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아흔 여덟번째 - 증평

세종해피뉴스 2023. 3. 30. 22:19

증평을 방문한다. 증평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없지만 곳곳에 이에 준하는 유형 문화재들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이곳에 자리한 불상들을 찾아나서 본다. 

먼저 남하리로 길을 들어선다. 이곳에는 증평 민속 체험 박물관이 잘 조성 되어 있으며, 이곳엔 안뜰과 질벌뜰을 둘러싸고 마을을 이룬 증평리·사곡리·용강리·송산리·미암리·남하리 일원등에서 전승되어 온 장뜰두레농요의 전승관도 있다. 또한 두레관에서는 두레농요에 사용되는 전통악기 등 관련 물품 뿐만 아니라 ‘장뜰두레농요보존회’의 시연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민속놀이 마당의 둔덕위에 남하리 석조 보살 입상이 자리한다.

 

 

잘 조성된 주변환경 속에 자리한 불상은 작은 2구의 불상과 함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으로  1949년 마을 뒷산에 성주사를 세운 윤월인 스님이 불상들을 모아 다시 세웠다가 한국전쟁 후 마을의 수호부처로서 주민들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발 아래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이 불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왼손을 가슴부분에 들어 연꽃송이를 받치고 있는 보살상이다. 보관을 써서 머리부분이 상당히 큰 편이고, 어깨가 좁으며 몸의 양감은 편평하여 전체적으로 길쭉한 사각형의 형태를 보인다. 미소짓는 얼굴의 표정이 잘 조각되어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가슴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되었고 아래부분에서는 두 다리에 둥근 옷주름이 늘어져 있다.  전체 높이가 350㎝의 거대한 크기로 이제는 눈에 익은 고려시대 충청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작은 두 불상도 모습이 개상 있으면 코나 모리 자체가 큼직믐직 하게 강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셋 모아 놓은 구성이 불상 혼자만이 외로이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 이채롭고 신선한 느낌이다. 

 

 

관심이 있는 장소는 남하리사지에 있는 마애불과 석탑이다. 옛날 사찰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남하리 사지를 찾아 간다, 이곳의 접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좁은 마을 안길을 지나야 한다. 실제 이곳은 잘 정비되고 전각을 지어 마애불을 보호 하고 있다. 처음 방문때  마치 숨겨 놓은 보물을 찾은 한 기쁨을 맛 본 곳이다. 오늘도 가는 길은 변함없지만 진입 초입에 새로운 집에 생겨 공사중이다. 앞으로는 진입로도 생기면 찾기 쉬운 곳이 되어 이 곳도 사람의 발길이 잦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하리 사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남대산을 배경으로 동향한 기슭에 남하리사 절터가 있다. 남하리 사지는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온 사찰 터이다.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 남하리사지는 동향한 산기슭에 자리한 절터로, 좁은 계곡의 경사면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웠던 작은 암자터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삼층석탑과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남아 있다. 

 

[남하리 사지 삼층석탑]

1884년 먼저 석탑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자연바위의 윗부분을 다듬어 네모난 받침돌을 놓고는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탑신의 1·3층 몸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2층 몸돌은 1층 지붕돌과 한 돌로 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높게 새긴 점이 특징적인데,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잘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각부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마애불] 199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되었다.

 

암벽의 3면에 모두 5구의 불·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에 본존불과 좌우에 보살을 조각한 1면이 있고,  그 암반의 북면에 여래입상이 별도로 새겨졌다. 삼존불이 있는 바위의 남쪽 앞 정면 삼각형의 바위에는 한쪽 다리만 올리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바위는 석영이 많은 화강암이라 부식이 잘 되어 불상의 보습이 선명하지 않아, 잘 살펴보지 않으면 5분을 찾기 쉽지 않다. 5구의 마애불상은 모두 원만자비형의 인상과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특징과 남하리사지의 다른 유적으로 보아 이 마애불상군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원래 바위는 자연에 노출 되어 있던 것을 누각을 지어 보호 하고 있다. 바위뒤편에는 부처님이 자리한 바위가 가라져 생긴 굴 같은 길이 있어 잠시나마 탐험의 기분도 느끼게 된다. 지표조사 결과 제작시기를 삼국시대까지 소급해 볼 수 있는 당초문 암막새와 조선후기의 철화백자편이 출토되어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읍내로 들어서면 증평읍 송산리 에 자리한 불상을 찾아 미륵사로 향한다. 읍안에 낮으막한 동산에 자리한 미륵사의 옆에는 커다란 나무와 단청없는 전각속의 불상이 자리한다. 

 

[증평 미암리사지 석조 관음 보살입상]

 석조관음보살입상은 증평읍 미암리 사지에서 출토되었으나 현재는 증평읍 송산리 미륵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1957년에 마을에서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 아래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98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260㎝이며, 머리에는 화불을 양각한 보관을 쓰고 있다. 눈썹 사이에는 동그란 백호가 양각되었으며 볼이 넓은 사각형의 얼굴이다. 코와 목에는 시멘트로 보수한 자국이 있고 목의 삼도가 뚜렷하고 몸체는 비대한 느낌이다. 보살의가  불의 형식의 통견으로 보살상이 천의가 아닌 불의는 이례적이라한다.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며 대표적인 작품이 충청남도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이며, 가깝게는 증평읍 남하리 석조보살입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충청일대의 친연성이 있다.

오른손에는 연꽃가지 하나를 들어 가슴으로 올렸고 왼손은 배 아래에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다. 보관의 화불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로 보고 있으나 미륵보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보살입상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으며, 보관 위에 놓였던 보개석으로 추정되는 6각형의 석재가 있었으나 유실되었다.

 
잘 정비된 주변과 커다란 느티나무와 같이 자리한 모습도 감동이었지만, 단청이 채색되지 않은 전각에 눈길이 간다. 많이 보아온 단청의 전각보다 나무 본연의 색을 가진 전각이 나의 맘을 뺏어간다. 

또다른 모습의 석불을 찾아 광덕사로 향한다 1980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광덕사에 모셔진 석조여래보살이 자리하는 곳이다.

 

[광덕사 석조여래 입상]

공덕사에 도착하니 전각에 자리한 석불이 방문에 화단하고 있다. 먼 발치서 예를 표하고 다가가 본다.

 

[광덕사 석조여래입상]

앞선 불상보다 가정 먼저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다.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광덕사에 있는 전체 높이 4.8m, 불상 높이 4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긴 얼굴에 눈은 반쯤 뜨고 정면을 바라보며, 목에는 3개의 줄 삼도(三道)가 있고, 귀는 긴 편이다. 위엄이 있으면서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는 신라말이나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받침대는 연꽃무늬가 장식된 둥근 형태이다. 새로이 단장한 커다란 전각에 오후 늦은 시간의 적막함 속에 자리한 불상은 커다란 인상에 비해 외로워보이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형 문화재는 언제고 보물로 지정되어 보다 낳은 대접을 받게 되리라. 이번 증평의 보살상들은 모두 관심과 보살핌속에 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비슷한 형상의 이번 여행에 만나뵌 증평의 보살님들을 기억해 내며 다른 점을 기억해 내보려 해본다. 이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돌아가면 다시한번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관련기사] 如一同行 아흔 여덟번째 - 증평 > 뉴스 | 세종해피뉴스 (xn--vg1b03zi5a71m9wruj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