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서른번째 - 영천, 청송

세종해피뉴스 2021. 7. 22. 22:38

영천의 선원마을로 들어선다.

 

고택

 

연정이 있는 영천의 또 다른 종택인 연정 고택은 영천시의 임고면에 있다. 연정 고택이 있는 선원마을에는 다소 낡지만 옛스러움을 가진 고택이 여럿 있다. 

연정 고택은 선원마을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있다. 주변에 있는 송원고택, 교동 고택, 괴헌고택 등은 선원마을을 그야말로 고택마을로 불리게 하고,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며 옛스러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을 이다.

 

연정고택

 

연정고택에 당도한다. 

현재의 주인 정용준 씨의 8대 조가 영조 원년(1725)에 지은 집으로 본채와 정자로 되어있다. 넓은 대지에 연못이 있는 이 집은 안채·사랑채·아래채·곳간채가 전체적으로는 ㅁ자 평면을 이루는 서남향 집이다.

 

안채

 

안채는 ‘일심당’이라고 하며 안방·대청·건넌방·부엌· 광으로 되어있다. 안채는 방주와 납도리로 결구한 3랭가수이 소로수장 물익공집이다. 3칸 크기의 큰 부엌이 안방의 아래로 길게 굽어나가는 ‘ㄱ’ 자집의 형식은 영남지역의 큰 주택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외양간·방앗간·광을 가진 아래채는 안채의 부엌·광을 마주 보고 있으며 방앗간에는 디딜방아가 설치되어 있다. 대문의 오른쪽으로 위치한 사랑채는 사랑방·대청·광·마루방이 배열되어 있다. 곳간채는 대문의 왼쪽에 위치한다.

연못가의 정자는 별당으로서 사랑채 마당가에 따로 떨어져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정

 

본채를 나서 오던 길로 50미터 앞에 냇가의 정자가 나온다. 건축 직후 앞의 연못에서 저절로 연꽃이 피어나 연정이라고 편액 하였다는 초익공의 집이라고 한다. 연꽃이 피기는 아직 일러서인지 운치 있는 경관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연정

 

마당 밖을 흐르는 작은 계곡 쪽을 넓혀 만든 연못은 인공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정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몸채와 정자, 작은 연못의 합리적 구성은 주인의 자연애와 운치있는 생활관, 인생의 지혜를 잘 나타내 준다. 연못의 주변은 큰 나무가 길을 따라 자리하며 연못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연정

 

주인의 기분으로 주변을 이곳저곳 걸어본다. 마을 입구의 함계정사는 보수 중이고, 다른 고택은 계획에 없어, 단풍 드는 가을 이 근처 지나는 길 다시 방문해 보기로 하고 마을을 나선다. 입구의 영천서 귀갓길로 청송의 방호정을 지나는 길을 택한다. 

 

방호정
방호정

 

절벽에 지어진 이 정자는 청송 8경 중의 청송 1경이라 하는 신성계곡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곳의 절경이 보는 곳마다 느낌이 달라 눈에 열심히 담아 보려 하는 마음으로 강 건너편의  여러 곳에서 정자를 바라본다. 1억년전 만들어진 퇴적암 위에 조선시대 학자 조준도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어머니의 묘가 바라 보이는 곳에 세운 것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선시대의 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절벽은  퇴적물이 편평하게 쌓이고 땅속 깊이서 압력으로 단단히 굳어져서 퇴적암이 되어, 수천만 년 전 지각운동으로 여러 방향에서 힘을 받아 퇴적암층이 지표면까지 융기하며 이 과정에서 퇴적암이 기울어진 것이라 한다.

 

방호정

 

길에서 방호정 까지는 철제 다리가 놓여 있어 걸어서 강을 건너 방호정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강을 건너며 보는 변화하는 경치가 무척 다채로워 좋았는데 , 다만 다리가 정자 쪽으로 너무 붙어 있어 왠지 아쉽다는 마음을 갖는다.

 

방호정과 철다리
방호정 내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 조선 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가 생모를 생각하는 뜻에서 모친인 안동권씨(安東權氏) 묘소 밑에 건립하고, 자신의 호를 따 이름붙인 정자로, 푸른 바위와 맑은 물이 휘감아도는 벼랑 위의 절경지(絶景地)에 터를 잡았다.

평면은 전면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大廳)을 설치하고, 대청 뒤에는 2통칸(通間)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의 좌측으로는 부엌과 방 1칸을 돌출시켜, 전체적으로는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자연석 기단(基壇)과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과 서쪽과 북쪽 벽의 각 칸(間)에는 하부에 2단으로 궁창 널을 끼운 세 살 쌍 여닫이문을 달았다.

특히 남쪽에는 각 칸에 4짝 들어 열개 문(위쪽으로 들어 열도록 된 문)을 달아 개울물과 앞쪽의 전망을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하였다. 대청 상부의 가구는 5량가(五樑架)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 외기(外機) 부분에는 우물 반자를 설치하였다.

대량(大樑) 위에는 대접소로를 놓고 보아지와 첨차로 十자형 대공(臺工)을 짜서 종량(宗樑)과 중도리(中道里) 장여[長舌]를 얹었으며, 종량 위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파련 대공(波蓮臺工)을 놓고, 대공의 몸에 직교(直交)하는 첨차를 끼워서 마룻도리 받게 하였다.

 

신성계곡 안내도

 

귀가 길을 이곳에서 인동 길안면으로 연결되는 신성계곡을 따라가는 길을 택한다. 이 길을 신성계곡 녹색길 지질 탐방로라 이름 지어졌다. 안내판을 보면 구불구불 감입곡류천을 따라가며  볼 수 있는 경관이 나와 잇다. 기대를 갖고  신비로운 경관을 내게 보여준 방호정을 뒤로하고  길을 달린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방호정(方壺亭))

 

如一 유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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