가 마저 짓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북정(北亭)'은 영조 51년(1775)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순조 24년(1824)에 대수리를 하였고, 1991년에는 안채의 정침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지어진 중문간을 들어서면 사각형의 안마당이 나오고 이를 둘러싸고 비교적 큰 규모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왼편에서 앞쪽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마루방에 ‘정우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고 한다.
 
[영모당]

 

 이곳의 후손들이 기거하는 공간이 아닌 영모당은 부분 개방이 되어 있어 차를 주문하고 영모당에서 마실 수 있는 기쁨을 맛 볼수 있다. 대청은 앞에 넓은 연못이 있는 별당건물로 ‘영모당’의 현판이 있다.

 

 
이곳을 들어서서, 차를 마시며, 한옥의 건물 안에 진열된 책들 속에 둘러쌓여 친구들과 가져보는 담소가 우리의 격을 한 것 높여주는 듯 하다.  

예전에 이 종택의 문이 잠겨 있어 보기 쉽지 않은 국보인 법흥사지 칠층전탑의 한쪽면을, 오늘은 이 종택 안에서 담너머로 관찰 해본다.

 

[예전의 모습]

 

 예전의 종택 앞의 탑의 모습을 가져와 본다. 앞은 철길에 막혀 큰 길과는 굴로 연결되어 있고, 사방이 막혀 큰 탑의 모습을 담기에는 주변이 좁은 환경이었다.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이제는 그 모습을 탁트인 사방에서 볼 수 있게 된다. 흙벽돌로 만든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전탑으로 추정되는 이탑을 머리를 곧추세우지 않고 멀리서 여유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탑은 1단의 기단 위로 7층의 탑신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과 사천왕상을 세우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과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이 있다. 탑신은 진한 회색 무늬없는 벽돌로 쌓고, 지붕돌은 위아래로 계단모양 층단의 일반적인 전탑양식과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높이 17m로 국내의 가장 크고 오래 된 전탑으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로  목탑을 모방한 전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럿이 함께 한 안동 여행의 남자 들의 수다 속에서 하루를 건강 이야기와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곁들이며 식사 속에 마무리 하고, 일상을 찾아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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