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如一同行 백 쉰 세번째 - 아산

세종해피뉴스 2024. 2. 9. 11:27

아산을 향해 길은 나선다. 오늘은  이즈음 다시 영화로 재조명 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보물을 찾아보러 현충사로 길을 잡는다. 당도한 현충사에서 마주한 안내문에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2023년 9월 부터 2024년 2월 까지 임시휴관이라 안내판을 접한다. 아쉬움에 다시 방문을 기약하며 문앞에서 돌아 나온다.

 

[현충사]

 

이곳 아산에 있는 보물을 찾아 가는 길이다. 원래 이곳은 오랜 폐사지 이었는데 주민이 미륵불이 있어 미륵골이라 불리던 곳에 지금은 용담사가 세워져 있다. 2004년 충청남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 한다.

 

[용담사 대웅전]

 

적으나마 새로이 불사를 이루는 용담사 입구의 오른쪽에  1971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 여래상이 자리한다.

 

[보물 제 536호 아산 평촌리 석조여래입상]

 

일 신라의 특징을 가지는데, 좌우 대칭으로 규칙적인 옷주름, 짧은 목 움츠린 어깨, 꼿꼿한 자세 등으로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 불상옆의 용담사 사적비에 신라 애장왕때에 원효가 처음 지었고, 고려 광종때 혜명조사가 다시 검립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보물 제 536호 아산평촌리 석조여래 입상]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어 균형보다는 여느 불상보다 훤칠한 느낌으로 얼굴조각이나 옷의 조각이 선명하게 잘 표현되고 보전된 모습이다. 가슴 부분에 약그릇을 감싼 모습에서 증생의 질병을 구하는 약사여래상임을 알게 하여 준다. 양어깨의 옷이 발목까지 내려오며 좌우대칭으로 독특한 문양을 하고 있다. 상반신의 옷 주름은 띄모양 일정 간격을 유지하고, 하반신은 정면에서 3가닥으로 구분되어 U자형을 이루고, 무릎에는 동심원 모양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무릎에 옷주름은 경 삼화령 미륵삼존불과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 116호)등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 간혹나타나는 독특한 수법이라고 한다. 

 

[보물 제 587호 아산읍내동 당간지주 ]

 

읍내에 자리한 돌기둥 두개는 1971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이다.

 

[보물 제 537호 아산읍내동 당간지주]

 

문화재 여행 중에 늘 궁금한 것이 당간지주의 보물 지정 기준이었는데, 오늘도 의문만을 가지고 지주를 살핀다. 높이 410cm, 너비,55cm, 두께39cm 라고 한다.기둥머리가 완만한 곡선 형태를 이루고, 지주 안쪽에는 홈이 있다. 기둥 바깥쪽은 모서리를 깍아 세로로 줄무늬를 새긴 효과를 나타낸다. 지주가 있던 이 위치를 원래 자리로 여기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공원 옆의 팔각정에서 바라보며 옛날 절의 모습은 어떠 했는지 상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원래는 집도 없는 곳에 자리했던 지주인데, 이제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예전엔 그 곳이 절터 이었음을 주장하는 듯 하다. 이곳서 가까운 곳에 다른 문화재가 있어 찾아본다.

 

[온주 아문]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시대 온양군에서 관아로 쓰인 건물이라 한다. 이 문은 조선 고종 8년 (1871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하며, 여러차례 변경되다가 1993년 수리 복원하였다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문위의 누각 건물로, 기단위에 높이 1.5m높이의 주춧돌을 넣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만든 모습이다. 온주의 뜻은 신라문무왕 3년에 온양군을 '온주'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듯 하다고 안내되어 있다. 

 

[동헌]

 

온주아문 안에 자리한 동헌은 지금은 들어가지를 못한다. 매장 문화 발굴작업 중이라 하여, 담 밖에서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앞면 6칸, 옆면2칸의 홑 처마 팔작지붕으로,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쌓아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올려 사각기둥을 세운 이건물은 조선시대에 동헌으로 쓰이고, 일제하에서는 주재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는 파출소, 그리고 온양시 온주동 사무소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아산 읍내동 비석군]

 

온주아문옆에 모아 놓은 옛 온양군 관리와 관찰사의 송덕비들이라 한다. 과거 온양군 관리들의 선정과 당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현충사에서 충무공에 관한 보물을 보러 방문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아산의 여러 보물들을 둘러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러 곳을 더 들려 볼 예정이었으나, 다음 현충사를 찾을때 방문하기로 한다. 다음의 여정은 현충사를 기점으로, 내친 김에 몇몇 여행지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충무공의 흔적을 중심으로 찾아 보는 것으로 정하고, 흥분되어  집으로 차를 몬다.

 

如一유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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