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쉰 두번째 - 영동

세종해피뉴스 2024. 1. 26. 14:29

- 영국사

 

영동의 영국사로 향한다. 몇번의 방문의 기회는 있었지만 모든 문화재를 다보지 못하여 이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곳의 망국봉의 석탑을 보지 못 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데, 그동안 산 위의 탑을 보러가기 충분한 여건이 아니어서 오늘은 그 곳을 찾아 보려고 나서는 길이다.  영동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발견한 안내 표지판을 따라 옥천 두암리의 삼층석탑을 찾아본다.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두암리 절터는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기단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상륜부는 노반과 보개석만이 남은 형태이다. 몸돌과 지붕돌이 한돌로 되어 있다. 이제는 마을로 변한 절터에 홀로 자리하는 탑이 주민들의 관심 속에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삐 영국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만세루]

겨울이라 조용한 영국사 이다. 유명한 은행나무가 옷을 벗어선지 방문객은 드물다. 영국사는 통일신라시대말의 사찰로, 고려 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천주산 국청사라는 이름으로 고쳐 짓고, 원각국사 덕소가 머물며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지륵사로도 불리고 1879년 산사태로 사찰 부지가 묻히는데, 1934년 주봉조사가 대웅전을 짓고 삼층석탑을 현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안내문에 전통사찰 2호라 적혀 있어 1호가 무언지 궁금증이 생긴 사찰 앞에 주차하고 사찰 오르기 전에 앞에 자리한 은행나무에 정신을 뺏긴다.

 

[천태산 영국사 전경]

 

겨울의 잎 떨어진 모습이 천태산의 바위 암릉과 멋진 모습을 만들어 낸다.

 

[천연기념물 제 223호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높이 31m, 가슴둘레 11m에 나이1000살로 국가에 어려움이 있을때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가을의 단풍든 모습이 멋진 나무이다. 사찰로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석탑이 자리한다.

 

[보물 제 533호 영동 영국사 3층석탑]

신라시대의 탑으로 2중 기단에 3층을 올린 모양이다. 원래 옛절 터 위에 넘어져 있던 것을 이곳 대웅전 앞마당에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신라후기 건립 된 화강암 탑으로  복원시 2중 기단의 위층과 아래층이 바뀐 것을 2003년 문화재 보수 정비 작업때 바로잡은 것이라 설명되어 있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 그리고 공포는 내외삼출목으로 쇠서 위에 연화문을 조각한 조선 후기의 수법이라한다. 사찰을 둘러보고 보물을 향해 발을 옮긴다.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보물을 찾아 본다.

 

[보물 제 534 호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이 비석은 고려 의종 7년 선사에, 명종 1년 왕사가 된 원각국사의 비로, 조선금석총람에  명존 10년 한문준이 비문을 짓고 원각국사 비를 건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비의 몸돌은 점판암으로 내용을 알 수 없는 총알을 맞은 흔적이 있다고 한다.

 

[비의 정면 측면과 비]
[비수]

 바닥에 보관 중인 비머리 부분은 4마리의 용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 비의 뒤편에 자리한 두개의 승탑이 자리한다.

  

[승탑]

 

[충북 유형문화재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

승탑의 주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높이 184cm로 연꽃무늬가 위 아래로 한 잎으로 세겨진 것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초기로 추정한다고 한다. 구형에 팔각지붕을 얹은 구조에 보주를 가지고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석종형승탑]

이 승탑도 주인공을 알 수 없다 하며, 양식은 석종형이라 한다. 여러 장식 문양이 조각되으며, 연꽃의 문양이 고려말 조선초 작품 유형이라 한다. 이곳에서 산을 조금만 오르면 보물의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앞선 두가지의 승탑이 원각국사의 탑이 아니라면 그 분의 탑이라 생각해 본다. 산길을 오르며 왜 승탑은 사찰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자리하는 지 궁금해진다. 

 

[보물 제 532호 영동 영국사 승탑]

남쪽의 언덕에 자리한 승탑으로 관심이 없으면 아래 승탑만 보고 미처 보지 못 할 위치이다. 신라와 고려에서 많이 조성 된 8각 원당형의 승탑을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하여 이때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각국사의 유골이 영국사에 모셔졌다는 기록이 비문에 있어, 이 부도가 원각국사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에서 본 두 승탑은 원각국사를 추종하던 다른 스님들 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늘 보지 못하고 돌아 간 탑을 보기 위해 산행을 해본다.

 

망탑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에서 만난 삼단폭포를 지나 다시 오르는 쉬운 길은 아니나 그리 길지 않은 길이라하여 언 덕을 힘들게 올라본다.

 

[상어흔들바위]

산위에서 상어를 만난다. 높이가 8m, 폭이 6m라고 하는데 봉우리를 오르다 갑자기 나타난 모습에 놀라게 된다. 바위에 만들어 놓은 이빨로 인하여 섬뜻한 감을 주는 이 바위는 사람이 혼자 흔들어도 흔들린다고 하는데 흔들다 떨어질까 그만 둔다.

 

[보물 제 535호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상어바위를 지나 눈앞에 망탑봉으로 불리는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화강암반 위에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 하여 기단으로 삼고, 탑 몸돌을 위에 세운 모습의 탑이 보인다. 몸돌과 지붕돌은 다른 돌로 만들어져 있고,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높이는 2.43m로  낭떠러지 같은 산봉우리 끝인 이곳에서는 천태산 주차장이 내려다 보이기도 한다.

 

[보물 제 535호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오늘 망탑을 보게 된 것에 많은 만족감을 느낀다. 이 곳에 자리한 석탑이 주는 이미지도 강렬하고 멋지지만, 이 곳까지 방문하는 동안의 과정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높은 곳 까지 보다 올라 문화재의 탐방을 위한 움직임이 가능하단 것이 흐믓하다. 땀이 나도록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쉬울 거리이지만 그래도 이루어 낸 것에 대한 희열을 맛 본다. 사찰로 돌아 와 차를 몰며 은근 뿌듯함으로 귀가 한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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