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마흔 한번째 - 파주

세종해피뉴스 2021. 10. 2. 13:49

길을 북쪽으로 잡아 파주로 향한다. 파주에 자리한 보물인 파주 용미리 마애불입상과 파주 공효공 박중순묘 장명등을 찾아나선다.

한적한 길을 택하여 국도로 의정부를 거쳐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8 에 도달한다. 도로옆에 자리한 용암사로 입구로 들어선다.

 

 용암사는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다. 고양시 벽제관에서 광탄으로 향하다 해음령고개를 넘는 곳에 있다.

언제부터 사찰이 있었는 지 알 수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고려 제 13대 선종때 보물 제 93호인 용미리 마애 이불입상을 조성한 배경과 절의 창건에 관한 설화가 전하고 있어,

11세기를 창건연대로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전란에 의하여 한동안 절이 소실되었고,  근대에 들어 1930년대 절이 재창건되었으며 ,

1935년 4월 대웅전 3칸을 재건하였다. 한때 혜음사, 대승사로 불리던 사명이 현재 용암사로 명칭을 바꿨다.

 

1954 년 10월에 이승만 대동령, 함부통령, 미대사등 이팜석 칠층석탑 및 동자상 개막식을 거행했고 ,

 

대응전 앞뜰에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기간 방문 시 구국통일, 국태민안 각 한기씩 천일기도 광명등과 봉덕사 종을 본따 안치한 범종이 있다.

 

 

사찰 뒤편으로 산을 오르면 조금 더 오르면 거대한 불상 2기가 시선을 압도 한다.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참조)

사찰에 앉아 불경을 듣는 시간을 가져본다. 독송을 직접하시는 스님의 법문 암송에 마음을 가라 앉혀본다 . 안락감에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솔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뒤로한다는 아쉬움에 길을 나서 다음 여행지로 향한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방촌로879번길 172-34 (오금2리) 에 자리한 파주 공효공 박중손묘 의 장명등은 불을 밝히기 위한 석등으로 사찰, 관아등 공공 건물의 처마 끝에 달거나 마당에 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대체로 조선 전기부터 무덤앞에도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주변이 잘 정비된 묘소는 둘레를 고압 전선으로 보호 한다. 이유를 알수는 없었으나 금줄 같은 선을 넘기가 뭐하여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장명등은 받침대, 몸체, 지붕 등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받침대는 대부분 8각형 기둥 모양이다. 몸체는 그위에 등을 넣을 수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부분으로 화사석이라 고도 부른다. 그위로는 삿갓모양의 지붕을 덮어서 몸체부분은 보호하였다.

 

공효공 박중손과 정경부인의 묘 앞에 있는 2기의 장명등이다. 박중손(1412∼1466)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특히 천문을 관찰하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남평 문씨는 공조정랑 문승조의 딸이다.

 

 

2기의 장명등은 각각 2개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받침대인 대좌와 불을 밝히는 화사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지붕돌인 옥개석과 그 위에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로 구성되었다. 공효공 박중손 묘 앞 장명등의 앞면과 뒷면 화창 모양은 사각형이나 동쪽의 화창은 동그란 원형이며 서쪽의 화창은 반달모양으로 화창의 모양이 매우 특이하다. 화창의 사각형은 땅(地)을, 원형은 해(日)을, 반달모양의 화창은 달(月)을 각각 상징한다. 정경부인 묘 앞의 장명등은 박중손 묘 앞 장명등보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다. 화창은 4면 모두 사각형으로 만들어 서로 비교가 된다.

 

이 장명등은 화사석과 대좌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특히 화창의 모양이 각각 땅과 해, 달을 상징하여 매우 독특하다. 이러한 특수한 수법과 형태의 장명등은 매우 희귀한 예로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는 이 두 보물이외 국립 민속 박물관 파주관에 서화용 한지에 그린 8폭의 천문도 병풍을 해체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전통적인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7세기 이후 서양식 천문도인 신법천문도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신구법 천문도가 있다고 한다.

 

늘 여행 말미에 남는 아쉬움이 한번에 볼 수 없다는 것이나 차분히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오랜만에 발길한 파주의 여행을 마친다.

 

如一 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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